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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 밤, 더욱 밝게 빛나는 저 등대 불빛은 북쪽까지 닿았을까?
어둔 밤, 더욱 밝게 빛나는 저 등대 불빛은 북쪽까지 닿았을까?
  • 건국대 인문학연구원통일인문학연구단
  • 승인 2017.11.27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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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에서 강화까지, 경계에 핀 꽃: DMZ 접경지역을 만나다_ 3.가진항·거진항·거진등대·금구도·대진항·대진등대·명파리

얼어붙은 달그림자 바다위에 자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등대지기」 中)


넉넉한 곳, 가진항

‘등대’를 생각하면 머릿속에서 하나의 장면이 그려진다. 넓은 바다 위 외롭게 보이는 작은 섬 위에 서 있는 등대. 거친 바람에 일어선 바다의 파도는 등대를 덮치듯 달려온다. 등대지기는 무섭게 다가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고고히 서 있다. 혼자서 등대를 지키는 그 사람은 얼어붙은 달그림자를 흩어버리는 파도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괜스레 감성적이 된 어느 가을날, 혼자 서 있을 등대지기를 생각하며 동해로 향한다. 동쪽으로 향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동해안에는 등대가 많기 때문이다. 등대지기를 찾아 나선 동해안 여행길에서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가진항. 예로부터 다른 어촌마을보다 해산물이 많이 나던 곳이라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어 준다는 德浦로도 불렸다. 그래서일까, 가진항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물회집이 눈에 들어온다. ‘물회’는 주재료인 회뿐만 아니라 각종 해산물이 푸짐하게 들어가야 제 맛을 낸다. 한 때 어부들을 기쁘게 해준 가진 앞바다는 지금도, 이곳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멀리서 온 손님에게도 푸짐한 인심을 대접한다.

가진항의 포구에서 횟감을 다듬는 아낙들. (2017. 11. 02. 연구팀 촬영)
가진항의 포구에서 횟감을 다듬는 아낙들. (2017. 11. 02. 연구팀 촬영)
가진항의 전경. 가진항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2017. 11. 02. 연구팀 촬영)
가진항의 전경. 가진항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2017. 11. 02. 연구팀 촬영)
가진항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물회집이  손님을 맞이한다. (2017. 11. 02. 연구팀 촬영)
가진항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물회집이 손님을 맞이한다. (2017. 11. 02. 연구팀 촬영)

항구에서 남서 방향으로 곧게 나 있는 방사제를 따라가면 그 끝에 붉은 색의 등대와 하얀 색의 등대가 하나씩 서 있다. 가진항을 드나드는 배들에게 항구의 입구를 알려주는 불빛을 비추는 곳이다. 노래 「등대지기」에 나오는 것처럼 울부짖는 바람이 지나가는 곳은 아닌 듯하다. 등대지기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고요히, 상상보다는 활력 넘치게 불빛을 비추고 있다. 이번 여행길은 가진 등대의 불빛에서 시작해도 손색없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다가 길을 잃으면 다시 이 불빛을 따라 돌아오면 될 터다.

가진항의 입구를 알려주는 등대들. (2017. 11. 02. 연구팀 촬영)
가진항의 입구를 알려주는 등대들. (2017. 11. 02. 연구팀 촬영)

다음 갈 곳을 찾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열어 보았다. 위성사진이 뜨지 않는다. 아차, 그렇다. 이곳은 DMZ 접경지역이었다.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이 지역의 위성사진은 지도에 보이지 않는다. 해가 있을 때는 이곳을 찾는 손님들과 뱃사람들로 시끌벅적하고, 해가 지고 나면 흥에 취한 사람들과 등대의 불빛으로 나지막한 소란을 볼 수 있는 이곳에서 휴전선의 흔적을 마주한다. 생각해보면 한반도의 분단은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다만 그 그림자가 너무나도 크고 나의 삶에 가까워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등대지기를 찾아가는 여정은 당연히 자유로울 줄 알았다. 당연히 자유로워야할 나의 발걸음이 조금 무거워진다.

