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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 생활의 맥도널드화 확인 … 미시적 변화 연구 확대돼야"
“의식주 생활의 맥도널드화 확인 … 미시적 변화 연구 확대돼야"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12.0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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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현대 한국인의 의식주 변화상 읽어낸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

사람은 먹고 입고 잔다. 이 기본적인 행위가 그 사람을 만든다. 그렇다면, 해방 이후 한국사회, 한국인은 무엇을 멋고, 입고, 어떤 집에서 살아왔을까. 이와 관련 최근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가 내놓은 『한국인, 어떤 옷을 입고 살았나』(조희진 외), 『한국인, 무엇을 먹고 살았나』(주영하 외), 『한국인, 어떤 집에서 살았나』(이희봉 외)가 단연 눈길을 끈다. 이 책들은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부터 2015년까지 한국인의 식생활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각 시기별로 나누어 살폈다. 물질로서 옷·음식·집의 변화를 다루는 것을 넘어서서 현대 한국인의 구체적인 생활상을 재구성했다. 인문학 및 사회과학적 시각을 바탕으로 현대 한국인이 영위해온 일상의 소소하고 생동감 넘치는 식생활사를 각 시대의 정치·사회·문화적 배경과 연결 지어 통찰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자료들 예컨대, 국가기록물, 신문, 잡지, 박물관 자료, 기업사 자료, 구술 및 조사 자료, 방송 자료, 논문, 단행본, 웹사이트 등과 같은 다방면의 자료를 동원했다. 시간적 흐름 속에서 의식주 생활을 영위하는 한국인을 중심으로 그들의 생각과 선택에 주목하며, 의식주를 통해 드러난 당대인의 심리까지 살펴보고자 한 이 책들의 기획 중심에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가 있다. 연구년을 맞아 캐나다가 나가 있는 주 교수를 이메일로 만났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 주거생활의 생활사와 미시사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최근 단군이래 가장 큰 변화를 겪었다고 할 만한 ‘현대 한국인’의 의식주 변화상을 정리한 세 권의 책이 나왔다. 원래 2015년 광복 70주년에 맞춰 기획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늦어졌다. ‘의식주 변화상’에 주목한 이유가 궁금하다.

“알다시피 ‘의식주’는 인류가 생존하는 데 필수적인 생존 조건이다. 전근대 시기의 의식주 생활은 개인이나 가족이 해결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국가가 지원을 했다고 해도 매우 한정적이었다. 그러나 18세기 이래 유럽을 중심으로 의식주 생활은 산업화의 길을 걸었다. 이제 개인이나 가족의 몫이 아니라, 산업의 몫이 된 것이다. 한국사회는 1945년 해방과 1948년 정부수립, 그리고 1950~53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산업화의 길에 들어섰고, 1980년대에 산업화를 완성하였다. 특히 1950년대 시작된 미국의 원조물자는 의식주 생활의 변화를 주도했다. 산업화된 한국인의 의식주 생활의 변화상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바로미터이다. 이 점이 이번 기획을 추동시켰다.”

△ 이번 기획에서 돋보이는 대목은, 해방이후 한국인의 의식주 변화와 생활의 영향을 시기별로 나눠 살피면서 단순히 물질로서 옷, 음식, 집의 변화를 다루는 것을 넘어, 구체적인 생활상을 재구성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번 기획을 통해 집필자들이 확인한 ‘구체적인 생활상’의 가장 큰 특징을 요약한다면?

“앞에서 말했듯이, ‘산업화’다. 자신이 원해서 아파트에 사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주택정택으로 인해서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점. 한복을 입고 싶지만, 경제활동의 영역이 서구화된 결과 청바지를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 한국음식을 먹는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수입된 값싼 식재료로 만든 무늬만 한식을 먹고 있다는 점 등이 확인된 구체적인 생활상이다. 경제성장이 의식주 생활을 더욱 화려하고 고급스럽게 만든 듯하지만, 소비자로서 자신의 선택 지점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이 해방이후 한국인의 의식주 생활상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경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민이다. 과연 한국적인 의식주 생활이 무엇인지 말이다. 의식주의 한류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우리 자신의 생활모습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이번 연구에서 확인했다.”

