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는 교수 神話 … 지자체별로 퇴임교수 등록제 시행한다면?
깨지는 교수 神話 … 지자체별로 퇴임교수 등록제 시행한다면?
  • 한태임·윤상민 기자
  • 승인 2017.11.2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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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 2020년부터 ‘교수 은퇴’ 증가 ② 퇴임 교수들, 어떻게 지내고 있나?

교수들은 정년퇴임을 언제부터 준비하고 있었을까? 15년 전부터 준비했다는 답변도 있었지만 응답한 다수의 퇴임교수들은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정년을 맞았다. 따로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거나, 있어도 한 학기 정도뿐이었다는 대답도 있었다. 강의, 교육, 논문, 학회참여, 평가에 행정업무 부담까지. 과도한 업무 때문에 정작 하고 싶은 연구도 마음껏 못하다보니 정년 퇴임준비는 ‘그림의 떡’이라는 것이다.

100세 시대를 맞은 21세기. 퇴임한 교수들의 지적자산을 대학과 국가가 나서 사회로 환원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해서 제기돼 왔다. 퇴임교수 배려 차원이아니라, 그들이 평생 쌓은 지적 자산을 활용하자는 측면에서다. 황진수 전 한성대 교수는 퇴임교수를 1천 시간의 비행경력을 갖기 위해 개인적 노력, 사회와 국가의 비용이 투입된 전투기 조종사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퇴임교수가 엄청난 고급 인력인데 이들을 이렇게 방치해도 되느냐”고 질문하며 “다만 이들이 지금껏 교수라는 직함 안에서 혜택을 받았으니, 개인적 삶을 영위하기보다는 ‘재능기부’ 형식으로라도 사회에 헌신하도록 의식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능기부’ 형식으로 사회에 헌신

인문학의 경우, 65세가 넘어서야 오히려 더욱 원숙한 학문적 성과를 낼 토양이 갖춰지는 경우가 많다. 정정호 전 중앙대 교수는 “인문학은 응축되고 되새김되는 학문인데, 재직할 때보다 여유가 있으니 종합적, 심층적으로 넓게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됐다”며 “몇몇 사람들만 읽는 학술논문만 쓰던 상아탑에서 나와 보통 사람, 일반 독자를 위한 책을 쓰면서 대중에게 다가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민을 상대로 한 강연이나 저술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한 연구를 깊게 다질 수 있지 않겠냐는 귀띔이다.
행정학과에 재직했던 박광주 전 부산대 교수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은퇴자에 대한 배려라기보다도 연구자산에 대한 활용 면에서 볼 때,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연구주제에 대해서는 퇴임교수라 하더라도 연구 여건을 보장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불문학을 전공한 정승옥 전 강원대 교수 역시 ‘재능기부’의 형식으로라도 퇴임교수들이 사회에 재소환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교수는 다른 직업에 비해 정년이 길고 연금도 받는 등 혜택이 많다”면서 “돈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라 재능기부 형식으로 지역과 사회에 봉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자신들의 지적 자산이 사회에 재환원되길 바라는 이들의 바람을 하나의 정책 제안으로 수렴한 교수도 있었다. 강승규 전 우석대 교수의 ‘정년신고제’가 그것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듯, 교수가 정년을 맞으면 지자체별로 ‘정년신고’를하는 제도다. 그는 “이 분야에서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주민센터에 ‘신고’하면 지자체가 적재적소에 연결시켜 퇴임교수의 재능 기부를 활성화하는 제도를 시행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학·공학 퇴임교수들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평생을 실험실에서 연구해온 이들인데,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무엇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정영기 전 동의대 교수는 “인문계처럼 책만 볼 수는 없다. 연구실 같은 시설이 없어졌으니 지속적 연구는 접었다”며 “전부터 하고 싶었던 장애인 지원사업을 하며 지낸다”고 말했다. 김승빈 전 포스텍 교수는 스스로를 운이 좋은 경우라고 말했다. 그는 “퇴임 후에 화학 관련 중소기업에서 근무를 시작해 자문 형식으로 도와주고 있다”면서 “많은 동료·선배교수들은 그렇지 못한 걸 보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생물학을 전공한 전태수 전 부산대 교수는 지인의 도움으로 건물 지하실에 작은 연구실을 마련해 생태학 실험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인문·사회 쪽은 개별적 연구자로서의 연구에 더 고민을 뒀는데, 학문적 특성 때문인지 이학·공학 계열은 지식의 리사이클링이라는 차원에서 정부나 대학 측의 지원을 바라는 목소리가 많았다는 점이다. 인문·사회 과학자의 경우에는 새로운 연구실을 찾으면 그 이후부터는 개인의 건강, 시간에 따라 연구를 계속할 수 있지만, 이학·공학 계열은 설비적 측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축적된 지식이 산업계와 연계돼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면 생각지도 못한 파급력이 생길 수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실제로 김성중 전 인천대 교수는 아예 퇴임교수들을 위한 조합을 만들었다. 서희돈 전 영남대 교수는 “각 지역마다 과학기술자협회가 있는데, 시니어 인력자원을 한국과학기술단체협의회 차원에서 활성화할 수 있도록 지원을 많이 해줘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학 차원에서의 접근은 불가능한 것일까. 일부를 제외하면 조사에 응했던 대부분의 퇴임교수들은 대학 차원에서의 지원이 어렵지 않겠냐는 중론을 보였다. 대학에서 교수가 정년을 맞으면 대개 몇 년간 강의를 배정해주지만, 이마저도 퇴임교수들은 고사하는 분위기다. 한동원 전 강원대 교수의 말이다. “해외에서 학위하고 온 젊은 강사들도 자리를 못 잡고 있는데, 내가 강의를 하면 그들의 설 자리를 뺏는 것 같아 안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고려대의 몇몇 학과는 퇴임교수들이 나서서 강의를 배정받지 않겠다는 풍토를 조성해가고 있다. 제자와 후배교수들이 처한 현실을 고민한 퇴임교수들의 미안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퇴직교수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역시 대학뿐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나성 전 한신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결국 퇴임교수는 대학에서 보호를 해야 하는데 지금 명예교수라든가 석좌교수제도가 애초의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를 석좌교수로 초빙해 학교평가를 잘 받으려는 작금의 운영방식으로는 평생 연구자와 연한이 차서 은퇴하는 연구자를 구분할 수 없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대학당국이 새롭게 인식을 바꿔야 한다.”

