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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개혁, 새로운 비전 제시해야
대학개혁, 새로운 비전 제시해야
  • 정용길 논설위원
  • 승인 2017.12.11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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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정용길 논설위원/충남대·경영학

대학개혁은 잘못된 과거의 청산과 새로운 비전 제시라는 두 가지 방향에서 이뤄져야 한다. 전자가 대학개혁의 최소 조건이라 한다면 후자는 현재보다 나은 대학을 만들기 위한 미래의 발전방향에 대한 것이다. 지난 글이 전자에 해당된다면 이번에는 후자에 대한 것을 다루고자 한다.

첫째, 대학의 지배구조와 시스템을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재정립해야 한다. 대학구성원이 직접 총장을 선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과거에 직선제로 총장을 선출한 경우에도 민주적 리더십을 발휘하기보다는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행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대학의 총장은 모든 권한을 독점적으로 행사했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에는 자유로웠다. 총장의 권한이 민주적 방식으로 행사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작동원리가 대학운영에도 도입돼야 한다. 현재 각 대학의 학무(교무)회의는 대학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이지만 총장의 독주를 견제하지 못한다. 총장과 총장이 임명한 보직자들을 중심으로 집행기능을 수행하도록 하고, 교수들에 의해 선출된 학장과 직원 및 학생대표로 구성되는 ‘대학의회’를 만들어 학교의 중요한 의사결정과 예산의 심의·결산 등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대학의 자치와 자율화가 더욱 강화되고 제도화돼야 한다. 현재와 같이 교육부가 대학의 모든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대학 발전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대학의 생명은 자율성과 다양성인데 우리나라의 대학교육은 너무 획일화되어 있다. 교육부 관료 몇 명에 의해 백년대계가 휘둘리고, 정치논리와 시장논리에 끌려 다녀서는 대학의 미래는 없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정치권력이 대학에 개입해 대학은 황폐화됐다. 재정지원을 무기로 대학을 정권의 시녀로 만들었고, 취업을 미끼로 시장권력에 예속하게 만들었다. 교육부의 존재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도 필요한 시점이다. 자치와 분권의 시대를 맞이해 초중등 교육은 각 시도 교육청에, 고등교육은 대학에 맡기면 된다. 장기적이고 전반적인 대학교육의 틀과 방향은 정권으로부터 자유로운 ‘국가고등교육위원회’를 만들어 이곳에서 담당하면 될 것이다.

둘째, 대학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현재 필자가 몸담고 있는 충남대의 경우에 2만5천여 명의 재학생과 1천명에 이르는 전임교수를 확보하고 있는 지역 거점대학이다. 예산은 4천억원 정도다. 각 지역을 대표하고 있는 거점대학들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에 미국의 주립대학 중에서 충남대와 학생 수가 비슷한 오클라호마주립대의 경우에 가용자원이 13억 달러로서 충남대학의 3~4배에 이르고 있다. 이 학교는 인구가 5만도 되지 못하는 소도시에 있으며 다른 주립대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인 것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대학의 재정형편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를 비롯한 일부 보수적 언론들은 각종 평가지표를 들이대면서 우리 대학들이 무사안일주의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무차별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다. 글로벌 수준의 연구 성과와 교육 효과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지원이 필수적이다. 평가기준도 효율성 보다는 유효성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대학이 사회와 시장의 수요를 무시할 수 없지만 이의 종속적 존재로 전락하는 경우에 대학뿐만 아니라 국가사회에도 불행한 일이다. 대학은 보편적 가치와 진리를 탐구하고 교육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학개혁은 대학의 아카데미즘을 회복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는 대학의 자율과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이며, 비용이 아닌 투자의 관점에서 대학을 신뢰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돼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람에 대한 투자 없이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에 불과하다.

 

정용길 논설위원/충남대·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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