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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사적 전환기의 대학, ‘가야할 길’을 물었다
문명사적 전환기의 대학, ‘가야할 길’을 물었다
  • 한태임 기자
  • 승인 2017.12.09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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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미래 세대를 위한 탁월한 교육과 연구’ 토론회

대학은 무엇인가? 대학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오래된 질문이다. 경희대(총장 조인원)는 지난 6일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구성원 토론회를 개최했다. ‘미래 세대를 위한 탁월한 교육과 연구-경희의 도전’을 주제로 3시간 여 펼쳐진 토론회장은 미래 대학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논의로 뜨거웠다. 단지 경희대에 국한된 상황이 아닌, 문명사적 전환기에 한국 대학이 마주한 현실을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조인원 경희대 총장은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미래 세대가 느끼는 두려움을 대학에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가 매우 중요한 과제인 것 같다”면서 “오늘 토론의 결과가 대학 정책·제도·문화 속에 자리 잡을 수 있었으면 한다”는 인사말로 토론회의 문을 열었다.

 

경희대가 ‘미래 세대를 위한 탁월한 교육과 연구’를 주제로 구성원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경희대

 

대학의 기원과 성격

이날 기조 강연은 물리학계의 원로이자 석학인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주제는 「미래 대학을 위한 새 이념의 모색」으로, 역사적으로 논의돼온 대학의 이념들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우리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장 교수는 대학의 이념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는데 ①뉴먼(Newman)의 학문수도원 모형, ②플렉스너(Flexner)의 연구유기체 모형, ③커어(Kerr)의 지식도회지 모형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각각 19세기 전반의 옥스퍼드 대학, 20세기 초반의 베를린 대학, 그리고 1960년대의 캘리포니아 대학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장 교수는 이들 세 개의 모형을 한국의 대학과 연결 지었다. 군자 교육을 표방했던 유학 교육은 뉴먼의 모형, 독일 대학의 학제를 모방했던 일제의 제국 대학은 플렉스너의 모형에 가깝고, 미국의 주립대학 모형을 본 따 만들어진 해방 후의 종합대학들은 커어의 복합대학 유형에 근접해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유교 교육의 전통까지 감안한다면 우리 고등교육기관의 역사는 서구 어느 나라와 비교해 보더라도 결코 짧지 않으나, 불행히도 현대 한국의 대학들은 이러한 전통의 맥을 올곧게 이어오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의 대학은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장 교수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한국 대학의 이념을 찾아서」(1996) 글을 인용하면서 “단순히 선진국 대학들을 추종하려고 하면 우리와 그들 사이에 놓인 여건의 차이는 부담일 수밖에 없으나, 그들이 못하는 새로운 것을 하면 이러한 여건의 차이가 오히려 창의력의 소재가 되고 활력의 원천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인간의 지적 능력(상황 맥락적 지능·정서적 지능·영감적 지능·신체적 지능)이 기존의 서구 교육체제보다 우리의 전통 교육 정신에 더 잘 부합된다며 긍정적인 전망도 함께 제시했다.

 

전공 몰입 교육에서 ‘교양 교육’으로 

기조 강연에 이어서 교육·연구·대학원 3개 부문의 패널 토론이 진행됐다. 각 토론에는 학부생과 대학원생도 참여해 현장의 열기를 더했다. 첫 번째 ‘교육’ 부문에서는 미래 교육의 방향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허균영 교수(원자력공학과)가 사회를 맡고, 이영준 후마니타스칼리지 학장, 지상현 교수(지리학과), 김경희 교무처 부처장, 박범근 학부생(정치외교학과)이 참여했다.

교육 부문에서는 대학교육 체제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부터 제기됐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학장을 맡고 있는 이영준 교수는 대학이 지식을 전수하던 프레임은 끝났다고 단언하면서, 모든 지식을 교수가 다 갖고 있다는 생각 자체가 전근대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세상은 변화하고 있고 구글(Google)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교수가 없는데도, 우리는 학과 중심으로 전공 몰입 교육을 하고 있다”면서 “전공 몰입 교육이라는 족쇄를 풀어 학생들에게 자유 시간을 주고 ‘교양 교육’을 통해 기초 체력을 키워 비판적 사고력·창의력·협업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 대표로 자리한 박범근 학부생은 좀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 재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융합 전공’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본질’에 대한 논의 없이 피상적인 변화에만 그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대학다운 대학이 과연 무엇인지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그 정의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청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두 번째 ‘연구’ 부문에서는 우수연구자 지원 방안에 대한 논의들이 이어졌다. 이승룡 교수(컴퓨터공학과)가 사회를 맡고, 남태현 경상대 교수(재료공학과), 김상준 공공대학원 교수, 여승근 교수(의학과)가 토론에 참여했다. 이날 토론회를 위해 먼 걸음을 했다는 남태현 경상대 교수는 신임교수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짚었다. “젊은 교수들이 초기 연구비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연구 경력까지 단절돼, 연구자의 역량이 임용 후 2-3년 내에 감퇴되는 현상을 많이 볼 수 있다”면서 신임교수들에게 전문성이 극대화되는 연구를 지원해줄 것을 주문했다. 또한 대학원 진학률이 낮아 연구인력 확보가 어려운 점을 함께 지적하면서, 대학원생 장학금 지원을 확대해 중장기적으로 연구 경쟁력을 높이고, 연구자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연구자 친화적인 교원평가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학부-대학원 통합 체제 모색해야

‘대학원’ 부문에서는 한국 대학원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대학원의 도약 방안을 모색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성재 교수(생물학과)가 사회를 맡고, 김종영 교수(사회학과), 홍인기 교수(전자·전파공학과), 김수현 대학원생(국제한국언어문화학과 석사과정)이 의견을 나눴다.

홍인기 교수는 학부-대학원 체제 운영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학부 강좌는 학과 단위로 관리하는데 대학원은 일반대학원에서 전부 관리하고 있어서 변화에 대응하기엔 몸집이 너무 크다”면서, 대학원에도 마땅한 권한과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교육·연구 분야에서 학과와 대학원이 완전히 분리돼 운영되고 있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융합 교육도 학부 중심으로만 얘기를 하시는데 대학원생을 빼놓고 ‘융합’을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학부와 대학원을 하나로 묶어서 갈 수 있는 효율적인 조직 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학원생 대표로 자리한 김수현 석사과정생은 대학원생들이 실질적으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공유했다. “많은 학생들이 등록금이나 생활비 마련을 위해 행정조교·연구조교 생활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지만 현 장학제도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행정조교에 대한 야근 및 부당요구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대학원생들이 하고 싶은 연구를 실제로 대학원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연구 환경을 개선해줄 것, 융합 연구를 원하는 학생에게는 공동 지도교수를 선택할 수 있게 해줄 것 등을 제언했다.

이날 토론회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로 직업의 형태, 산업과 시장 구조가 급변하고 있는 시점에서 ‘시의적절’ 했다고 할 수 있다. 교수뿐만 아니라 대학의 또 다른 주체인 학생까지 참여했고, 경희대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한국 대학 전반의 문제를 짚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었다.


한태임 기자  hantaei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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