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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오페라 한계 넘은 감동…“「투란도트」의 매력은 인간의 보편성”
콘서트 오페라 한계 넘은 감동…“「투란도트」의 매력은 인간의 보편성”
  • 윤상민
  • 승인 2017.12.11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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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콘서트 오페라 「투란도트」, 감동은 어디서 오나?

중국 베이징, 전설의 시대. 얼음처럼 차갑고 아름다운 공주 투란도트는 자신에게 구혼하러 온 왕자들이 세 개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포고문을 내건다. 이에 희생당한 왕자가 많아지고, 타타르왕국에서 축출돼 유랑생활을 하던 늙은 왕 티무르의 아들인 왕자 칼라프가 투란도트에게 반한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시녀 류와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구혼하러 와서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 투란도트의 수수께끼를 푼다. 그러나 투란도트 공주는 결혼에 응하지 않고, 칼라프는 자기의 이름을 알아맞히면 생명을 내놓겠다고 제안한다. 칼라프의 문제를 풀기 위해 온 나라가 혈안이 된 가운데 티무르와 류가 잡혀온다. 류는 왕자의 이름을 말하라는 심한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고 사랑을 위해 단검으로 목숨을 끊는다. 칼라프는 투란도트에게 열정적으로 사랑을 호소하고 이에 공주의 차가운 마음이 녹아 눈물을 흘린다. 날이 밝고 왕자는 공주에게 자신이 타타르의 왕자 칼라프라고 밝힌다. 황제가 나타나자 공주는 「그의 이름은 나의 사랑(Amor)」이라고 선언하고 행복한 노래를 부른다.

 

‘투란도트’ 역으로 분한 소프라노 리즈 린드스트롬 ⓒBrescia Amisano
‘투란도트’ 역으로 분한 소프라노 리즈 린드스트롬.  사진 제공 = 예술의전당

 

「투란도트」 이야기는 1710년 프랑스 학자 프랑수아 페티드라 크루아가 『천일일화』라는 제목으로 쓴 5권의 책에 길게 수록돼 있다. 우리에게 알려진 『천일야화(아라비안나이트)』가 사회적으로 큰 호응을 얻자 뒤이어 번역됐다. 『천일야화』가 여자를 혐오하는 왕으로부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지혜로운 세헤라자드 왕비가 1001일간 들려주는 이야기라면, 『천일일화』는 남자를 혐오해 결혼을 미루는 카슈미르 공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유모가 매일 들려주는 이야기다. 『천일일화』속 「투란도트」에 등장하는 투란도트 공주 역시 수많은 구혼자들을 뿌리치다 칼라프 왕자의 진실한 사랑에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예술의전당(사장 고학찬)이 지난 9일 오페라 「투란도트」를 콘서트 버전으로 선보였다. 콘서트 오페라 「투란도트」는 예술의전당 클래식 기획공연 브랜드(SAC CLASSIC)의 프리미엄 라인 공연이다. 예술의전당은 지난 2013년부터 꾸준히 콘서트 오페라를 선보여왔다. 「리골레토」, 「라트라비아타」, 「예브게니 오네긴」에 이어 네 번째 작품으로「투란도트」를 선보인 것. 이번 무대는 기존 콘서트오페라에서 접할 수 없었던 스테이징을 가미해 청각적 즐거움뿐만 아니라 시각적 부분도 놓치지 않았고, 국내 최고수준으로 평가받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연주를 맡아 기존의 오페라보다 더욱 진한 감동을 이끌어냈다.

이날 공연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이는 단연 투란도트 공주로 분장한 소프라노 리즈 린드스트롬이었다. 그녀는 오페라콘서트 형식임에도 모든 것이 갖춰진 기존의 오페라에서보다 더욱 관객을 몰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무대, 코스튬,조명이 있으면 관객이 몰입하기 훨씬 쉽고 이태리에서 공연하면 관객들이 100년 전부터 접한 이야기라 더 스토리를 잘 알기에 좋은 면이 있지만 오페라콘서트에서는 오로지 오페라, 아리아만으로 관객들에게 감정을 전달하고 감동을 전해야 하기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무대를 준비한 소회를 털어놨다.

