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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재난 ‘이후’에 대한 성찰들 … ‘젠더 갈등’에 대한 진단 돋보여
사회적 재난 ‘이후’에 대한 성찰들 … ‘젠더 갈등’에 대한 진단 돋보여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12.18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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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계간지 리뷰

촛불과 대선. 그 사이 뜨거웠던 여름과 가을이 가고, ‘냉동고’로 비유되는 겨울이 왔다. 겨울 길목에 계간지들이 앞다퉈 얼굴을 내밀었다. 이런 시기에는 다양한 주제와 성찰이 교차하게 마련이다. 중복되는 특집은 있을 수 없다. 각각의 이름에 걸맞은 탐색과 진단, 기획이 펄럭인다. 그래도 이 ‘펄럭임’ 속에는 어떤 공통항이 엿보인다. 그것은 사회적 재난 이후에 대한 문학 예술의 가능성 문제, 여성혐오가 불러온 페미니즘에 대한 성찰, 촛불혁명의 문제의식을 일상 속으로 껴안기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오늘의문예비평> 107호의 특집은 현재 유행하는 여러 가지 ‘영웅물’들을 돌아보며 영웅담론을 점검하는 데 시선을 겨냥했다. 영웅은 歡迎받고 있지만 실은 幻影에 불과한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번 특집은 최근 영웅을 다루는 텍스트들(문학, 영화, 만화 등)이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과 관련해 왜 우리는 여전히 영웅에 열광하며 그런 텍스트들을 소비하는지, 또 요즘 텍스트들은 촛불 이전의 영웅 서사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특집에는 「영웅, 괴물, 그리고 시민들」(오길영), 「 ‘이후’의 영화적 이미지: 촛불 전후의 영화적 무의식에 관하여」(김필남), 「영웅서사의 해체와 사건의 존재론」(박형준) 세 편의 글이 실렸다.

‘빛나는 부분을 발견’하려는 노력

특히 오길영 충남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촛불혁명의 의미를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주인일 뿐 아니라 ‘영웅’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데서 찾으면서 동시에 이것이 일시적 경험에 그칠까 우려를 표한다. 그래서 그는 대리만족을 위한 ‘영웅’에 의지하지 않고, ‘평범한 시민들의 연대에 근거한 민주주의 사회와 공동체는 어떻게 가능한가?’라고 질문할 것을 제시한다. 오 교수는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를 분석, 세상을 엉망이라고 일찌감치 냉소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빛나는 부분을 발견’하는 노력과 몸짓을 통해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작품으로 조명한다.

특집 ‘다시, 예술의 자율성에 대하여’를 내건 <문학동네> 93호는 「정치적 올바름 vs. 예술의 자율성: 다문화시대 문학의 운명」(임경규), 「예술의 자율성과 여성주의: 1970년대 여성주의 비평 및 예술을 중심으로」(양효실), 「미당 시의 예술성과 문학적 진실」(함돈균)을 수록했다. <문학동네>가 ‘예술의 자율성’에 주목한 데는 사회적 참사와 재난, 문화계 블랙리스트, 여성혐오 문화에 대한 성찰 등을 의식한 문학의 역량 문제에 대한 고민이 깊게 스며있다.

이런 고민은 임경규 조선대 교수(영어영문학과)의 글 「정치적 올바름 vs. 예술의 자율성」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임 교수는 미국 사회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우파의 공격을 받아왔던 역사를 비판적으로 되짚으면서, 정치적 올바름을 공격하는 이들이 우상화하는 문학과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것이 “자본주의에 의해 모든 것이 잠식당한 지금, 문화적 영역이 폭발적으로 팽창한 지금”은 “이제 신화가 되었다”고 단언한다. 그에 반해 자율성을 비판하며 정치적 올바름을 말하는 문화적 형식이야말로 ‘다중의 요구’이고 ‘억압받는 자들의 요구’라고 말한다. 물론 임 교수가 말하는 이 ‘문화적 형식’은 ‘새로운 혼종적 문학’인데, 지금 막 탄생하고 있는 것이어서, 향후 더 많은 논의가 요청될 것으로 보인다.  

 <창작과비평> 178호의 특집은 ‘촛불의 눈으로 한국문학을 보다’다. 창비의 설명대로 이 특집은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문학이 맞게 된 전환적 계기들과 잠재적인 힘을 들여다봄으로써 새로운 세상 만들기의 실천적 가능성을 성찰하려는 기획이다. 「촛불민주주의 시대의 문학」(한기욱), 「새로운 페미니즘서사의 정치학을 위하여」(심진경), 「데모스의 재구성 그리고 시」(황규관) 등 세 편의 글이지만, 논의는 제법 깊숙하게 진행된다.

