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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 연구를 위한 근본 원리
혁신적 연구를 위한 근본 원리
  • 김도현 포스텍 생명과학과 연구교수
  • 승인 2017.12.1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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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김도현 포스텍 생명과학과 연구교수

‘과학’이란 자연현상을 발견하고, 그 현상이 일어나는 원리를 이해하고, 또 그것을 응용하는 학문이다. 새로운 과학적 진보가 일어났을 때 그것이 기존의 지식들과 합쳐져 창발성(emergent property)이 나타나는데, 이로 인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현실에서 가능해지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거나, 현재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의 원리를 밝혀내거나, 새로운 응용 방법을 개발했을 때 우리는 이 연구들을 혁신적이라고 일컫게 된다.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은 대개 자신들의 혁신적 발견이 우연이었다고 얘기한다. 어떻게 보면 수많은 연구들 중에 우리 세상을 진보시킬 발견에는 ‘행운’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행운이 없으면 혁신적인 일을 하기 힘들다’는 것인데 개별 과학자로서는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과학자라면 행운이라는 것조차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확률을 이해함으로써 행운을 만드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확률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많은 시도를 하는 것이다. 복권을 많이 살수록 당첨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시간과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무한정 시도를 할 수 없으니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확률통계학에서 거짓 양성(false positive)을 의미하는 제 1종 오류와 거짓 음성(false negative)을 의미하는 제 2종 오류라는 것이 있다. 바꿔 표현하면, 제 1종 오류란 어떤 일을 했을 때 실패할 확률을 의미하고, 제 2종 오류는 어떤 일을 하지 않았지만 했다면 성공을 했을 확률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오류들은 서로 반비례 관계에 있으며 주관적으로 설정한 기준에 따라 두 오류들이 조절된다. 흥미로운 부분은 제 1종 오류의 경우 쓰디쓴 실패를 맛보게 되지만, 제 2종 오류의 경우 실패를 맛보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 보이지만, 시도를 안했기 때문에 아쉬운 줄도 모르게 된다. 더욱이 안 해도 될 일을 해서 실패로 끝나는 경우로 느껴지기 때문에 ‘괜히 했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준을 설정할 때 자연스럽게 제 1종 오류를 낮추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행운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 2종 오류를 낮추도록 기준을 잡아야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시도하지 않은 곳에 성공이 있었던 예는 결코 없다.” 이러한 속담과 격언의 근간이 되는 수학적 원리라고 볼 수 있는 이것이 혁신적인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비결이다. 그러나 제 2종 오류를 낮추는 방향은 제 1종 오류를 늘리는 방향이 되기 때문에 매우 두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즉,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적인 연구를 해야 한다는 너무나 뻔한 얘기지만, 현재 각 분야의 트렌드를 좇아 현 과학계의 중요한 연구를 하는 대신 아무도 하지 못한 큰 문제에 도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3년을 넘게 밤낮없이 열심히 연구를 했는데 실패로 끝난다면 그 얼마나 참담한 일인가. 그러나 많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그랬듯 현재의 실패는 머지않은 미래의 성공을 의미하기에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학 선진국을 만들고, 노벨상 수상자를 꾸준히 배출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제 2종 오류를 낮추는 방향으로 연구를 설정할 수 있도록 제도적 마련이 필요하다. 보통 연구과제들은 연구 실적을 중심으로 편재가 된다. 연구자의 능력을 평가하거나 연구과제의 성과를 기대하는 가장 쉬운 지표가 연구 실적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연구비 제도는 제 1종 오류를 줄이는 설정인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기초과학 연구비가 실패하는 연구에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제 2종 오류를 낮추고자 한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과학자의 연구 역량이 충분하다면 그 사람을 믿고 오랜 기간에 걸쳐 필요한 연구비를 지원하며 중간의 성실실패를 이후의 큰 성공의 기반이라고 여길 수 있는 연구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최근 변화하고 있는 한국연구재단의 과제 선정 및 평가 방식은 과학 선진국의 방향으로의 진화를 시사한다. 개별 연구자와 국가가 함께 제 2종 오류를 낮추는 방향으로 진화할 때 세계를 선도하는 과학자가 탄생하고 과학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이다.

도전이 없다면 이미 늙은 것이 아닐까?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늙은 어부의 도전적이고 욕심 많은 행동이야 말로 젊은 과학자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인 것 같다. 미래의 젊은 과학자들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가 아닌 선구자(leader)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도현 포스텍 생명과학과 연구교수

포스텍 시스템생명공학부에서 박사를 했다. 현재 차세대 초해상도 현미경의 개발 및 응용을 통한 질병관련 수용체들의 활성화 기전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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