“푸치니는 푸치니다.” 낯섦에서 오는 특별함이
희석되는 것을 걱정하는 관객들에게 그는
천재작곡가 푸치니의 풍부하면서도 다채로운
스토리와 멜로디를 때론 웅장하게 때론 섬세하게
구현해내 객석의 갈채를 이끌어냈다.

투란도트 공주 역만 45개의 프로덕션에서 150회 이상 공연한 리즈 린드스트롬의 서정적인 목소리는 이날 공연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이미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드라마틱 소프라노계의 떠오르는 스타”라 평했고 오페라 전문잡지인 <오페라뉴스> 역시 그의 목소리를 두고 “진정 세계 최고 수준이다. 힘이 넘치고 드라마틱하면서도 그토록 생기 넘치고 앳된 음색을 가진 소프라노는 드물다”고 호평한 바 있다.

“150번이 넘게 투란도트 역을 맡았지만 똑같이 공연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리즈 린드스토롬은 「투란도트」는 모든 캐릭터에게서 인간의 보편성을 발견할 수 있기에 더욱 애정이 간다고 말했다. 그녀는 “영웅의 면모를 보여주는 칼라프, 순수하면서 헌신적인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류, 가혹한 공격성에서 힘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류나 칼라프의 연약하고 순수한 모습에서 더 강한 힘이 나온다는 것을 깨닫는 투란도트까지, 모든 캐릭터 안에 인간의 보편성이 녹아있다”고 말하며「투란도트」의 매력을 부연했다.

성악가였던 어머니에 이어 성악을 전공한 그녀는 현재 투란도트, 젠타, 엘렉트라, 브륀힐데 등 다양한 주인공 역할을 맡으면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샌디에고 오페라,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 빈 국립 오페라, 런던 로열 오페라 등 다양한 무대에서 최고의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오페라 「투란도트」는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 지아코모 푸치니의 마지막 작품이다. 흥미로운 선율로 듣는 이의 마음을 홀리는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비롯해 아름다우면서도 다채로운 음악과 극중 분위기를 심화하는 웅장한 합창, 거대한 스케일이 돋보이는 대작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동양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당시 관객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공연에서는 ‘동양’이라는 플러스 요인이 작동하지 않는다. 지휘를 맡은 줄리안 코바체프는 이런 우려를 단 한마디로 불식시켰다. “푸치니는 푸치니다.” 낯섦에서 오는 특별함이 희석되는 것을 걱정하는 관객들에게 그는 천재 작곡가 푸치니의 풍부하면서도 다채로운 스토리와 멜로디를 때론 웅장하게 때론 섬세하게 구현해내 객석의 갈채를 이끌어냈다.

9살 때 오페라 「투란도트」에 보이 소프라노로 참여한 인연이 있는 스티븐 카르 연출가의 섬세한 디렉션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모인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는 “세미 스테이지 형태의 콘서트 오페라라는 것이 어찌 보면 전체 오페라의 풀 코스튬에 비해 제한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투란도트의 스토리텔링을 하는 사람이 푸치니이고, 이를 따라 훌륭한 연주자들이 음악과 스토리 자체에 집중할 수 있기에 오히려 푸치니의 정수에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비운의 여인 류 역을 맡은 소프라노 서선영은 짝사랑하는 칼라프 왕자의 눈길을 한 번도 받지 못하는 절절한 감정을 아리아에 녹여내 「투란도트」속 또 한 명의 주인공임을 증명해냈다. 그녀는 투란도트 공주로부터 고문을 받을 때 「Tu che di gel seicinta(얼음장 같은 공주님의 마음도)」를 부르며 언젠가는 가혹한 공주도 진실된 사랑을 알게 될 날이 올 것을 노래해 객석의 마음을 움직였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칼라프 왕자 역의 테너 박성규 역시 금방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던 10대, 20대 시절로 돌아간 듯한 모습으로 연기해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였다.

이날 단 한 번으로 끝난 예술의전당의 네 번째 콘서트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리즈 린드스트롬은 또 한 번 새로운 모습의 투란도트 공주를 선보였다. 투란도트가 될 때 가장 기쁘다는 리즈 린드스트롬. 관객들은 그녀가 이끄는 대로 20세기의 「투란도트」를 여행했다.


윤상민 학술문화부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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