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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에 인문 사회학적 생각을 더해야
‘기술‘에 인문 사회학적 생각을 더해야
  • 조원철 연세대 명예교수
  • 승인 2017.12.1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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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조원철 연세대 명예교수·방재안전관리

교수로서, 연구자로서 50대 중반까지는 요소적 전문분야를 나름으로 열심히 연구해왔다. 그러나 그 후로는 도대체 내가 하는 이 일이 사회적으로, 인류사적으로 이 시대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해왔다. 내가 진행하고 있는 요소적 전문분야가 가지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모든 공학 분야의 요소기술들이 가지는 인문 사회학적 기능과 의미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인문학의 주제인 ‘사람과 자연’에 대한 생각, 사회학의 주제인 ‘관계 맺음’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정리한 것은 요즘 회자하는 4차 산업의 개념에 이르고 있다. 4차 산업은 사람과 자연환경과 사물(재료, 제품, 시설물), 시스템 그리고 가상공간(VS) 간의 관계 맺음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을 포함한 스마트 기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관계 맺음을 초연결(Hyper-Connection)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반드시 ‘초’를 사용할 이유는 없다. 이러한 연결의 기본은 ‘안전성’과 ‘편리성’에 기초해야 한다. 위험성을 줄이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야말로 4차 산업의 생산물에만 초점을 두고 있어 안타깝다.

제품과 시스템에만 관심을 두면 위험과 불편이 내포될 수 있다. 안전성과 편리성은 ‘복지’의 기반임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물질적 배분은 복지의 하위 수단의 하나일 뿐이다. 어떠한 분야를 공부하든 간에 사람들과 자연이 필요(needs)를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간에 말이다. 나아가서는 필요를 넘어 요구(demands)는 물론, 황당하게까지도 인식될 수 있는 욕구(desires)까지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문·사회학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기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처럼 관계 맺음과 소통의 수단은 발달되고 있지만, 소통의 문제는 날로 그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인문’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공급품의 기기적 기능만 생각하다 보니, 생산자·공급자 중심으로만 생각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포항 지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작년의 경주 지진과는 다르다. 발생규모(규모 5.8과 5.4)가 다르고, 진원의 깊이(심도 15km와 9km)도 다르고, 진앙 지역도 농촌(경주)과 신흥 산업지역(흥해읍)으로 다르다. 또한 시설물도 경주에서는 주로 기와집이었고 흥해에는 인구의 급증에 대응한 겉보기만 화려한 연약한 시설물들이다. ‘내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설계와 시공만 이루어졌더라면 이번 같은 손상은 아닐 것이 분명하다. 날림의 실상이 드러난 것이다. ‘지진대응 긴급 대피시설’은 운동장과 도로 같은 넓은 공간이 가장 유효하다. 시설이라고 하면 어떤 ‘시설물’을 상정하는 것이 공직자들의 사고방식이다. 이재민 보호소와는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이재민 보호소도 제대로 지어진 시설물일까? 그나마 지진발생 재난문자발송이 빨라진 것은 다행이었다. 다만, 규모 5.0 이상이 아니라 3.0 이상이 발생하면 즉시 재난문자를 발송하는 것은 어떨지? 지진발생 초기의 민심안정을 위해서는 군의 출동이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총을 들고 출동하라는 것이 아니라 삽을 들고 출동하라는 것이다.

비축하고 있던 이재민 보호용품도 품목과 품질을 다시 생각해야 할 일이다. 일단 지진이 감지되면 시민들은 책이나 가방 또는 의자 등으로 머리를 보호하고 문을 열고 (계단을 따라) 밖으로, 불가능하다면 일단 기둥이나 벽으로, 그 후에 탈출을 시도해 넓은 곳으로 대피해야 한다. 일반 청취자나 독자들이 알아듣지도 못할 전문가님들의 해설도 문제다. 언론에서의 해설은 대학 강의나 전문기술 강의가 아니다. 언론기관들도 각종 발생 가능한 재난별 전문가들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듯해 아쉽다. 재난관리정책만 예방적일 것이 아니라 언론도 정확성과 신속성을 위해서 정보관리를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전문성이고 사회공헌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조원철 연세대 명예교수·방재안전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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