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코앞에 깨달은 진실
정년 코앞에 깨달은 진실
  • 이덕환 논설위원
  • 승인 2017.11.2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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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은퇴하는 교수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대학의 규모가 빠르게 팽창하던 1980년대 후반부터 임용되기 시작했던 베이비부머 세대의 교수들이 한꺼번에 정년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인문·사회·자연·공학 분야만 해도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2만5천여 명의 교수들이 본격적인 정년퇴임을 시작하게 된다. 앞으로 5년 동안 교수의 30%가 퇴임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우리 대학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태풍이 시작되는 것이다.

교수들에게 은퇴는 오래 전에 예정돼 있던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교육과 연구에서 아무리 탁월한 교수라고 하더라도 세월의 힘은 어쩔 수 없다. 학자와 교육자의 경륜을 쌓아가는 일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나이가 들면 늙고 뒤쳐질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약간의 개인차가 있을 뿐이다. 결국 정년이 되면 후배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 순리이고 원칙이다. 30여 년을 교수로 살았지만 정년이 코앞에 다가오고 나서야 어렵사리 깨닫게 된 진실이다.

은퇴하는 교수의 입장에서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평생을 쌓아놓은 전공과 學風을 송두리째 포기해버리고 낯선 새 인생을 시작하는 일이 쉬울 수가 없다. 익숙했던 학과의 정체성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다. 후배들이 이어가야 할 전공·학풍·개성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지향하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만 한다. 현재의 전공과 학풍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후배들에게 맡겨야 한다. 내가 만든 것이 영원히 최고로 남을 수는 없다. 오히려 더 좋은 대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후배들에게 무한신뢰를 보내주는 것이 마땅하다.

평균수명이 80세를 훌쩍 넘는 현실에서 65세 정년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생각도 부질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환갑이 되기도 전에 직장을 포기해야 한다. 그나마 교수들은 분에 넘치는 豪奢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은퇴 이후의 삶은 온전하게 은퇴하는 교수의 몫이다. 진정한 지성인으로 살아왔다면 은퇴 이후의 삶도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평생 전념해왔던 학문 활동을 계속할 수도 있고, 새로운 분야의 학문을 啓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공헌 활동에 전념할 수도 있고, 아니면 철저하게 은둔해버릴 수도 있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남의 간섭을 받을 이유도 없고, 남의 도움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

지난 30여 년 동안 대학이 크게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화려한 건물도 늘어났고, 학사 과정도 다양해졌다. 연구 활동도 크게 활성화됐다. 지금 은퇴를 앞둔 교수들이 그런 변화의 중심에서 활약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학생을 아끼고, 학문을 사랑하는 전통을 확실하게 세워놓지는 못했다.

은퇴를 한 후에도 교육과 연구에 바쁜 후배들 옆을 한가하게 배회하는 모습은 볼썽사나운 것이다. 이미 대학은 알량한 과거의 지식과 경륜을 자랑하는 과거 지향적인 은퇴자들의 천국이 돼버렸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장관을 지낸 인물들이 석좌교수의 직함을 자랑하고 다닌다. 요란한 교수 직함을 꿰찬 전직 중앙부처 고위 관료들도 넘쳐난다. 지금 은퇴를 앞두고 있는 교수들이 대학을 운영하면서 만들어놓은 퇴행적인 대학의 현실이다.

급격한 대규모 은퇴로 대학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정부의 과도한 간섭으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원만한 세대교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소중하게 아끼던 대학이 급격한 세대교체와 규모 축소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나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떠나는 교수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소임이다.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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