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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주제의 전공 발굴 확대해야 … “인재풀 시스템 구축 필요”
새로운 주제의 전공 발굴 확대해야 … “인재풀 시스템 구축 필요”
  • 최성희·한태임 기자
  • 승인 2017.12.2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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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 2020년부터 ‘교수 은퇴’ 증가_ ③떠나가는 자리, 세대교체는?

2020년. 한국사회 전반에서 베이비부머의 대량 은퇴가 예고돼 있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퇴임하는 교수들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른바 학문공동체의 세대교체론을 제기할 수 있다.

퇴임-신규 임용은 더 이상 일대일 관계에 있지 않다. 전통적인 인문사회 영역은 갈수록 줄고, 새로운 부문에서 교수들의 신규 진입이 이뤄지고 있다. 대학 외적 변화를 대학이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교수들의 세대교체가 어떻게 이뤄지는 게 바람직할까.

교수들은 ‘전공 유지’라는 과거의 방식에는 매우 부정적이다. 한 원로 영문학자는 “내 전공을 유지하겠다는 건 속 좁은 짓”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요즘 많은 학문들이 발전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 내 전공에 울타리를 치고 지키자고 나서서 그것 때문에 학문 발전이 저해된다. 시대에 맞춰 개방적이고 융합적이며 통합적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김치경 충북대 명예교수(미생물학)도 “대학과 사회 요구, 시대 변화에 따라 전공 교수를 충원하면 좋겠다. 숫자만 맞추는 게 아니라, 대학과 사회, 기업체 등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서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신진 물리학 교수도 “후임이 없다는 건 그 학문이 ‘핫’하지 않고 수요도 없다는 거다. 결국 퇴임에 관계없이 새로운 주제의 전공이 가능한 영역에 인원을 주는 방식이 맞다고 본다. 시대에 따라 학문의 수요가 바뀔 테니, 필요로 하는 학문 쪽으로 TO를 늘려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실제 학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퇴임 교수의 연구 분야를 고려하기도 하고, 새로운 분야의 채용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아무래도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다보니 ‘새로운 분야’를 더 의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분야에서 교수를 찾으려고 해도 기존 학과 시스템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영석 경상대 교수(일반사회교육)는 학문후속세대가 많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학과 중심 체제가 ‘세대교체’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학문은 대개 학과 베이스로 명맥이 유지되다보니, 학과의 이해관계가 있어서 세대교체가 원활하게 가지는 못할 것 같다. 예컨대, 그런 학문 분야의 후속세대가 많지 않으면 학과 체제를 개편해야하는데, 개편을 못하지 않나?”

학과 중심에서 학부 중심으로 대학들이 편제 변화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김영석 교수의 우려는 반반에 그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분야’의 인재를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가 관건일 수 있다. 신학동 세종대 교수(시스템공학부)는 “미국 등 외국의 경우, 연구 분야에 따라 인력을 추천하는 제도가 잘 구축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연구 분야에 적합한 인재를 추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이런 제도가 결여돼 있다 보니 내정자 임용 오해도 생긴다”고 지적하면서, ‘인재풀 시스템 구축’을 제안한다.

교수들은 ‘새로운 분야’에서의 충원을 기대하고 있지만, 세대교체에 크게 문제가 될 건 없다는 시각도 있다. 권세진 카이스트 교수(항공우주공학과)는 “대규모 은퇴로 세대교체가 된다고 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세대교체 문제는 분야를 떠나 생각해야 할 문제다. 그렇지만 해법은 단순하다. 비전임교원들을 전임교원으로 채용하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사학위를 받고도 채용이 되지 않아 10여 년 넘게 시간강사로 떠돌아야만 하는 인력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한 신진 물리학자는 ‘시대의 수요에 따르는 임용’으로 갈 경우, ‘기초학문’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하면서 “나도 물리학 전공이라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꼭 필요한 기초학문을 없애야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 학문이 학문적으로 의미가 없어졌다면 제로가 되도 상관은 없겠지만, 기초적으로 꼭 필요하다면 최소한의 인원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유연한 세대교체를 환기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간단한 해법이 있는 데도 왜 우려의 목소리들이 들려올까. 세대교체에는 대학의 현실적 셈법과 학문종다양성이라는 두 가지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김환규 전북대 교수(생물학)는 “새로운 분야는 얼마든지 나오기 때문에 분야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새로운 후속세대들이 그 빈자리를 채워나가면 된다”고 말하면서, ‘대학 평가를 대비한 채용’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평가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고민이 결여돼 있다는 거다. 양적인 형태의 기존 평가방식을 고수하니 문제가 된다. 질적인 학문적 성장을 위해 대학 구조개혁 평가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학문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