명태와 사람들, 거진항

해가 떠오르기 전에 길을 나섰다. 다음으로 가볼 곳은 가진항의 위에 있는 거진항. 가진 해변을 오른쪽에 두고 조금 올라가다가 동해대로로 들어가 가진교차로에서 북쪽으로 꺾으면 된다. 7번 국도를 타고 15분 정도 가다가 보면 자산삼거리에서 거진항으로 들어갈 수 있다. 표지판이 꽤나 자주 있어 찾아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가진항을 보고 와서 그럴까, 거진항은 생각보다 크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니면 거진항의 ‘거’자가 ‘클 거(巨)’자라서 그럴까. 떠도는 말에는 과거를 보러 가던 한 선비가 이곳에 들러 잠시 쉬어가려고 했는데 주변 산세를 보니 클 거(巨)자처럼 생겼기에 ‘巨津(큰나루)’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여하튼 거진항은 동해 항구들 중에서 꽤나 큰 규모를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 뜨기 전에 움직인다고 서둘렀지만 거진항에 도착해 이곳저곳을 살펴보니 해가 뜨려고 한다. 항구에는 고깃배들이 속속 들어와 잡은 것들을 내린다. 배가 들어오는 곳을 보니 방파제가 양쪽에서 뻗어 나와 두 팔로 감싸는 것처럼 거진항을 두르고 있다. 두 방파제 끝에는 빨갛고 하얀 작은 등대가 서서 배들에게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등대로 가보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가갔지만 역시 무인 등대였다. 과연 등대지기를 만날 수 있을까.

거진항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2016. 10. 02. 연구팀 촬영)
거진항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2016. 10. 02. 연구팀 촬영)

고깃배들이 내린 물고기들로 항구는 들썩거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바삐 손발을 놀려 고기를 내리고, 옮기고, 쌓고 있다. 항구로 들어오는 배가 바다에 그리는 흰색 선들이 어지럽다. 역시 항구에는 생명력이 넘친다. 원래 거진항은 명태로 유명했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명태 서거리’, ‘명란식혜’ 등이 명태를 재료로 하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하지만 기후변화 때문인지 이제는 명태를 보기가 힘들며 조업량이 턱없이 줄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시끌벅적하니 예전에는 어떠했을까.
사람들은 자취를 감춘 명태를 되살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동해수산연구소와 강원도 해양심층수수산자원센터, 그리고 강릉원주대학은 동해에 명태를 되돌리기 위해 협력하며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명태가 사라진 것이 기후변화 때문인지, 노가리의 남획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사람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동해 명태를 살리기 위한 노력은 해양자원의 개발이지만 어찌보면 자연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사람들의 책임일 것이다. 인공수정으로 부화시킨 명태 치어를 계속해서 방류하고 있으니 시간은 오래 걸릴 지라도 언젠가는 노력이 결실을 맺을 것이다.

강원도 해양심층수 수산자원센터의 전경. (2016. 10. 22. 연구팀 촬영)
강원도 해양심층수 수산자원센터의 전경. (2016. 10. 22. 연구팀 촬영)

이유야 어쨌건 뱃사람들의 말로는 명태 잡히는 곳이 예전보다 위로 올라갔다고 한다. 하지만 그곳은 갈 수 없는 곳이다. 듣고 있자니 왠지 입맛이 쓰다. 해방 전에는 정어리가 많이 잡혀 일제의 정어리 처리 공장이 3곳이나 있을 정도였지만 해방 후 정어리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고 한다. 대신 근래에는 전복, 해삼, 멍게, 문어, 광어 같은 해산물이 많이 난다. 모두 갯내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입에 군침이 돌게 하는 것들이다.
사람냄새와 바다냄새를 맡으며 뒤로 돌아서려는데 산 위에서 빛줄기가 뻗어 나온다. 등대다. 방파제에 있던 등대는 안전신호용으로 지은 것이고, 저 산 위에 있는 등대가 진짜라고 한다. 다음날 아침 왠지 모를 기대감에 바로 산을 오른다. 산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오르는 길이 짧아서 그런지 조금 가파르다. 숨을 조금 고르려고 뒤를 돌아보았더니 산중턱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집들과 그 뒤로 펼쳐진 바다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잠시 지중해 바닷가를 본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다. 관동팔경에 포함되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만한 풍경이다.

