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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문제와 지식인의 의무
북핵문제와 지식인의 의무
  • 김태우 세종연구소
  • 승인 2003.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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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북한 핵문제가 먹구름을 드리우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한 혼선이 많다. 이와 관련해 지식인들이 챙겨야 할 의무가 있다. 나는 이 문제를 이미 ‘월간통일’ 4월호 지면을 통해 길게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 재론하는 것은 지식인 사회의 책무를 기대해서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가 너무 평온하다”라고 지적하는 일부 외국언론들이 있지만, 한국을 꼬집어 뜯기 위해 비아냥거리는 것이라면 공감할 수 없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온 국민이 공포 속에 서 ‘묻지마’식 달러구입과 사재기를 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게 해서 한국경제가 붕괴하면 그들이 책임질 것인가. 정책결정을 할 의무가 없는 국민은 어차피 생업에 충실할 수밖에 없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는 오히려 차분하게 할 일을 하고 있는 우리 국민이 대견스럽다.

그런가 하면, 우리 국민 중에 핵문제의 심각성 자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도 문제다. 지식인이라면 이런 것을 방조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컨대, “북한이 핵무기를 가져도 한국에게 해롭지 않다”,  “북한의 대형 미사일들은 사정거리가 한반도를 넘는 것들이기 때문에 남한에 핵폭탄을 떨어뜨릴 수 없다”, “핵무기를 개발했다 하더라도 초보적인 것이다”, “핵실험을 한 적이 없으므로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북한의 핵무기도 통일되면 우리 것이 되니 환영해야 한다” 등의 말들이 젊은이들 사이에 들리고 있지만, 대개가 문제의 핵심을 흐리는 주장일 뿐이다.

탄도미사일은 발사시 추력과 발사각도에 의해 착탄지점이 결정된다. 수직으로 쏘아 올리면 당연히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이런 기본적인 지식만 가져도 “남한에는 떨어지지 않는다” 라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가장 초보적인 폭탄이 히로시마와 나카사키를 초토화시키고 수십만 명을 몰살시켰다는 역사적 사실만 기억하더라도 한국 같은 좁은 국토공간에서 ‘초보적 폭탄’을 운위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핵실험 문제도 그렇다. 북한이 험준한 산 속에 있는 깊은 폐광에서 5Kt 이하의 작은 핵폭탄을 폭발시킨다면 미소지진(micro-earthquake)과 구분해 탐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북한이 이미 핵실험을 했는데도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설령 핵실험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성능 테스트를 하지 않은 폭탄이기에 겁낼 필요가 없다는 식의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인류 최초의 우라늄탄인 ‘꼬막소년(Little Boy)’도 사전 핵실험 없이 히로시마에 투하되지 않았는가.
한국이 북핵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는 별개로 북핵문제자체를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
첫째, 북핵 문제는 국제적으로는 현재의 핵무기 비확산 체체, 즉 NPT 체제를 흔들 수 있으며, 나아가서 핵보유 도미노 현상을 유발해 전 세계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둘째, 지역적으로는 일본의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을 유발하고 이것이 중국과 러시아의 민감한 반응을 불러 일으켜 동북아의 안보정세가 크게 불안해질 수 있다. 한국이나 대만이 핵보유 유혹을 받게됨도 물론이다.
셋째, 한반도 차원에서 북핵 사태의 장기화나 북한 핵보유의 기정사실화는 남북한 군사적 전략적 불균형을 초래하고 남북관계에 많은 불확실성을 던져줄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하고 안하고의 문제를 떠나 우리의 안보전략이나 군사교리는 다시 쓰여져야 할 것이다.

넷째, 북핵 문제는 한국내 보혁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다. 이미 북한과 관련한 많은 사안들이 ‘남남 갈등’의 쟁점이 되고 있는 터에 메가톤급 쟁점이 추가되는 형국이 될 것이다.

끝으로, 북핵 사태의 장기화는 한미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낙관론자들은 북핵 문제와 무관하게 대북지원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대북 강경자세에 대해 불만을 표출할 것이고, 경계론자들은 미국 핵무기의 재반입이나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을 주장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미관계는 크게 뒤틀어 질 수 있으며, 한미동맹이 약화될 소지가 많다.

심각한 것을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해결을 위한 기본이며, 이 부분에 있어 지식인들이 해야할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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