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숙의민주주의
과학기술과 숙의민주주의
  • 유지홍 충북대 학술연구교수
  • 승인 2017.12.11 15: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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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유지홍 충북대 민법·생명의료법 학술연구교수

15년간 의식불명이었던 식물인간에게 3개월 동안 전자약(electroceutical)으로 자극을 준 결과 의식이 돌아왔다거나, 온몸이 마비된 사람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를 통해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됐다는 보도가 최근에 있었다. 반면, 중국의 중산대학은 두 개의 정자와 한 개의 난자로 수정된 86개의 ‘비정상 수정란’을 대상으로 유전자 편집을 했다가 모두 폐기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내가 처음 첨단생명공학을 접했던 10여 년 전에는 황우석 박사의 ‘체세포복제배아 줄기세포’가 가장 큰 화두였다. 척수손상 등 불치병 환자에게 재기의 희망을 주는 동시에, 인간배아파괴라는 생명윤리적 논란을 동시에 불러왔다. 과학은 그 이후로도 급속도로 발전했다. 특히 최근 개발된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기술은 난치병치료와 신약 개발에 획기적인 향상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DNA라는 생명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변경을 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생명윤리 침해와 생태계 파괴의 우려도 증폭시키고 있다. 10여 년 전에도 지금도, 첨단과학은 난치병 치료에 대한 부푼 희망과 인간생명과 문명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라는 양날의 검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또한 국제적인 경쟁을 배경으로 기술개발에 엄청난 가속도까지 붙어있다. 한 여름 장마에 장대비가 내리듯이, 첨단과학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보된 성과들을 쉼 없이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 영역은 전 분야에 걸쳐있다. 저수지와 하천에 빠른 속도로 물이 차오를 때, 물길을 잘 내면 가축과 농작물에 필요한 생명수가 된다. 그러나 차오르는 물을 방관하거나 물길을 잘못내면, 하천이 범람하고 저수지의 둑이 무너져 되돌릴 수 없는 재앙이 된다. 지금 첨단과학기술의 물이 빠르게 차오르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위해 가장 적합한 방향을 찾고, 과학기술의 물길을 올바른 곳으로 내는 것이다.

2004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생명의료분야의 기술개발에는 인문사회과학자들이 함께 참여해 방향성을 논의해왔다. 특히 2017년에는 민관협의체가 구성돼 수개월동안 유전자 편집, 장기이식, 인공지능 등 구체적인 기술에 대한 제도개선을 논의해오고 있다. 과학기술의 올바른 물길을 내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 생각된다. 특히 최근에는 이러한 전문가 논의 이외에 큰 감동을 준 계기가 있었다. 바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위원회가 진행한 ‘숙의형 공론조사’이다. 숙의과정을 통해 참여단이 보여준 높은 시민의식이나 주권자로서의 열정과 책임감은 많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비전문가 시민참여단’이 내리는 결정을 신뢰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던 많은 사람들에게 작은 충격이 됐으며,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민주적인 절차를 통한 논의과정은 그 자체로 실체적 정의와 숙의민주주의 실현의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주기에 충분했다. 시민참여단이 보여준 숙의공론화와 집단지성의 힘은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훌륭했다. 그래서 공론화 위원장이었던 김지형 변호사는 당시의 시민참여단을 ‘471명의 현자’라고 불렀다. 

첨단과학의 길을 찾는 것이 가장 시급한 지금이다. 잘못하면 둑이 무너지고 범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길을 잘 찾는다면 생명을 키워내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나는 서로 마주하고 있는 시민 개개인과 민주주의의 힘에 신뢰를 두었으면 한다. 전문가 논의를 거친 후, 시민의 철학과 가치관에 기반한 ‘숙의 공론화 과정’을 거친다면 다양한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올바른 물길을 잡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과학기술의 청사진을 마련하기 위해, 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융합연구는 필수적인 과정이 되고 있다. 나는 연구재단 학문후속세대 지원을 받아 첨단과학의 법적 쟁점을 차분히 검토할 기회를 가지게 됐다. 앞으로 젊은 인문사회과학자들에게 더 많은 연구기회가 주어져, 열정과 도전으로 첨단과학시대에 적합한 인간존엄과 행복의 물길을 열어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유지홍 충북대 민법·생명의료법 학술연구교수

 경북대에서 배아·유전자의 법적지위로 박사를 했다. 배아, DNA, AI 등 첨단과학기술을 둘러싼 법률문제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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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홍 2017-12-13 03:16:22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