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프라시스를 배우다
에크프라시스를 배우다
  • 김정락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 승인 2017.12.0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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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한 20년쯤 된 것 같은 필자의 미술사 공부는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른 학자들의 그것에 비해 천박하다.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지 의심은 물론, 기초적인 지식에 대해서도 내세울 만한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유일하게 머릿속에 뚜렷이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에크프라시스(ekphrasis)’라고 하는 개념이다. 이것이 필자 속에 들어온 것은 1994년의 가을날이다. 그때 필자는 고전고고학의 한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었다. 이 세미나는 ‘묘사연습’이라고 했는데, 고고학이나 미술사의 전공과정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에게 작품이나 유물을 분석하는 방법과 소양을 쌓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당시에는 빔프로젝터라는 것이 없었고, 슬라이드환등기에 필름을 넣어 투사된 그림을 보는 것이 보통이었다. 동시개봉을 하는 동네영화관의 영상과 비슷해 보였다. 그러나 세미나를 주도하는 선생님이나 학생들의 태도는 매우 진지했고 열정적이었다. 첫 수업에서 첫 도판은 어떤 고딕성당의 정면이었다. 첫 이미지가 벽에 투사됐을 때 선생님은 아무말 없이 학생들을 쳐다봤다. 그림에 대한 설명도 질문도 던지지 않았다. 적막 속에서 몇몇 용감한 친구들이 입을 열었다. “저건 고딕 성당입니다”, “프랑스에서 본 적이 있어요”, “탑이 뾰족해요”등등. 유일한 외국인 학생인 필자는 속으로 웃었다. 왜냐하면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가 답을 말하는 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칭찬을 기대했던 필자에게 선생님은 난처한 미소를 보냈다. 이 수업의 목적은 정답을 맞춰보는 퀴즈가 아니었다는 것. 예컨대 이미지를 보면서, 그것에 대한 언술행위를 실현하는 것이 진정한 목표였다. 선생님은 이 건축물을 되도록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해 보라고 말했다. 필자는 건축물의 형태와 구조에 대해 말했다. 어눌한 외국어가 문제이기도 했지만, 동료들과 선생님은 그것을 문제삼지는 않았다. 그날 수업의 과제는 다음 시간까지 필자가 한 말을 텍스트로 만들어오는 것이었다. 필자는 도판이 있는 책을 찾아 건축물에 대한 묘사를 시작했으며 몇날 밤을 씨름했다. 다시 가져간 글을 확인한 선생님은 필자에게 몇 가지 평가와 질문을 던졌다. 첫째, 필자의 글을 보고 실제 건축물을 연상하기 어렵다. 글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구체적인 사물인 건축에 대한 재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둘째, 글 속에 담긴 정보가 묘사를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글의 양상을 여행안내서 수준의 정보차원으로 끌어내리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셋째, 필자에게 그리고 작품에 대한 묘사가 미술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수줍게 반론을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만용에 가까운 것이어서 민망하기도 하다. 건축물의 기초적인 구조와 그것에 더해진 양식적 특징을 이렇게 묘사한 글은 없었노라고. 그것은 마치 필자가 프랑스 고딕건축에 일생을 바친 대가처럼 자신하고 있었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그런 태도에 대해 선생님은 전보다 더 부드러운 미소로 답해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건축물이 지니고 있을 본질적인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의 토론과 발언은 브레인스토밍과 같은 방식으로 선행된 지식없이 미술품이라는 특정 사물에 대해 집요하게 관찰해 그 본질을 캐내는 것이었는데, 필자의 글은 기존의 지식을 버무려 필자의 논지를 적당히 합리화하는 것이었다. 필자의 글이 추상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지난 다음이었고, 이러한 반성과 동시에 떠오른 것은 동료들의 유치한 발언 속에 간혹 궁극적인 것을 찌르는 것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런 발언이 기억된 지식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그들의 경험에 대한 충실함과 태도 그리고 경험에서 직접 불거진 사유라는 점에서 그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에크프라시스를 배우고 있었고, 필자는 그것을 통해 수습된 지식만을 따르고 있었다는 것이 회한의 재료로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렇게 미술사에 대한 필자의 편견은 긴시간을 두고 해체됐고, 이 해체를 통해 땅바닥에 발을 딛고 서는 느낌을 유학시절 동안 체감할 수 있었다. 에크프라시스는 고대로부터 수사학의 한 영역으로 발전해왔으며, 르네상스 즈음에는 시각적 표상을 언어적인 표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인식됐다. 미술사에서는 예술작품에 대한 언어적 표상 혹은 재현으로 봤다. 고톨드 에프라임 레씽 같은 인물이 18세기에 미술과 문학의 질적 차이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학문으로서의 미술사는 바로 이 차이 사이의 역학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필자에게 에크프라시스를 설명하라고 한다면, 김춘수의 시「꽃」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고 말한다. 죽은 사물인 예술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가 죽은 대상을 살아있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이것을 필자는 그 세미나의 토론 속에서 느꼈고, 너무 늦게 깨달았다.

 

 

 

김정락 한국방송통신대·문화교양학과

서울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미술사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미술의 불복종』, 공저로는 『세계의 도시와 건축』 등이 있다.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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