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移植 학술용어를 넘어서
移植 학술용어를 넘어서
  • 한규석 전남대
  • 승인 2003.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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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인정하건 말건 우리는 이제 세계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화의 시대에 사람들이 듣기 싫어할 비난 중의 하나는 자신이 문화편향적 생각을 한다는 지적일 것이다.
어느 특정 문화권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보고, 다른 문화의 관점을 부정하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이 문화편향적 사고이다. 어느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종교관과 세계관을 부정한다거나, 이공계 교수가 인문계 교수의 세계관을 부정한다거나, 어른이 아이의 세계를 부정한다면 당사자들간의 충돌을 면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들의 경우 문화편향적 사고에 빠져드는 것은 상대방의 저항 때문에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다.

그러나 서구에서 移植된 학문분야에 종사하는 경우에 서구의 문화편향적 사고는 보편성이라는 포장을 쓰고 들어와 늘 깨어 있지 않는 한 그것이 작용한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기 어렵다.
이 경우에는 자기 것을 외국의 문화편향적 방식으로 들여다봄으로써 자기 것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더욱 딱하다.

인문사회 분야의 학문들은 한국인과 그 사회를 이해의 대상으로 한다. 그 이해를 위해서 필요한 학술용어와 이론들을 구성한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 국내 학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와 이론들의 대부분은 서구에서 이식된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쓰이면서 ‘자연스러운’ 우리글이 돼 버렸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만큼 진행된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범주에 속하는 용어들로는 사회, 개인, 계층, 지능, 자아, 성격 따위를 들 수 있다. 이들 용어가 널리 쓰이면서 전통사회에서 통용되던 유사한 개념들(모임, 성원, 신분, 지성, 우리, 품성 등)은 학술용어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일상인들의 언어생활에서만 나타나게 됐다.
이식된 용어가 전래의 용어를 대체한다는 것은 단순히 단어가 바뀐다는 의미를 넘어서 탐구대상의 성격을 바꾼다는 실천을 지닌다. 이식 용어의 정착은 보아야 할 현상과 볼 필요가 없는 현상을 새롭게 규정하는 정치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마치 권력싸움에서의 승리와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런 점에서 학술용어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한 방편일 뿐이지만, 종종 방편이 아니라 현상 그 자체와 뒤섞이게 된다. 용어와 이론이 그 태생의 문화적 배경을 떠나 독자성을 지니게 되면 그 자체가 방편이자 동시에 현상이 돼 버린다.
문제는 전래의 일상용어들과 새롭게 자리잡은 학술용어들 간에 간극이 있기 때문에 초래된다.
분석적 사고체계를 발달시킨 서구인들이 사회를 분석하기 위해 상정한 용어들이 지닌 효용적 가치는 분명히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한국의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가장 적절한 용어들로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한국사회에서 진행된 서구화의 변화 탓에 이들 이식용어가 지닌 가치를 부인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행태가 된다.
그러나 이식용어가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사회현상의 부분들은 매우 한국문화적인 색깔을 지니고 있는 부분들이어서 외면해서도 안 된다.
겉으로 드러난 사람들의 가치관과 시대상은 세월의 영향을 받아 크게 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학자들이 변하기 쉬운 요소들만을 보고자 했기 때문에 나타난 접근상의 한계를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가치관 조사에서 나타난 가치관의 서구화에도 불구하고, 심층에 자리잡은 한국인의 문화심리적 특성은 오늘의 대학생들에게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이 결과는 이식용어들을 이용한 분석이 한국사회의 문화적 성격을 털어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우리는 서구 편향적 시각에서 한국의 문화적 현상을 씻어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생적 용어의 구성, 토속적 용어의 학술용어화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규석 전남대·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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