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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대담] 로버트 브레너 캘리포니아주립대(LA) 교수
[해외석학대담] 로버트 브레너 캘리포니아주립대(LA) 교수
  • 대담:정성진/경상대 경제학
  • 승인 2002.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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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거품 과도화…'격렬한 순환적 하강'도래한다"
대담:정성진/경상대 경제학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소(소장 정성진)의 초청으로 지난 4일부터 10일까지 한국을 방문한 브레너 교수와의 대담을 싣는다. 방문기간중 브레너 교수는 경상대와 서울대에서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논쟁의 현황'과 '호황과 거품: 오늘의 미국경제'란 주제로 각각 두차례씩 강연회를 가졌다. 이 대담은 지난 7일 창작과비평사에서 가진 브레너 교수와 정성진 교수의 대담을 간추린 것이다. 대담 전문은 계간 '창작과 비평' 2001년 여름호에 수록될 예정이다. 대담준비에서 진행·정리까지 도맡아준 정성진 교수와 대담의 게재를 흔쾌히 허락해준 계간 '창작과 비평'에 감사드린다.

△70년대 '브레너 논쟁' 당시 당신은 계급투쟁을 중시하는 관점이었다. 그런데 이행문제를 다룬 최근의 논문들에는 '사회적 소유관계'라는 개념을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다.
"70년대 저의 주된 연구과제는 이행문제에 대한 당시의 지배적인 학설들, 예컨대 상업화설과 인구감소설을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이었는데, 아직 나 자신의 대안적 입장을 체계화하지는 못했습니다. 80년대부터 이행 문제에 대한 나 자신의 이론을 구성하기 시작했는데 '사회적 소유관계'라는 개념은 그 중심축입니다. 이 개념은 '선택' '재생산규칙' 같은 개념을 도입해 계급투쟁의 관점을 발전시키고 정교화한 것입니다."
△계급투쟁을 중시하는 당신의 입장에 대해서 늘 생산력 발전을 경시하는 '정치적 맑스주의', '주의주의적 맑스주의' 라는 비판이 따라 붙는다. 또 생산력 발전에 대한 사회적 소유관계의 우위를 강조하는 당신의 입장이 알튀세르와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수긍하지 않습니다. 저는 생산력 발전이란 요인을 경시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지속적인 생산력 발전이 왜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자본주의 이후에야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사회적 소유관계라는 개념을 통해 입증하려고 했을 뿐이지요. 저의 중심적인 주장은 지속적인 생산력 발전은 분업, 특화, 기술혁신의 메커니즘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이 메커니즘은 한 사회의 경제행위자들이 경쟁의 압박과 '시장 의존'(market dependence) 상태에 놓이게 될 때에 비로소 작동하게 되며, 이는 직접생산자와 생존수단의 결합 및 경제외적 강제에 의한 잉여 수탈이라는 前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적 소유관계의 해체를 조건으로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브레너 논쟁' 그 이후

△이행 문제를 다룬 최근의 글들에서 당신은 '합리적 선택' 같은 개념을 자주 사용한다. 로머 (J.Roemer) 등이 주장하는 분석적 맑스주의 혹은 게임이론과 유사해 보인다.
"저는 모든 행위자들에게 동일한 경제적 합리성을 귀속시키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합리적 선택이론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역사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며 인간의 선택의 결과라고 믿지만, 그와 같은 선택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역사적 조건의 구조적 제약 하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저는 여전히 고전적 맑스주의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1965-73년 이후 세계경제 장기하강의 원인을 국제적 경쟁의 격화가 초래한 과잉생산과 과잉설비가 가격에 하방압력을 가해 수익성이 악화된 데서 찾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맑스처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를 이윤율의 저하의 원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경쟁이 이윤율 저하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맑스의 이윤율 이론이 아니라 아담 스미드의 이윤율 이론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있다.
"맑스의 저작에는 단수가 아닌 복수의 공황론들이 병존하고 있습니다. 어떤 '정통적인' 맑스의 공황론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교조주의입니다. 저는 맑스의 공황론은 역사적 현실에 비추어 검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논리적 수준에서가 아니라 현실과의 관련 속에서 전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가 이윤율 저하의 원인이라는 견해가 정통적인 맑스의 공황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견해는 논리적으로도 실증적으로도 입증되지 못합니다. 저의 이윤율 저하 이론은 경쟁격화가 소비재 가격 하락과 실질임금 상승을 가져와 이윤율 저하를 야기한다고 보는 점에서 경쟁이 직접적으로 경제전체의 이윤율 저하를 초래한다고 주장했던 아담 스미드의 견해와 같지 않습니다."

