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의 삶에서 좋은 삶으로
노예의 삶에서 좋은 삶으로
  • 박혜영 인하대·영문학
  • 승인 2017.12.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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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삶을 욕망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삶을 오직 비루한 밥벌이를 위해 노예처럼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우리 사회는 인간에게 다 같은 욕망이 있다는 것을 외면한다. 가진 게 없고, 배운 게 없고, 그래서 반듯한 직업이 없다고 아름다운 풍경도, 좋은 음악도, 동료와의 대화도 필요 없는 것이 아니다. 좋은 삶을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밥벌이 외에도 다른 차원의 풍요가 보장돼야 한다. 부자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에게도 아름다운 환경과 깨끗한 물과 공기가 허락돼야 하고, 신의 직장뿐 아니라 용역업체의 비정규직에게도 신이 나면 콧노래를 부르고, 힘들면 의자에 앉을 수 있고, 동료와 마주치면 말을 건넬 수 있는 그런 풍요가 필요한 법이다. 노동자의 식탁이라고 빵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제주에서 현장실습을 나갔던 특성화고 학생이 사고를 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십대들이 저임금의 위험한 일자리로 내몰리고 현장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착취를 당하다 사망한 것은 물론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당시 생수공장으로 실습을 나갔던 이 학생은 하루 7시간만 일하도록 계약서를 썼지만 실제로는 10시간 이상을 일해야 했다. 잦은 야근과 기계 고장은 고3 학생이 감당하기에는 상당히 힘든 작업이었지만 회사, 학교, 교육부,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던 중 생수 적재기가 고장이 나자 큰 기계 속으로 들어갔고 결국 거기서 나오지 못했다. 사회에 내딛는 첫 발이 죽음의 발자국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지하철 안전 스크린에 끼어서도 죽고, 크레인이 무너져서도 죽는다.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하청업체 근로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일용직 계약자들, 용역업체 파견자들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이 미래’라며 광고했던 두산뿐 아니라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살갑게 굴었던 삼성에서도 비인간적이고 위험한 근무환경 탓에 자살을 하거나 병에 걸리곤 했다. 왜 이런 슬픈 죽음이 반복되는 걸까?

에보 모랄레스는 남미의 볼리비아에서 2005년 원주민 출신으로는 최초로 대통령이 됐다. 물론 장기간에 걸친 그의 정권재창출을 비판하는 시각도 있지만 적어도 그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선언했던 정신은 다시 한번 되새겨볼만 하다. 미국주도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비판해온 에보 모랄레스는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약탈의 시대는 갔다”라고 선언했다. 그는 인간이란 부자건 가난하건 간에 누구나 존엄한 존재라는 말했다. 모랄레스는 ‘좋은 삶’을 헌법 차원에서 보장하기 위해 개헌을 단행했는데, 이 새로운 헌법의 근간이 ‘부엔 비비르’(buen vivir), 바로 좋은 삶이었다. 이것은 개인들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국가의 더 높은 물질적 번영을 강조하는 서구적 의미의 좋은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부엔 비비르는 남미 원주민들의 토착적 지혜에 근거한 것으로 인간다운 삶이란 사적인 축적과 성장이 아닌 공동체내의 타자와 자연과의 조화와 균형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오직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이 아닌 다른 차원의 풍요로운 삶을 헌법으로 보장해주자는 것이다. 어머니 대지인 ‘파차마마’를 존중하고, 인간의 複數性을 인정하고, 제한된 자연환경을 공유하며, 서로의 공존을 보장하는 그런 삶을 살자는 것이다.

좋은 삶은 서로의 공존을 모색하는 삶이다. 어른들에게는 자녀를 돌볼 시간을 돌려주고, 노동자들에게는 휴식할 수 있는 여가를 돌려주고, 아이들에게는 뛰놀 수 있는 친구들을 돌려주는 것이다.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어느 한쪽을 지금처럼 무한정 모독하고, 괴롭히고, 착취하여, 결국 인간답게 살지 못하도록 절멸시킨다면 우리 사회는 어떠한 미래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졸업생이 도어 첫발을 내딛는 제자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안쓰러운 것은 우리사회가 아직 공존의 지혜를 갖지 못한 탓이리라. 좋은 삶은 만드는 좋은 노동에 대해 사유하기 위해 생태경제사상가인 E. F. 슈마허의 『굿 워크(Good Work)』의 일독을 권한다. 

 

박혜영 인하대·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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