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두, 탁란과 에드워드 제너
천연두, 탁란과 에드워드 제너
  • 김환규 전북대·생명과학과
  • 승인 2017.12.0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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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김환규 전북대·생명과학과

영국의 의사이자 박물학자인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는 18세기 후반에 천연두 예방접종법을 확립해 인류의 건강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이러한 그의 업적을 기려 ‘면역학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다. 제너는 어려서부터 박물학과 의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14살 때부터 성 조지병원에서 외과의사이자 박물학자인 존 헌터(John Hunter) 밑에서 외과학과 해부학을 공부했다.

제너는 1773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개업의로 활동하면서 야생생물 및 의학 연구에 몰두했다. 그 당시에 가장 무서운 질병은 천연두로 치사율이 33%에 이르렀으며 치료책이나 예방 방법은 전혀 없었다. 제너는 암소의 젖을 짜는 여인들이 이 질병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관찰하고 우두 균주를 사람에게 접종시키면 천연두로부터 보호 받을 것이란 가설을 시험했다. 1796년에 제너는 우두에 걸린 여성의 수포에서 고름을 채취해 8세 소년의 상처 부위에 접종했다. 그 결과 이 소년은 미열이 발생했으나 무사했고 이후 천연두 물질을 주입해도 천연두에 내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근거로 제너는 천연두 예방 방법을 제공하게 됐으며, 결국 1979년에 세계보건기구는 지구상에서 천연두의 박멸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제너는 1789년에 영국왕립학회의 회원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그것은 천연두 예방접종에 대한 의학적 업적이 아니라 1788년에 영국왕립학회의 <Philosophical Transactions>에 발표된 뻐꾸기의 托卵에 대한 연구 업적에 의해서였다. 제너는 또한 열렬한 화석 수집가이자 지질학자로, 1819년에 고대 파충류의 일종인 수장룡(Plesiosaur) 화석을 발견했다. 그 당시에 화석은 멸종된 종의 잔유물이란 생각이 싹트고 있었으며 제너의 이 발견으로 화석은 ‘과거의 기념비’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제너는 동물의 동면과 새의 이동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영국 서부에 서식하는 일부 조류가 겨울에 그곳을 떠났다가 여름에 되돌아온다는 것을 관찰해, 겨울에 조류가 보이지 않는 것은 조류가 진흙 속에서 잠을 잔다는 기존의 생각과 상반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탁란은 조류, 물고기, 곤충 등에서 볼 수 있는 기생의 한 형태로, 다른 종 또는 동일 종의 둥지에 산란해 숙주 종이 다른 새끼를 부양하는 것이다. 제너는 탁란을 포함한 뻐꾸기의 생활사를 세심하게 관찰했다. 부화한 어린 뻐꾸기가 숙주 새의 알과 새끼들을 어떻게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지를 관찰한 것이다. 이전에는 어미 뻐꾸기가 그런 일들을 한다고 믿어왔다. 새끼 뻐꾸기가 부화해 나오면 그 새끼 뻐꾸기는 숙주 새의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고 둥지를 독차지한다. 양부모는 그들이 괴물을 품고 있는지를 눈치 채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새끼 뻐꾸기가 너무 커서 둥지가 맞지 않을 때까지도 힘겹게 새끼를 부양한다. 결국 뻐꾸기는 그들 자손의 양육을 전적으로 다른 종에게 의지한다.

탁란을 행하는 조류도 종에 따라 서로 다른 탁란 양상을 보여준다. 새끼 오리는 숙주 종의 알을 파괴하지도 않고 그들의 양부모를 노예처럼 부리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알을 배양할 온기뿐이다. 이에 비해 새끼 꿀잡이새는 부리에 있는 특이한 갈고리를 이용해 부화한 다음, 이 갈고리를 이용해 둥지에 있는 나머지 알들을 파괴하거나 다른 종의 새끼들을 죽인다. 반면, 새끼 찌르레기는 둥지에 있는 다른 새끼들을 공격하지 않으나 먹이를 놓고 경쟁한다. 탁란은 같은 종 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거위와 검둥오리는 같은 종의 이웃 둥지에 산란하기도 하는데, 이런 현상은 조류에만 제한적인 것은 아니다. 어류와 곤충도 종종 자손의 양육을 남들에게 떠맡긴다. 이런 현상은 인간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자연계에서 가장 기이하고 파괴적이며 강탈적인 행위다.

제너가 밝힌 뻐꾸기의 탁란 행동에 대한 연구 결과는 조류의 생활사 연구자인 제미마 블랙번(Jemima Blackburn)이 동일한 관찰 결과를 발표하기 전까지 신뢰를 얻지 못했다. 그녀의 관찰 결과로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의 개정판에서 제너의 탁란 연구 결과를 반영했다. 탁란이 흥미로운 것은 선택압이 작동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뻐꾸기의 위협이 커질수록 숙주 조류가 불청객을 식별하는 선택압이 증가하게 되고, 이것은 다시 강한 선택압으로 작용하여 뻐꾸기가 들키지 않도록 진화한다.

데이비드 애튼버러(David Attenborough)는 그의 저서 『조류의 생애』(1998)에서 탁란의 이점을 간결하게 설명했다. 탁란은 기생 조류에게 어린 새끼를 부양해야 하는 부담을 완화시켜 주거나 또는 어린 새끼들을 위해 둥지를 지을 필요가 없어 보다 많은 먹이를 획득하거나 보다 많은 알을 낳을 수 있게 해준다. 탁란 조류는 서로 다른 숙주 조류의 둥지에 산란하기 때문에 둥지에서의 피식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어 결국 그들 자손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준다. 산란시기가 되면 탁란을 행하지 않는 새들은 3~5개를 산란하나 뻐꾸기는 평균 25개의 알을 각기 다른 둥지에 낳기 때문에 그들의 유전자가 자연계에 확산될 확률이 크게 증가된다.
 

 

김환규 전북대·생명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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