거진등대를 오르는 길에 소나무 사이로 비치는 거진항. (2017. 07. 17. 연구팀 촬영)
거진등대를 오르는 길에 소나무 사이로 비치는 거진항. (2017. 07. 17. 연구팀 촬영)
거진등대에서 불빛을 비추고 있다. (2016. 10. 01. 연구팀 촬영)
거진등대에서 불빛을 비추고 있다. (2016. 10. 01. 연구팀 촬영)

가파른 길이 등산로로 바뀌며 다시 편안해진다. 오르는 중에는 해맞이를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도 보인다. 길의 끝에 다다르니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잔디밭의 끝에 거진등대가 우뚝 서 있다.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파도를 맞으며 서 있을 줄 알았던 등대가 산꼭대기에 있으니 말이다. 등대로 들어가는 문은 잠겨 있었다. 대신 표지판이 붙어 있는데 예전에는 유인 등대였으나 이제 무인 등대로 바뀌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예전 거진등대는 어로한계선을 나타냈고, 지금은 거진항의 표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등대지기는 볼 수가 없었다. 등대 반대쪽에 암벽 등반을 하는 곳이 있지만 그곳으로 내려가기에는 무리다. 다시 등산로를 내려오며 거진항의 장관을 눈에 담는다.

잔디밭 뒤로 거진등대가 보인다. 출입구는 닫혀 있다.(2017. 07. 17. 연구팀 촬영)
잔디밭 뒤로 거진등대가 보인다. 출입구는 닫혀 있다.(2017. 07. 17. 연구팀 촬영)

황금빛 거북이 모양의 섬, 금구도

7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향한다. 가다 보면 초도교차로를 만난다.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옆으로 화진포가 보인다. 화진포는 바닷물이 갇힌 석호다. 풍광이 얼마나 뛰어났으면 김일성 별장, 이승만 별장이 이곳에 함께 위치하고 있을까. 화진포를 치나 초도항으로 가면 金龜島를 볼 수 있다. 금빛 거북이 모양의 섬이라는데 거북이 등껍질과 머리 모양이 어슴푸레 보이는 것도 같다. 2005년 ‘고성문화포럼’에서 금구도가 광개토대왕의 능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금구도에 있는 언제 쌓았는지 모를 성벽과 주춧돌들, 그리고 일부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장수왕 3년(414년)에 광개토대왕을 이곳에 안장했다고 한다. 이런 주장이 사실인지는 아직까지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문무왕이 자신이 죽으면 용이 되어 동해를 지키겠다며 동해에 안장하라고 했듯이, 한반도 북부를 호령한 광개토대왕도 죽어서까지 이곳에서 나라를 지키고자 했음이 아닐는지. 아니면 이곳을 지켜주길 바란 민중의 소망이었을까.

거북이 모양의 조형물 사이로 금구도가 보인다. (2016. 09. 30. 연구팀 촬영)
거북이 모양의 조형물 사이로 금구도가 보인다. (2016. 09. 30. 연구팀 촬영)
금구도의 모습. 거북이 모양이 보이는 듯도 하다. (2016. 10. 01. 연구팀 촬영)
금구도의 모습. 거북이 모양이 보이는 듯도 하다. (2016. 10. 01. 연구팀 촬영)

대진항과 대진등대, 등대지기를 만나다.

다시 길을 재촉해 대진등대로 향한다. 이번에는 7번 국도를 타지 않고 해안길을 따라 달린다.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대진항을 만난다. 대진항 수산시장에서 대진등대로 가는 길은 멀지 않다. 대진등대도 거진등대처럼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비록 파도와 맞서는 등대는 아니지만 지금도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바로 들어가 보지는 않는다. 한밤중에 바다를 향해 내쏘는 불빛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대진항에는 소형 선박들이 주로 보인다. 그래도 항구는 항구다. 고깃배가 들어오는 시간은 한참 지났지만, 그 시끌벅적함은 아직도 남아 있다. 천천히 걸으며 요기할 곳을 찾는데 배 대는 곳 바로 앞에서 작은 술판이 벌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갓 잡아온 잔챙이 물고기들을 숯불에 굽고 있는 것이 그리 맛있어 보일 수 없다. 한 점 얻어먹고 싶은 마음에 다가가니 바닷바람에 그을린 얼굴의 남자들이 고개를 들어 쳐다본다. 경계의 시선을 보낼 줄 알았는데, 사내들은 크게 웃으며 이리 오라 손짓한다. 무슨 고기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맛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이 달콤하다. 바닷사람들과 함께 하는 막걸리 때문일까.

