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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 동향 : SARS 문제를 통해 본 질병의 사회학
과학계 동향 : SARS 문제를 통해 본 질병의 사회학
  • 안성우 과학객원기자
  • 승인 2003.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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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그 이상의 대응책 시급

우리나라의 경우 1950년대에는 결핵, 1960년대에는 진단불명의 병명 미상 질환 및 결핵을 포함한 호흡기 질환과 콜레라 및 장티푸스 등 각종 수인성 전염병들이 중요한 사망원인이었다. 다른 한편, 사망원인은 아니었으나 국민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입힌 기생충 감염 등 또한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비전염성의 순환기계통 질환 및 각종 암들이 우리나라 사망원인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늘어나는 병원체와 질환

질환에도 선진국형이 있고 후진국형이 있다는 말에서 잘 드러나듯 분명 인류에게 있어 전염병이란 단순히 병원체 하나만에 의해 발생하지는 않는다. 경제적인 수준, 그리고 이에 따른 의료혜택의 차이, 환경요소의 영향 등에 의해서 특정한 전염병은 인체의 면역체계를 무력화시키고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요통이나 빌딩증후군, 냉방병 등 소위 ‘문명병’으로 불리고 있는 질병들의 목록에, 사실은 결핵이나 에이즈 등의 전염병들도 추가시켜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인구 2백 명 중 1명이 앓고 있는 결핵의 경우, 보균자가 많다는 점뿐만 아니라 무리한 다이어트 때문에 저항력이 약화되거나 청소년 시기부터의 흡연 등으로 발병률이 더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에이즈의 경우는 반대로, 각종 치료법들을 혼합한 ‘칵테일 요법’을 통해 그 진행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고 하지만 아프리카의 경우 그러한 혜택을 받지 못하는 ‘문명의 사각지대’에 위치하기 때문에 피해가 커지고 있다. 또다른 의미의 ‘문명병’인 것이다.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총인구 9백80만 명인 잠비아의 경우 하루에 2백명이 에이즈로 사망하고 5백명이 새로 에이즈에 감염되고 있다. 10년 전과 비교해 평균 수명이 11년이나 감소, 현재 잠비아 국민의 평균수명은 33세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편 지난달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연합 아동기금은 “30초마다 1명씩, 매일 3천여명의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유는 예방접종은 물론 모기장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 때문이다. 이러한 아프리카 대륙의 생존이 걸린 문제에도 불구하고 간간이 제기되는 지원의 필요성 외에는 뚜렷한 지원의 흐름이란 없다.

현재 진행 중인 사스가 그렇게도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사실 사스가 지니고 있는 치명적인 위협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60세 이상 환자의 경우는 절반 가량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보고도 있지만, 바이러스성 질환이 지닌 장기간에 걸친 위협 이외에도 세계경제 및 기업에 끼치는 사스의 충격 또한 지금 사스가 주목받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사스에 대해 세계보건기구 및 각국의 기민한 대응과 협력체제 구축은 세계화에 따라 전염병의 급속한 확산 가능성이 커진 만큼 전세계적인 대응 또한 이전보다 더욱 수월해진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대응체계가 없었다면, 일국적인 의료체계만으로는 전염병에 대응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에이즈의 확산이나 치명적인 전염병들이 아프리카에서 발생,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전세계적인 전염병에 대한 대응체계’는 너무나 큰 허점을 가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아프리카 등 소외된 지역에서 등을 돌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만, 계속되는 기후변화 및 새로운 질병원인의 등장, 그리고 이와 맞물린 문명화된 사회의 예측할 수 없는 약점들은 앞으로의 안전에 심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지금의 사스 사태는 하나의 경고라는 지적 또한 이러한 상황의 인식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헛점 많은 ‘질병 대응체계’

결핵이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여겨지던 1920년대 후반, 캐나다의 의사 노먼 베쑨은 결핵을 완치시킬 수 있는 수술적 치료법 및 이를 위한 도구제작 등으로 결핵 퇴치를 위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환자 한 명을 고칠 때 경제적인 빈곤이 열 명의 새로운 환자들을 만들어내는 현실에 직면해 개개인의 환자뿐만 아니라 질병을 만들어내는 사회경제적 환경에 메스를 가할 필요를 느껴서 몬트리올 국민보건그룹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현대적인 의료보장체제를 선구적으로 실현한 셈이다. 한 사람의 의사가 아닌, 사회를 치유하는 의사가 되고자 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오늘날 전염병 퇴치는 한 국가의 의료보장체제만으로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더 나은 치료제가 개발돼도, 그 혜택이 일부 국가 혹은 일부 국민에게만 주어진다면 과연 우리는 전염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스 사태로 전염병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고 있다. 전세계의 전염병 퇴치가 주목받고 있는 이 시점에서, 치료제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그 이외에도 전염병의 다양한 ‘원인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뒤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안성우 과학객원기자 swah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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