'과잉생산-이윤율저하'인가 '임금상승-이윤압박'인가

△당신은 자본주의의 장기하강이 노동자투쟁의 고양에 기인한다고 보는 임금상승-이윤압박설 혹은 조절이론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습니다. 노동자투쟁의 강화로 인한 임금상승-이윤압박은 국지적이고 단기적인 수익성 하락만을 발생시킬 수 있을 뿐이며 체제전체의 수익성이 장기적으로 저하하는 데 따른 장기하강을 초래할 수 없습니다. 만약 노동자계급의 투쟁, 강력한 노동조합, 복지국가 등이 장기하강의 원인이었다면 장기하강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난 20년 동안 노동자계급의 투쟁력과 노동조합 조직, 복지국가는 세계적 규모에서 현저하게 쇠퇴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기하강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황의 근원은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아니라 자본주의 모순 그 자체, 자본 그 자체에서 찾아야 합니다."

△당신은 1997-98년 동아시아 경제위기를 주로 1995년의 이른바 '역플라자 합의' (Reverse Plaza Accord)와 관련시켜 설명하고 있다.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원인을 신자유주의적인 규제완화에서 찾는 웨이드(R.Wade) 등 최근 진보진영의 '새로운 통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약 10년간 급속하게 진행된 동아시아의 수출주도적 공업화는 1965-73년 이후 진행되고 있던 세계적 경쟁 및 과잉생산과 과잉설비 문제, 즉 '불충분한 퇴출'과 '과다한 진입' 문제를 더 악화시켰습니다. 98년의 경제위기는 95년 '역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와 연계된 동아시아 통화가치가 고평가되고, 이에 따라 동아시아 수출제품의 국제경쟁력이 저하되는 한편, 이것이 경상수지 악화와 경제의 수익성 저하로 이어짐에 따라 도래한 것입니다. 웨이드 등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는 이미 시작된 위기에 대한 정책 대응(예컨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투자자금을 차입하기 위한 금융자유화를 보십시오)이지 위기의 원인은 아닙니다. 금융위기가 아니라 제조업 부문에서의 국제적 경쟁의 격화와 과잉생산과 과잉설비 문제의 악화 및 이에 따른 이윤율 저하가 위기의 근본 원인입니다. 금융위기는 이윤율 저하의 결과입니다."

△당신의 자본주의의 장기하강 이론에서는 요즘의 화두인 '신경제'라든지 '디지털혁명' 같은 주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저는 '신경제' 논의 자체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우선 1990년대 중반 이후 이른바 '신경제'의 물질적 기초라고 주장되는 '디지털혁명'에 기초한 생산성 향상 자체가 '새로운 산업혁명' 운운하기에는 너무 보잘 것 없습니다. 그리고 정보통신기술 등 첨단산업이 몰려 있는 이른바 '신경제' 분야는 그 자체가 과잉투자와 과잉생산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즉 '신경제'는 자본주의의 번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위기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지요."

"미국경제 경착륙할 것"

△미국경제의 '연착륙' 혹은 '경착륙' 전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착륙할 것이라고 봅니다. 98년 이후 미국경제의 호황은 실물경제의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는데도 주가가 계속 상승하면서 나타난 일종의 '거품이 주도한 호황'이기 때문입니다. '자산효과'(wealth effect)와 부채증가에 기초한 소비지출의 증대가 주도한 호황인 셈이지요. 94-97년까지 주가상승과 경제성장은 이윤율 상승과 병행했지만 98-2000년의 주가 폭등과 경제성장은 이윤율 저하에도 불구하고 계속됐습니다. 98년 이후 수출은 거의 증가하지 않고 있으며 투자도 올 해 '제로'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2000년 봄부터 시작된 주가하락은 '경미한 조정'(small correction)이 아니라 '엄청난 붕괴'(huge collapse)로 이어질 것입니다. 거품이 과도하면 붕괴 역시 격렬한 법입니다. 거품의 붕괴는 '역 자산효과'(wealth effect in reverse)에 따른 소비 위축과 투자 위축을 초래하면서 '격렬한 순환적 하강'(sharp cyclical downturn)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당신은 자본주의의 발생을 봉건제 아래서 이루어지는 계급투쟁의 '의도되지 않은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자본주의의 발생은 역사적 필연이었다기보다 하나의 우연적 사건 같은 것이었다고 보는 것인가? 또 자본주의 이후 사회, 예컨대 사회주의의 도래도 자본주의의 발생이 그러했듯 계급투쟁의 '의도되지 않은 결과'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자본주의 발생의 역사적 필연성 혹은 우연성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유보하겠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의 도래를 자본주의의 발생과 동일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인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의식적 투쟁의 결과로서만 쟁취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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