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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통령제 견제하려면 의원내각제 개헌뿐인가?
제왕적 대통령제 견제하려면 의원내각제 개헌뿐인가?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7.11.15 14: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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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론실무학회, ‘헌법개정과 정부형태’ 주제로 한독국제학술대회 개최

촛불혁명 1주년.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놓고 학계에서 다양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독일의 법학자들이 ‘헌법과 정부’라는 화두로 머리를 맞댔다. 헌법이론실무학회(회장 김선택, 고려대)가 독일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과 함께 지난 7일부터 이틀간 고려대에서 ‘헌법개정과 정부형태’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1956년에 설립된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은 지난 2014년부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원장 명순구)과 교류를 시작해 올해로 네 번째 학술대회를 함께하고 있다.

명순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자유, 평등, 평화를 추구하는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과 함께 한국의 헌법 개정과 정부형태에 대해 논하게 되는 이 자리에서 학문적 성취가 더해지길 바란다”고 개회사로 학술대회의 문을 열었다. 슈테판 잠제 아데나워 한국사무소장은 “지난해 저도 촛불을 들며 감동했다”며 “그 결과가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번 학술대회에서 논의될 내용들에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지냈던 이정미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환호를 받으며 자리에 섰다. 아직 교수라는 직함이 낯설다고 입을 뗀 이 교수는 “헌법은 국민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정립한 국가의 최고 규범이자 근본 규범”이라며 “이번 학술대회의 논의가 한국의 헌법개정과 민주주의 발전 더 나아가 한국과 독일을 넘어서 세계의 발전과 평화를 위한 교두보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촛불 '집회' 아닌 촛불 '혁명'인 이유

학술대회 첫날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촛불혁명, 헌법개정, 정부형태: 권력분립과 대통령제: 한국헌법의 경우」를 주제로 한국의 정부형태인 대통령제를 점검하고 개헌 논의의 중심에 선 제왕적대통령제의 폐해 극복 방안으로 정치권에서 제기된 반대통령제(이원정부제)와 의원내각제에 대해서도 살폈다.

김선택 교수는 먼저 촛불‘집회’가 아니라 촛불‘혁명’인 이유를 “과거의 혁명과는 전혀 다른 양태의 새로운 혁명이 가능함을 증명했고, 새로운 시작을 단절시키려는 의도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작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한국 대통령과 의회 간 운동장 자체가 현저히 기울어져 있다고 지적한 김 교수는 “국회가 정부여당에 의해 지배당하지만 않는다면 대통령을 상당부분 견제할 수단이 제도화돼 있지만 정당정치의 운영 현실과 수준에서는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김 교수는 “대통령을 제왕화활 소지가 있는 현행규정들을 보다 실효성 있게 강화하거나 추가하는 것이 먼저”라며 “정부 ‘형태’보다 ‘정부를 정부답게’, 즉 현재의 대통령제를 좀 더 입헌주의적 대통령제의 원형에 어울리는 헌법 개정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첫날 두 번째이자 마지막 발표는 미하엘 브렌너 독일 예나대 교수의 「정부형태과 권력분립-독일의 의원내각제」였다. 헌법전문가이자 독일 정치시스템을 유럽 전역에 알리고 있는 미하엘 브렌너 교수는 의회제 정부형태의 중심이자 대표적인 협치인 대연정을 보여주고 있는 독일의 의원내각제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설명했다. 브렌너 교수는 “의원내각제는 정부의 헌법적 근거를 갖는 독자적 권한과 상관없이, 정부를 직에서 물러나게 할 가능성을 포함해 국민대표의 우선적인 결정권을 확보해주는 반면, 대통령제 정부형태에서 의회의 정치적 비중은 대체로 약하게 형성된다”고 두 제도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의원내각제 정부형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브렌너 교수는 그 이유로 “정부의 의회에 대한 책임 그리고 임명·실각을 결정하는 의회의 신임을 얻기 위한 정부의 의존이 권위적 정부를 방지하면서도 정부가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독자성은 침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의회의 지위가 강화되는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 브렌너 교수는 “정부와 의회 사이의 분업적 협력이 여러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정부가 의회 다수파에 의해 지지되고, 의회 다수파와 그들에 의해 지지되는 연방정부 사이의 광범위한 내용적 수렴이 존재하는데, 정부와 연방의회의 공동통치를 ‘협동적 의회주의’로 설명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학술대회 이튿날에는 윤정인 고려대 연구교수(헌법)의 「헌법개정에 있어서 민주적 정당성」이 연구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윤정인 연구교수는 현재 한국사회의 화두인 개헌도 중요하지만 민주적 정당성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눴다. 그는 한국에서 민주적 정당성의 성공가능성을 ‘광화문 1번가’로 예시해 눈길을 끌었다. 문재인정부의 국민참여형 정책제안 온·오프라인 플랫폼인 ‘광화문 1번가’의 대성공이 헌법개정에서 국민의 광범위한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국민주도 개헌을 위한 플랫폼의 롤 모델이라고 제안한 것이다.
 
윤정인 연구교수는 “출범 50일 만에 16만 건이 넘는 정책제안이 쏟아졌고, 홈페이지 방문자 수는 79만명 이상을 기록했다”며 “전문가들이 이 제안들을 정리·분석해 99건을 선별, 국정과제에 반영키로 하고 지난 7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광화문 1번가’가 한국형 크라우드소싱 방식의 개헌 사례로 기능할 수 있다”며 “국민참여형 개헌이 이뤄질 경우 국민발안제 및 국민소환제 등을 통하 직접민주제적 요소 강화, 고위공직자 비위 감시기능 강화, 교사·공무원 등 신분에 따른 정치참여 제약 완화 및 정치적 자유의 확대가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심 수용 못 하는 기존 정당들

기존정당정치의 취약점을 꼬집는 발표도 청중들의 눈길을 붙잡았다. 양정윤 건국대 법학연구원 책임연구원(헌법)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과 정당의 역할」 발표에서 “전통적인 정당의 개념이 달라져야 할 상황에 놓였음에도 기성정당은 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디지털 시대와 동 떨어져 민심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정당정치의 현실을 지적했다. 양정윤 책임연구원은 “이제 정당이 온라인으로 들어와야 하는 시대가 왔고,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하며 “정당은 더 이상 전국 중심의 중앙당, 지방당의 개념을 버리고 과거의 양당지향적 정책도 폐기하면서 온라인 시민을 염두에 두고 현재의 한국정당법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청중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국의 법학자들에게는 촛불혁명, 탄핵정국, 새 정부 출범이라는 숨 가쁜 1년을 보낸 한국 사회의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였고, 독일의 법학자들에게는 우파 포퓰리즘의 도전에 직면한 독일 민주주의의 현실을 진단하는 자리였다. 발표자뿐만 아니라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비롯해 홍완식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혜영 숙명여대 교수(법학과), 임현 고려대 교수(행정학과) 등 쟁쟁한 이론가들과 김재영 변호사 같은 실무가들이 토론자로 참석해 정부형태와 권력분립, 촛불민심을 담아낼 수 있는 보다 바람직한 개헌 방향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치열한 논쟁이 오간 학술대회 현장에는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학생들까지 모여들어 발표와 토론을 경청하는 등 그 열기가 뜨거웠다. 촛불혁명 1주년을 맞아 한국과 독일의 법학자들이 논의한 헌법개정과 정부형태에 관한 정치한 담론이 어떤 형태로 발전할지 궁금하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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