영문학계의 한 원로 교수는 최근 학생 취업을 돕는 방향에서 교수 임용이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해 “대학이 할 일이 아니다. 학문 자체를 위해서 세대교체를 진행해야 한다”고 꼬집는다. 김치경 충북대 명예교수(미생물학)도 “학생들 취업도 취업이지만 연구역량을 키워야 한다. 국가발전의 가장 밑거름이 되는 게 대학의 연구 인력이다. 그걸 무시하면 안 된다. 어느 정도 병행하되,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대목에서 서유경 경희사이버대 교수(정치철학)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현재 한국 대학의 ‘교육의 질’과 ‘교육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국내외적으로 확인되고 있어 매우 걱정스럽다. 일례로, 한국의 ‘학사’학위 소지자들은 안타깝게도 전공 불문하고 ‘전문지식’의 소지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따야 하는 형편이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기회비용’과 ‘학위 인플레이션’ 현상을 촉발하고 있다. ‘대학 교육의 질’ 관리에 우선순위가 주어져야 하는 이유다.” 

현실은 시장원리가 대세다. 구연상 숙명여대 교수(리더십교양학부)는 “교수 임용이 ‘시장원리’에 따라 진행되고 있어서 학생들이 오지 않는 과는 자연히 폐과 수순을 밟게 되고, 후임 교수들도 뽑지 않게 될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이렇게 학과가 없어지는 현상을 들여다보면 아주 중요한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학문의 가치보다 사회적 수요 원리에 따랐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고 읽어낸다. 구 교수는 일본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학문의 가치를 인정해 ‘연구소’가 학문종다양성을 이어가게 하면 된다”고 귀띔한다. “사회적 수요는 닫혔지만 학문의 자율적 호기심을 이어갈 수 있게끔, 국가수준에서 안정된 관리를 해주면 어떨까. 학문의 종다양성을 꼭 대학에만 맡길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수혜를 입는 거니까 기업과 사회, 국가가 함께 학문종다양성을 위해 서로 투자하는 게 성숙한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라고 말하는 구 교수의 아이디어는 시사적이다.

박혜영 인하대 교수(영문학)은 기업이나 사회, 국가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대학이 먼저 세대교체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본다. “당장의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세대교체는 불투명하다고 본다”고 말하는 그는 “인문사회계열의 경우, 대학들이 신규 채용을 주저하고 있다. 그런 영향으로 신진 연구 인력이 생겨나지 않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어렵게 공부한 학문후속세대들에 대한 지원이 전혀 없는 지금의 환경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10년 뒤부터는 학교가 채용하고 싶어도 후속 인력풀이 너무 없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어떤 학문들은 고사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

2년 후면 2020년이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본격적인 퇴임이 시작된다. 공교롭게도 제4차산업혁명이 세대교체와 함께 깊게 진행될 것이다. ‘취업’ 중심의 대학 시스템이 4차산업혁명의 불길을 충분히 견뎌낼 수 있는 ‘사유’를 지닌 인재들을 배출해낼 수 있을까. 만일 그런 사유의 힘을 지닌 인재들을 키워내야 한다면, 그것은 누가, 어디에서 지의 근원을 제공할 수 있을까. 대학들이 독자적인 학문의 뿌리를 상실해가면서 실용위주로 급격히 재편되는 지금, 베이비부머 세대 교수들의 퇴임이 던지는 질문이다.

최성희·한태임 기자 hantaei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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