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롭게 등장한 사회생물학은 인간과 동물간의 이런 차이마저 부정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성적 인간관에 대한 더욱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윌리엄 해밀턴의 ‘친족선택 모형’,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모두 인간의 본성과 사회생활을 철저하게 동물들의 사회생활과 같은 생물학적 기반 위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의 이타적 행위와 다른 동물의 이타적 행위에는 어떤 질적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물론 인간의 이타주의는 문화적 학습에 의해 변형될 수 있고 강화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가 생물학적 기반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생물학을 바라보는 철학의 입장은 크게 두 유형으로 정리된다. 하나는 가장 보수적인 전통 철학의 태도로서 사회생물학적 논의나 연구 결과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아예 눈감아 버리는 것이다. 이들은 여전히 선험적 자아나 보편적 진리를 자신의 상표로 내세우면서, 마음이나 인식, 윤리를 사회생물학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다뤄야만 그 본질을 제대로 탐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철학이나 다른 인문사회과학의 논의에 사회생물학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필자도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이런 입장을 지지한다. 사회생물학은 충분히 인정될만한 연구프로그램을 갖춘 새로운 학문이며, 대단히 비옥한 연구분야로 평가될 수 있다. 그것은 다양한 현상들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지금까지의 여러 분과 과학들이 해명해 주지 못한 인간성과 인간행위의 가장 궁극적인 비밀들을 밝혀줌으로써, 인간과 사회현상에 대한 문화적 접근의 한계를 보완해 준다. 그 결과 자연과 문화의 종합이라는 하나의 포괄적인 인간상을 수립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행위에 대한 사회생물학적 설명이 전적으로 옳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화현상 중에는 유전자로 환원해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생물학적 기반을 넘어서는 이성의 권능을 어느 부분에서는 인정해야만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화적 진화에는 자체 동력이 있기 때문에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는 연관되면서도 구분되는 중첩적 성격으로 규정될 필요도 있다. 사회생물학에만 의존해서 인간을 이해하고자하는 태도는 맹목적이지만, 사회생물학적 기반이 없는 인간 이해는 공허하다.
이한구 / 성균관대·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