한기욱 인제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촛불민주주의 시대의 문학」에서 ‘문학이 촛불혁명에 참여한다는 것의 의미’를 세심하게 성찰한다. 그가 젠더평등의 목소리에 주목해 최근 페미니즘 소설들의 흐름을 진단하고, 이와 연결해 한강과 김려령의 소설이 거둔 촛불의 문학적 성취를 지적한 대목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촛불혁명에 걸맞은 문학이란 ‘차별 없는 민주주의’ 같은 진보적인 의제와 무관하지 않되 그것을 반영하거나 주장한다고 해서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낡은 언어와 어법으로 말하는 순간 그 내용이 제아무리 진보적이고 혁명적이라도 소용없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학의 언어가 머리만의 언어가 아니라 몸의 언어이기도 하고, 그 어법이 달라지는 순간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도 달라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젠더 갈등은 정책 실패의 결과다”<황해문화> 97호 특집은 좀더 본격적인 ‘젠더 전쟁’을 주제로 내걸었다. <황해문화>는 여성혐오의 문제가 일시적이거나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며 또한 일정한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요인들이 누적된 역사적 성격을 띤 것임을 드러내고 공론화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다. 특집에는 「젠더 갈등의 사회학」(신경아), 「노동시장 피해자 경쟁과 여성혐오」(김영미), 「몰래카메라?:?시선의 주체와 포획된 신체」(김영희), 「‘퓨리오숙 현상’의 이율배반과 젠더 전쟁의 주체들」(이선희), 「모순과 혐오를 넘어 페미니즘 정치를 향하여」(나영) 등의 글을 담았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과)는 총론에 해당하는 「젠더 갈등의 사회학」에서 “한국 사회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젠더 갈등은 길게는 지난 20년, 그리고 짧게는 지난 10년 동안 전개된 사회적 실천의 결과이며, 특히 정책 실패의 결과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 핵심 이유는 ‘차별’을 인정하기보다 ‘우대’를 강조하는 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여성 정책은 불평등과 차별의 시정을 위한 정책보다는 특정한 집단으로서 여성에 대한 시혜 정책으로서의 성격을 띠어 왔으며, 그 결과 생활 전반에 걸쳐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기보다는, 예컨대 내각 30% 여성 할당 목표치를 달성하는 데만 주력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여성 우대 정책’이 오히려 사회 구조와 일상적인 삶에서 ‘여성 차별’을 방치하고 누적시키는 결과를 낳게 만들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문화/과학> 92호의 특집은 ‘플랫폼 자본주의’다. 용어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이 용어와 개념으로 응시하려는 바가 분명해서 더욱 눈길을 끈다. 지난 2016년 가을 <문화/과학> 87호는 ‘데이터 사회’를 특집 주제로 다뤘다. 1년여의 간격을 두고 ‘플랫폼 자본주의’라는 화두를 들고 나온 것은 역시 이 문제의식의 유효성 때문인 듯하다. 수록된 글은 모두 5편으로, 「자본주의 종착역으로서 ‘플랫폼 자본주의’에 관한 비판적 소묘」(이광석), 「플랫폼 자본주의의 정치경제학: 사회적 삶의 상품화와 노동의 미래」(최철웅), 「플랫폼 노동, 새로운 위험사회를 알리는 징후」(김영선), 「플랫폼과 ‘소중’: 생산과 소비의 경합이라는 낡은 신화의 한계상황」(김성윤), 「플랫폼 위에 놓인 자본주의 이후의 삶」(김상민) 등이다.

이광석 서울과기대 교수(IT정책전문대학원)는 특집의 총론 격인 「자본주의 종착역으로서 ‘플랫폼 자본주의’에 관한 비판적 소묘」에서 ‘플랫폼’이라는 용어의 정의, 구성 요소, 주요 특징을 정리함으로써 플랫폼 자본주의라는 생소한 개념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플랫폼을 ‘매우 복합적인 사회적 구성물’로 설명하는 이 교수는 (빅)데이터, 브로커(매개자), 알고리즘을 플랫폼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로 간주하면서, 플랫폼 자본주의의 여섯 가지 주요 테제를 제출한다. 이를 통해 플랫폼 자본주의는 플랫폼과 알고리즘이라는 기술적 요소를 통해 노동 및 고용관계를 변화시키고 생산의 외연을 확장하는 ‘신흥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으로서 ‘후기자본주의적 사유화의 최종 종착역’이라는 판단을 이끌어 낸다.

사드(THAAD)는 왜 기습적으로 설치됐나?

<역사비평> 121호의 특집은 지난 호에 이어서 여말선초 시기의 변화와 연속성에 무게를 둔 ‘조선 건국 다시 보기, 연속성의 관점에서 본 왕조 교체② 세계인식과 국제관계’다. 「13~15세기 천하질서하에서 고려와 조선의 국가 정체성」(최종석), 「성지(聖旨)를 통해 본 여말선초의 정치·외교 환경」(이명미), 「몽골제국의 붕괴와 고려-명의 유산 상속분쟁」(정동훈), 「고려·조선의 국제관계에서 역서가 가지는 의미와 그 변화」(서은혜) 등의 글을 수록했다. 박태균 편집주간의 말처럼, 이러한 접근은 “조선의 건국을 새로운 사회와 체제의 탄생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연구와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것으로서, 향후 학계의 생산적인 논쟁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역사비평>에서 놓쳐서는 안 될 글은 ‘시론’으로 실린 김희교 광운대 교수(동북아문화산업학부)의 「사드(THAAD)와 한국 보수주의의 중국인식」이다. 김 교수의 이 글은 ‘중국’이라는 변수를 놓고 한국의 보수가 보여주는 태도의 이해 속에서 어째서 박근혜 정권이 ‘군사작전 하듯 기습적’으로 사드를 설치해야 했는지를 설득력 있게 분석해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힌다. 김 교수에 따르면, 박 정권의 사드 배치는 ‘한국 보수주의의 상호충돌과 보수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묘수’로서 요청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드 배치 발표는 전격적이었지만 즉흥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는 내부적으로는 반공주의와 종미주의라는 이념을 강화시켜 경제지상주의자들의 공세를 막아내고, 박정희 대통령의 딸에게 거는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를 약화시킴과 동시에, 외부적으로 반중국 전략을 통해 한미동맹 체제를 강화하고자 하는 매우 장기적인 이데올로기적 기획이었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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