△ 의식주는 결국 인간의 의식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들은 인간의 독특한 심리를 형성할 수 있다. 이번 작업에서 확인했을 것 같은데, 해방 이후 최근까지 진행된 한국인의 의식주 변화상은 한국인의 의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한마디로 정리하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편리성을 추구하려는 의식’이다. 다른 말로는 의식주 생활의 맥도널드화(McDonaldization)라고 부를 수 있다. 지난 70여 년을 거치면서 한국인은 거의 비슷한 집에서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음식을 먹게 됐다. 이러다 보니 의식주 관련 소비는 무조건 편리하면 된다는 의식이 강하다. 장례식장에도 번호가 붙어 있고, 화장장에도 그렇지 않은가? 한국사회는 과정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그보다는 경제적 차이를 어떻게 따라 잡을 것인가 하는 데 몰두하는 편이다. 결국 어떤 집에 살아야 행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여력이 없다는 말이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현상은 의식주 생활의 서양화 혹은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전통’에 대한 무조건적인 열망도 최근 한국인의 의식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데도 그런 말을 쉽게 내뱉기 어려운 것이 학계의 풍토다. 그래서 이번 기획에서는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전통’만 다뤘다.”

△ 다양한 분야의 필진들이 참여했다. 기획이 좋더라도, 구슬 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필자는 어떻게 섭외했으며,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집필했는지, 자료는 어디까지, 어떻게 확보해서 활용했는지 궁금하다. 혹 이 작업에 도움을 준 기왕의 성과들이 있다면.

“2014년 하반기에 이 세 권의 책을 기획하는 프로젝트를 내가 연구책임자가 되어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부터 수주 받아서 먼저 수행했다. 과연 본격적인 구술사 인터뷰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1945년 이후 현재까지의 의식주 생활사를 정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다행히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학계와 박물관·자료관 등에서는 2000년을 맞이하면서 1950년대 이후의 생활상에 대한 많은 자료를 확보해 두었음을 확인했다. 다만, 이 분야의 대부분 연구자가 전근대시기를 주로 다룬다는 점이 문제였다. 다행히 주생활의 연구책임자인 이희봉 교수는 전근대시기는 물론이고 1950년대 이후의 산업화된 주생활사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한 분이다. 의생활의 연구책임자인 조희진 박사 역시 의생활 전공 후에 민속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분이다. 이 분들과 20년 가까이 교류해온 덕분에 이 세 권의 기획이 완성될 수 있었다.”

한중연 의식주 기획서
한중연 의식주 기획서

△ 선생님은 그간 『장수한 영조의 식생활』(2014), 『식탁 위의 한국사』(2013), 『음식 인문학』(2011), 『맛있는 세계사』(2011),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2005), 『음식전쟁, 문화전쟁』(2000) 등을 발표해오셨다. 요컨대 생활사, 미시사의 측면에서 음식을 조명함으로써 문화사의 저변을 확장한 것이다. 이번 기획서들을 통해 확인하셨겠지만, 생활사라는 측면, 미시사의 측면에서 의식주라든가, 여가, 교통, 심지어 탄생에서 죽음까지 한국인의 ‘라이프’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관한 학계의 연구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궁금하다. 또, 어떤 작업이 필요한지 듣고 싶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의식주나 일생의례와 관련된 생활사에 대한 한국학계의 연구는 전근대시기에 집중돼 있다. 지난 20여 년 사이에 식민지시기에 대한 연구 성과가 나오고 있지만. 학계의 이러한 태도는 한국사회의 식민지 경험과 급속한 서구화에 대한 반작용이다. 많은 학자들이 ‘전통의 단절’을 재생시키려고 노력한다. 또 다른 한 가지 문제는 한국의 대학에서 의식주를 이과에 소속시켰고, 지금도 그렇다는 점이다. 사실 ‘현대적 생활개선’이 바로 20세기 이래 자연과학에서 의식주를 바라본 시선이다. 국민의 생활을 계몽해 더 좋은 조건을 제공하겠다는 ‘근대국민국가’의 의지가 연구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결과다. 이러다 보니 미시적인 변화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가령 예술분야의 명인이나 역사적 사건의 경험자에 대한 ‘구술생애사’ 연구는 상당한 정도의 자료 구축이 이뤄지고 있지만, 광복 이후 의식주나 일생의례와 관련된 ‘구술생애사’ 프로젝트는 본격적으로 수행되지 않고 있다. 내가 연구책임자로 올해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연구과제로 「음식구술사: 1960년대 이후 주방장·식품기술자·식품학자」를 수행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 연구년으로 캐나다에 체류하고 있는데, 뭘 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 활동 계획은?

“북미의 동아시아 음식에 대한 기초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한국인은 물론이고, 중국인·일본인·베트남인의 이동과 음식점의 형성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위한 준비작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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