지난 8월 퇴임한 이규성 전 이화여대 교수는 좀 더 상황을 넓게 볼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최근 10년 사이에 대학에서 학술을 하는 것이 이상한 문화로 변질됐다고 진단한 것이다. “대학평가가 대학연구 풍토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젊은 연구자들은 논문편수를 늘리느라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을 쓰고 있다. 학교는 평가점수를 받기 위해 젊은 교수들을 닦달하는데, 나이 든 교수들은 빨리 논문을 쓰지 못하니 학교 측에서도 얼른 퇴임하길 바란다. 정년 전에 퇴임하는 교수들에게는 돈을 더 지급하는 편법을 쓰는 학교들도 많아졌다. 교수들이 토론하는 문화도 전부 사라진 지금, 인문학은 ‘학술’이 붕괴됐다. 평가에 목을 매고 돈이 안 되는 학문은 퇴출시켜버리는 이상한 문화가 대학 안에, 교수 사회에 정착돼 버린 거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퇴임교수들을 위해 뭔가를 해주길 바라는 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대학을 넘어 사회 차원, 지방자치단체 차원이나 정부 차원에서 퇴직교수들을 재활용해달라는 주문 역시 이학·공학 퇴임교수들에게서 터져 나왔다. 확실한 연구 업적이 인정되는 연구자에 한해서는 젊은 교수들과 협업으로 연구를 진행한다거나, 기자재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 주였다.

남용되는 석좌교수 제도

하지만 사회나 정부 차원의 개입을 강하게 반대하는 목소리도 몇몇 있었다. 조각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최인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재직시절 열심히 연구하지 않은 사람은 학생들이 없어지니까 정치판을 기웃거리며 TV 나갈 생각이나 하는데 그런 폴리페서들이 사회를 망친다”고 지적하면서 “묵묵하게 연구하는 분들, 그 익명에 문화적 자원이 있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환 전 고려대 교수 역시 “공부하느라 30년을 학교에 있었고, 가르치느라 30년을 더 학교에 있었다. 퇴직하면 30년 더 살 건데 학교 근처를 기웃거리지 말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수 스스로의 학술적 업적에 대해서도 되돌아보라는 뼈아픈 지적도 있었다. 정정호 전 중앙대 교수는 이렇게 꼬집었다. “교수라는 직업도 더 이상 안정된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 정년 이후에도 일신의 안위를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자신의 학술적 업적이 정말 이후를 보장받을 수 있는가 돌아봐야 한다.”

나성 전 한신대 교수는 퇴임교수들뿐만 아니라 대학 당국도 새겨들어야 할 조언을 건넸다. “연구자가 목표와 이상을 버리면 그건 일개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퇴임한 교수도 마찬가지다. 이걸 가진 사람은 살아남는 거고, 아니면 놀러다니는 거다. 연구자, 교수가 된다는 것, 연구와 교육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것을 알고 그런 사람들이 살아남는 대학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

많은 퇴임교수들이 후배 세대들의 자리를 빼앗는 것만 같은 불편한 심정, 그간 행정과 논문실적으로 억눌렸던 대학에서 벗어나왔다는 일말의 안도감 사이에 복잡 미묘한 감정이 뒤섞여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들은 이 중층적인 감정 속에서 대학과의 관계를 정신적·육체적으로 정리해가고 있었다. 생물학적 나이 65세. 교수는 다른 직업군보다 몇 년 더 긴 정년을 보장받는 직업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미국은 종신교수제이고 중국도 이를 따라가는 추세다. 교수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교직을 떠나지 않고, 대학 역시 강의든 연구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교수들의 대규모 은퇴를 3년 앞둔 지금, 퇴임교수의 지적자산들을 사회적 공공재로 거듭 지켜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대학, 정부당국이 고민할 시점이다.

한태임·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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