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폐쇄적인 작품 남긴 카프카…‘글쓰기’는 유일한 내적 존재의 가능성
가장 폐쇄적인 작품 남긴 카프카…‘글쓰기’는 유일한 내적 존재의 가능성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7.12.04 1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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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_ 제33강 편영수 전주대 명예교수의 「카프카와 현대인의 초상」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의 2017년 강연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이 강연 4섹션 ‘문학’ 영역으로 이동했다.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 강연은 34강에 걸쳐 새로운 시대로 도약을 가능케 한 역사적 인물 혹은 작품을 선정해 혁신적 사유를 조명해보는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의 네 번째 강연 시리즈다. 여섯 번째 ‘문학’ 강연을 맡은 편영수 전 전주대 명예교수의 제32강 「카프카와 현대인의 초상」 발표문 일부를 요약 발췌했다.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냉철하고 간결한 클라이스트적인 산문, 강연을 하는 원숭이나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 토지 측량사, 流刑地 같은 문학적 형상들과 권력에 대한 심오한 진단으로 20세기 중반 이후 거의 전 세계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프란츠 카프카는 여러 번의 공무 여행과 몇 번의 짧은 여행, 잦은 요양원 입원과 베를린에서의 반년, 그리고 보헤미아 시골에서의 몇 개월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프라하에서 보냈다.

증오하면서도 떠나지 못한 프라하

프라하가 ‘맹수의 발톱’처럼 자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는 카프카 자신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카프카는 프라하를 증오하면서도 끝내 떠나지 못했다. 카프카의 생가, 그가 다녔던 김나지움과 대학, 노동자재해보험공사의 사무실 등이 프라하의 구시가를 비롯한 시내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좁은 영역 안에 그의 인생 전체가 담겨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라하에서의 사회적, 개인적 체험들은 카프카 자신과 그의 작품에 뚜렷한 흔적을 남겨놓았다. 그의 문학적 글쓰기는 문체와 내용에서 과소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노동자재해보험공사의 관리라는 직업에서 얻은 경험에 영향을 받았다. 이런 직업의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 카프카는 현재처럼 유명한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과 동떨어진 작가로 간주된 카프카는 직장 생활을 통해 사회 현실을 더 깊이 들여다봤다.

작가 카프카는 관리 카프카를 부인할 수 없다. 노동자재해보험공사의 관리들의 현실은 카프카의 문학적 현실에 나타난 관리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카프카는 작가이면서 관리이기도 했다. 카프카는 자신의 직업상의 위치와 부당한 대우를 받는 노동자에 대한 연민 사이에서 종종 딜레마에 빠지곤 했다. 노동자가 관리에게 부당한 취급을 받으면 그는 몰래 법률적 조언을 해주거나 때로는 가난한 노동자를 위해 법정 비용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는 국가기관인 보험공사의 관리이면서도 언제나 힘없는 노동자 편에 서서 그들을 돕고 싶어 했고 그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았다.

사실 카프카의 자서전적 증언들과 그의 문학 작품 사이에 엄격하게 선을 긋기는 불가능하다. 카프카의 작품을 ‘문학적 자서전’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중의 의미에서 그렇다. 즉 카프카의 자서전(편지와 일기)은 상당히 문학적으로 묘사돼 있으며 카프카의 ‘문학’(허구의 단편소설들과 특히 장편소설들)은 상당히 자서전적이다. 카프카는 스스로 반복해서 자신의 문학에 자신이 관련돼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소설은 나다, 이야기들은 나다”라고 1913년 초에 펠리체 바우어에게 보낸 편지에서 썼다.

가난한 노동자 위해 법률 조언한 따뜻한 시선

“나는 끝 아니면 시작이다”는 명제는 정확하게 카프카의 종교적 입장을 표시한다. 카프카는 끝이다. 왜냐하면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의 희망의 원칙의 의미에서 종교적 혹은 사회 혁명적 위로와 희망을 뜻하는, 과거에서 연유한 모든 위로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시작이다. 허무주의로부터 새로 시작해야 할 시대였다. 그가 자신의 연구에서 깨달음을 유인해냈기 때문이다. 그 깨달음은 허무주의가 우리 인간 실존의 최종적이며 결정적인 진실과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 쌓인 눈 속에 자유로 이어지는 샛길이 존재한다는 사실, 우리 마음속에 뿌리 뽑을 수 없는 심급이, ‘미지의 법’이, 미지의 법과 함께 ‘미지의 인간 가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평생 카프카는 다른 사람들처럼 결정적인 반경을 긋고 나서 멋진 원을 그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는 반경을 긋는 일을 늘 중단해야만 했다. 반경이란 예를 들면 피아노와 바이올린, 언어, 독문학, 反시오니즘과 시오니즘, 그리고 인생 후반의 히브리어와 원예, 목공, 문학, 결혼 시도, 집 장만 등을 말한다. 카프카의 삶의 중심에는 시작만 한 수많은 반경이 빈틈없이 꽉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신경쇠약에 시달리면서 카프카는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한다.

