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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회 유감
사은회 유감
  • 최희섭 논설위원
  • 승인 2017.12.18 09: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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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최희섭 논설위원/전주대·영문학

학기말이 다가오면서 내년에 졸업할 학생들이 묻는다. “교수님, 사은회 어떻게 해요?” 라고.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사은회를 하면 안된다”고 학생들에게 대답한다. 김영란법, 정확히 말하면 부정청탁금지법에 그런 일을 하면 위법이라고 되어 있으니 마음으로만 사은회를 하라고 당부한다.

작년 언제인가 부정청탁금지법이 발효되면서 가장 처음으로 고소인지 고발인지 되었던 사건이 모 대학에서 학생이 교수에게 1천원짜리 음료수를 한 캔 주었던 일이었다. 이들이 벌을 받고 말고를 떠나서 문제는 이러한 일이 법의 잣대로 재단된다는 사실이다. 학생이 1천원짜리 음료수 한 캔을 주면서 교수에게 어떠한 부정한 일을 청탁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1천원짜리 음료수 한 캔을 뇌물로 주면서 청탁을 하고, 청탁을 받는 일이 현실적인지 매우 의심스럽다. 교정 곳곳에 있는 자판기에서 학생이 음료수 한 캔을 뽑아 교수에게 주면 부정청탁이 된다니, 또한 거꾸로 교수가 학생에게 주어도 부정청탁이 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금년에 정권이 바뀌어 수많은 사람들이 국회의 청문회에서 과거와 현재의 삶을 보여주었다. 대부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의 모범이 되고 고위 공직에 임명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인정돼 자랑스럽게 임명됐다. 이와 반대로 망신만 당하고 임명되지 못한 분들도 더러 있다. 그분들도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을 통과했을 것이고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돼 지명됐을 터인데 말이다. 청문회 중이나 시작 직전에 자진사퇴한 분들도 있다. 어렵사리 청문회를 통과했지만 이러저러한 흠결이 드러난 분들도 있다.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고위직에 배제하겠다는 무슨 원칙에 위배됐던 분들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흠결이 너무나 크기에 국회의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거나 임명동의안이 부결됐지만 원래 지명된 자리에 임명된 분들이 다섯 명이나 된다고 한다.

대학의 사은회를 높은 자리에 있는 이 분들의 무슨 흠결과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지 모르겠지만, 대학과 교수를 무슨 비리의 온상인 듯이 보는 시각은 잘못돼도 대단히 잘못됐다. 모 대학이 이사장의 비리 때문에 폐교되는 것처럼 일부 대학이 잘못됐을 수는 있다. 또한 교수도 사람이니 비리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무늬는 교수지만 실제는 교육자가 아닌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리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교수는 교육자임을 자각하고 있고, 교육자로 살아간다고 믿는다.

어느 사회든 사회의 건전성을 최후로 담보하는 집단은 교육자와 종교인이다. 누가 무어라 해도 교육자와 종교인은 부정부패 혹은 비리와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교육자는 학생이 미래의 삶을 바람직하게 살도록 이끌고 종교인은 우리들의 현재의 삶을 건전하게 영위하도록 이끈다. 현재의 삶이 건전하고 미래의 삶이 바람직하다면 그 사회는 깨끗할 수밖에 없다. 교육자와 종교인의 탈을 쓴 극소수의 사람들이 교육계와 종교계를 더럽히고 있지만 대학과 종교는 충분한 자정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비리가 있는 사람들은 지엄한 법으로 처벌하지만 비리와 관련이 없는 대다수 교육자와 종교인의 건전성은 인정하고 권장해야 한다.

필자는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仁義禮智信 다섯 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는 어떠한 학문을 하더라도 아니 학문을 하지 않더라도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미래를 살아갈 인간으로서 필요한 덕목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근간이 돼야 한다. 사은회는 학생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에 앞서 미래의 삶을 건전하게 살아가도록 가르침을 준 스승들께 예를 표하는 자리이지 부정청탁을 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러한 자리를 더 이상 그 무슨 법으로 욕되게 하여 교수의 알량한 자존심을 짓밟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최희섭 논설위원/전주대·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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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독자 2017-12-19 00:57:22
김영란법이 모든 형태의 사은회를 금지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제가 알고 있는 내용과 다른 것 같아서 제 의견을 남깁니다.

학점 평가가 모두 끝나고 학생들과 담당교수가 각자 식사 가격을 나누어서 지불하는 형식의 식사자리는 김영란 법에 저촉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학기가 끝나고 나면 원하는 학생들에 한하여 교수님과 간단히 식사자리를 가지고 모임이 끝나면 더치페이를 합니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제자들이 돈을 모아서 선생님께 식사를 대접하던 과거의 관행이 잘못된 것이고 각자 자기가 먹은 식대를 지불하는 것이 바람직하게 정착되어야 할 방향입니다. 제가 이해하고 있는 내용이 잘못된 것이라면 지적해주시고 만약 사실이라면 사과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