대진항 부둣가에서 벌어진 조촐한 술상. 고기 굽는 냄새가 지나가는 사람을 부른다. (2016. 10. 02. 연구팀 촬영)
대진항 부둣가에서 벌어진 조촐한 술상. 고기 굽는 냄새가 지나가는 사람을 부른다. (2016. 10. 02. 연구팀 촬영)

항구 뒤편으로는 대진항 수산시장이 있다. 건물을 크게 지어 많은 상점들이 한 번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비해 놓았다. 푸짐한 인심으로 막걸리까지 얻어먹었지만, 이곳에서 펄떡이는 물고기들을 눈으로 보고 있자니 다시금 입맛이 돈다. 줄지어 늘어선 횟집 중 하나로 들어가 활어회를 청해본다. 항구 바로 옆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갓잡은 물고기를 손질한 횟감의 풍미는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기다리던 밤이 됐다. 대진등대에서 빛을 쏘고 있다. 불빛에 끌려가는 불나방처럼 내 발걸음이 그곳으로 향했다. 야트막한 언덕에 있지만 그래도 이 근처에서는 꽤나 높은 곳이다. 언덕까지 가는 길은 해변길이라 파도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무언가 기분이 좋다. 언덕을 올라 등대에 다다랐다. 홀로 선 등대에서 어두운 밤의 장막을 이리 저리 찢으며 뻗어나가는 불빛은 괜스레 가슴을 시리게 만든다.

그렇게 바다를, 그리고 철조망 쳐져 있는 북쪽을 바라보는데 등 뒤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등대지기였다. 드디어 등대지기를 보고야 말았다. 비록 바다 한가운데서 파도를 버티며 외로이 등대를 지키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반가운 마음에 악수를 청한다. 이것저것 물어보다보니 이 시간에 이곳에 들어오면 안 된단다. 등대에 이끌려 민폐를 끼쳤다. 비록 무단으로 들어와 본 것이지만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뒤돌아본 등대는 이제 그리 외롭지 않아 보인다.

화려했던, 다시 빛날 명파리

DMZ 접경지역에 온 김에 더 북쪽으로 올라가본다. 금강산 육로 관광이 성행하던 시기에는 하루에 천 명이 넘게 찾을 정도로 활발했던 마을, 동해안 최북단 마을 명파리로 향한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금 예전처럼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명파해변이 있기에 기대감을 가지고 들어선 명파리. 하지만 생각과는 너무나 달랐다. 금강산로 좌우로 늘어선 음식점들, 특산물 판매점들은 거의 다 문을 닫고 있다.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것처럼 보이니 버려진 듯하다.

대진항 해상공원 입구.
대진항 해상공원 입구.

명파리는 1995년 이전까지 민통선 내에 있던 마을이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노력으로 수차례 검문소를 북쪽으로 이전하여 외부인의 출입이 자유로운 지금의 마을로 성장했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이 활발하던 명파리의 전성기는 이미 지났나보다. 사람 사는 곳이 이리 썰렁해 보일 수 없다. 아름다운 명파해변 백사장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어 다가가기 어렵다. 주민 340명이 전부인 명파리 마을은 분단을 등에 지고 살아간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이곳도 흥하고,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스산해진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북관계가 최고로 경색되었을 때에는 마을 사람 모두가 대피하는 일도 몇 차례 겪었다고 한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그만큼만의 풍경을 허락하는 명파해변을 뒤로 하고 7번 국도에 오른다. 등대를 떠올리며 그 불빛을 따라 나선 여행길은 북으로 북으로 가다가 명파리에서 멈춰 버렸다. 한 때 잘나가던 시절에는 명파리도 불야성을 이루며 인근을 밝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불빛이 사라진 명파리에는 분단의 무게만이 깔려 있다.

빛을 따라, 등대지기를 찾아, 경계를 넘어

다시 이 여정의 시작이었던 가진 등대의 불빛을 떠올린다. 그 불빛은 어디까지 닿을까. 명파리 넘어, 휴전선 너머로 뻗어나갈 수 있을까. 명태로 유명했던 항구마을들은 이제 명태를 잡지 않는다. 아니 명태를 잡지 못한다. 사라진 명태를 따라 북으로 올라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치 명파리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금강산로처럼 말이다.

옛 등대들은 불을 지펴 빛을 비췄다. 그리고 등대지기는 외로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이제 등대 불빛은 전기로 바뀌었고, 등대지기도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지금도 등대는 자기 자리를 지키고 서서 빛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그 불빛을 따라 수많은 고깃배들이, 사람들이 삶을 살아간다. 등대와 함께 살아가는 바닷가 사람들은 등대의 불빛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감히 그 불빛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불빛이 가로막힌 금강산로의 앞길을 비추게 될 때를 기다린다. 등대의 불빛은 어두운 밤에 더욱 밝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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