“나는 문학 이외에 어떤 것도 아니다”

이 와중에서 카프카에게 남은 유일한 욕구는 글쓰기였다. 글쓰기를 통해서 카프카는 투쟁할 필요는 없지만 묘사해야만 할 시대의 부정적인 것을 강하게 흡수한다. 그 목적은 시대의 부정적인 것을 먼저 제시하여 긍정적인 것에 대한 예감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는 지금 여기 있는 이런 삶의 방식을 부정하는 사람이었다. 여기에서의 삶을 부정하는 것은 보다 완전한 삶을 열망하기 때문이다.

카프카에게 글쓰기는 유일한 내적인 존재 가능성이었다. 글쓰기는 카프카의 삶에서 가장 생산적인 활동이었다. 카프카는 글쓰기의 목적에 부응하기 위해 성(性), 먹는 것, 마시는 것, 철학적 사유 그리고 특히 음악의 즐거움으로 향했던 모든 능력들을 고갈시켰다. 카프카는 심지어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문학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는 문학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아니며 다른 어떤 것도 될 수 없습니다.”

카프카는 글쓰기를 단식에 비유했다. 또 카프카의 글쓰기는 ‘지상의 마지막 한계를 향한 돌진’이었다. 카프카는 이러한 글쓰기에 서 위로를 받았다. 글쓰기로 ‘살인자의 대열에서 뛰쳐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현실의 권력 관계에서 빠져나와야만 한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의 ‘벌레-되기’가 바로 ‘살인자의 대열’에서의 탈출에 해당한다. 카프카에 의하면 ‘더 높은 관찰 방식’을 만들어내야 ‘살인자의 대열’에서 뛰쳐나올 수 있다. 이것은 카프카가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관찰 방식으로 현실을 탐구하겠다는 욕망이며, 권력관계에서 벗어난 세계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이다. 이런 의미에서 카프카 문학은 ‘더 높은 관찰 방식’에 의해 관찰된 ‘진짜 현실’의 기록이다.

카프카의 작품은 우리 시대의 가장 폐쇄적인 작품이다. 그의 문학의 수수께끼 같은 특성은 카프카가 자신의 작품에서 형상화하고 싶은 진실이 수수께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불가피하게 표현한 것이다.  때문에 카프카는 해명하는 설명을 포기한다. 오히려 그의 설명은 새로운 모호성을 초래한다. 대신 카프카는 전통적 역설인 ‘顚覆’과 통속적인 사고로부터의 이탈을 뜻하는 ‘轉向’을 결합한 ‘미끄러지는 역설’이라는 사고의 법칙을 사용해서 이미 확립된 개념들을 끊임없이 유동적으로 만들고 독자가 경직된 사고의 습관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 관계를 시험하도록 하기29 때문에 독자는 카프카의 작품에 충격을 받고 카프카의 작품 앞에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카프카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권위 있는’ 해석도 ‘명확한’ 해석도 허용하지 않는다. 사실 카프카 문학에 대한 해석은 독자의 현실의 수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다. 카프카의 비유의 형식의 개방성이 독자에게 독자 자신의 딜레마를 프란츠 카프카의 입장에 완전히 투영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독자의 현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독자는 카프카 문학에 매혹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독자가 카프카 문학에 매혹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독자가 카프카 문학의 주인공들이 겪고 있는 불안에서 자신의 불안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의 현실 수만큼 다양한 해석

카프카에게 특징적인 것은 자신에게 강요되는 지옥의 마이너스 부호를 지닌 이 세계에서 머무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 전력을 다해서 이 세계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쓴다는 사실이다. 카프카가 걷는 방향을 카프카 자신의 말로 표현하면 카프카는 “여기에 나는 닻을 내리지 않는다.” 그의 목표는 ‘여기-에서-떠나는 것(weg-von-hier)’이다. 출발의 장소인 ‘여기’는 ‘허위의 세계’다. ‘여기’에서 떠나려는 카프카 문학의 주인공들(그레고르 잠자, 요제프 K, K)의 시도는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포기되지 않는다.

카프카는 자신의 문학을 통해 독자에게 그들이 권력관계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한다. 카프카는 독자를 자극해서 권력에 저항하고 권력관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감행하게 한다. 카프카는 독자에게 혁명적인 투쟁을 직접 호소하지 않지만 소외 의식을 불러일으킴으로써 현상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일깨운다. ‘현실’이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카프카 문학은 긍정적일 수도 있다.

카프카에게 글쓰기가 감시하고 처벌하는 권력에 저항하는 무기였다면, 독자에게 그 무기는 바로 카프카의 텍스트를 읽는 행위일것이다. 카프카 문학은 그 자체로 세상을 바꾸진 못한다. 하지만 카프카 문학에 자극을 받은 독자가 움직일 때, 비로소 세상은 바뀌고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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