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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별을 바라보던 탈레스의 마음으로
[學而思] 별을 바라보던 탈레스의 마음으로
  • 김찬주 이화여대 물리학과
  • 승인 2017.12.09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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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세상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언제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우주가 되었으며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시간은 무엇이고 공간은 무엇인가? 이들은 아마도 인간이 지구에 존재한 순간부터 끊임없이 묻고 또 묻던 질문일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어린 시절에, 질풍노도의 사춘기 때, 아니면 생을 정리하는 시점에 답을 찾아보려 노력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것을 궁금해 하고 답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을 지구에 존재하는 다른 생명체와 구분 짓는 가장 근원적인 속성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것은 지구상의 인류에만 국한된 질문이 아니다. 만약 우주의 어느 곳에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들 역시 같은 질문을 하고 있을 것이다. 먼 훗날 어떤 이유로 지구상에서 인류가 사라진다 해도 우주의 다른 곳에서 계속될 궁극의 질문인 것이다.

문헌에 의하면 신이나 마법 같은 초월적인 힘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이성으로 합리적 사고를 통해 이런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했던 최초의 사람이 탈레스였다고 한다. 탈레스는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오늘날에도 수천 년 동안 케케묵은 이 근원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물리학자라고 불린다.

가끔 어떤 계기로 물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때마다 좀 난감하다. 특별한 계기 같은 것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필자는 언제부턴가 물리학을 공부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을 상상해보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고, 중학생 때는 물상이 좋았다. 고등학교에 와서는 물리가 재미있었을 뿐이다. 대학 시절에는 당연히 대학원 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연구원 생활을 거쳐 대학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교육은 본래 필자의 꿈에 없었다. 물리학을 계속 하고 싶어 교수가 됐을 뿐이다. 그러자 교육이 회피할 수 없는 의무가 됐다. 필자에게 연구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필자는 물리 공부를 하며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즐거움을 느낀다. 본질적으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육은 완전히 다르다. 교육은 필자가 아니라 타인의 인생이 결부된 일이다. 강의는 적어도 수십 명에 달하는 학생들의 미래에 핵심적으로, 그리고 비가역적으로 개입하는 행위이다. 강의를 제대로 하지 않아 누군가의 삶이 통째로 바뀌는 것을 상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개인적인 호오나 이해득실을 따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물리학을 연구하다 보면 두 가지 상반된 느낌을 갖게 된다. 첫째로는 우주에서 지구가 차지하고 있는 미약함이다. 지구는 전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지극히 평범한 곳에 있는 티끌보다도 작은 존재이다. 이곳에서 인간은 100년 정도의 삶을 살다 갈 뿐이다. 다른 하나는 역설적으로 이러한 한없는 미약함으로 인해 생겨나는 정 반대의 느낌이다. 티끌 속의 티끌보다도 못한 인간이 도대체 어떻게 하여 우주 궁극의 원리와 우주의 운명에 대해 알게 되었을까? 인류가 이룩한 지적 문명의 위대함은 결코 지구라는 지리적 한계에 의해 제약받지 않는다.

교육에서도 상반된 두 가지 느낌이 있다. 필자는 때때로 두려움을 느낀다. 태평하게 앉아서 필자 같은 얼치기 교수의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말이다. 필자가 언제 교육자의 자격이 생겼는가? 교수가 되기 전 인생의 어느 시점에도 교육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교육자로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강의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학생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른 채 ‘교수’라는 직함만 가지면 자동으로 교육자의 자격이 생기는 것일까?

두려움은 가끔 안도감과 깨달음으로 바뀐다. 얼치기 교수의 엉성한 강의에 호응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그리고 졸업한 학생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인류가 이룩한 지적 문명은 결코 교수의 어리석음에 의해 전수가 중단되지는 않는 것이다. 탈레스는 밤에 별을 보고 걸으며 하늘의 이치에 대해 탐구하다가 우물에 떨어져 하녀에게 어리석은 인간으로 비웃음을 샀다고 한다. 그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어리석음 때문에 지금 필자와 학생들이 물리학을 배울 수 있게 됐을 것이다.

 

 

 

김찬주 이화여대·물리학과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입자물리학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욕 시립대, 서울대, 고등과학원에서 연구했으며 서울대 연구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이화여대에서 재직하고 있다. 백천물리학상을 수상했으며, ‘대학 100대 좋은 강의’의 중 하나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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