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시간이 만든 지형 위에 황홀한 생명들이 움터나다
대지의 시간이 만든 지형 위에 황홀한 생명들이 움터나다
  • 교수신문
  • 승인 2017.11.15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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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에서 강화까지, 경계에 핀 꽃: DMZ 접경지역을 만나다_ 2. 화진포-송지호-서낭바위-능파대-청간정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외금강, 해금강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외금강, 해금강

 지난 6월 말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돼 더 손쉽게 동해 바다로 갈 수 있게 됐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양양까지 62개의 터널을 지나는데, 11km에 이르는 인제터널을 통과할 때는 운전자들도 몽롱해진다. 진부령을 넘어 고성군으로 들어갈 때보다 약간 더 돌아가지만 시간은 비슷하게 걸린다. 그런데 태백산맥 줄기를 관통하는 ‘거대한 튜브’를 질주할 때와 봉우리들 사이의 오래된 고갯길을 넘어갈 때 느끼는 大地와의 거리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구불구불한 경사로를 내려가지만 진부령 옛 길에서 스치는 풍경은 여행자에게 많은 것을 선사한다. 산과 마을이 만나 이루는 線의 흐름, 산세에 따른 바람의 변화, 지역의 특색, 조금씩 다른 마을의 냄새, 빽빽한 나무들 사이 숲의 속살, 드문드문 이어지는 생각의 여백 같은 것 말이다.

高城으로 가는 두 가지 길

해로와 육로를 통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10여년, 접경지역인 동해안 북단은 여름 휴가철을 제외하곤 한적하다. 해안을 오른쪽에 두고 달리는 7번 국도에서 멀찍이 보자면 동해 바다는 죄다 거기가 거기 같다. 하지만 쉽게 지나치는 고성의 항구와 해수욕장 사이사이엔 유수流水와 波浪이 조각해놓은 풍경들이 숨어 있다. 지질학적 시간의 흐름과 전 지구적 기후 변화의 흔적이다. 그 ‘대지의 시간’이 만들어내는 해안 지형을 따라 어쩌면 ‘찰나의 시간’을 살아가는 뭇 생명들이 남북으로 서로 교통한다. 한 지역의 지리적 요소는 단순한 자연환경이 아니라 그 땅에서 나고 흩어졌던 생명성의 기초이며 로컬리티의 토대이다. 관광지의 번다함 사이에서 그것을 조금이라도 느끼려는 여행자에겐 지역의 고유한 인문지리와 생활문화가 스며든다. 자세히 보아야 정겹고, 천천히 걸어야 사랑스럽다.

호수와 바다의 상생과 소통, ‘花津浦’

고성의 다양한 해안 지형들 중에서 다채로운 곳을 꼽자면 단연 ‘화진포’이다. 호수와 바다가 서로 무심한 듯 마주하고 있는 이곳에선 한적한 정취가 흐른다. 사람을 포근히 감싸는 듯한 화진포의 풍경은 潟湖(lagoon)의 양면적인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석호는 한자어 그대로 ‘개펄-호수’다. 석호는 개천을 통해 바다로 흘러드는 토사가 빙하기 이후 높아진 해수면으로 인해 퇴적되면서 만들어진다. 화진포도 유속이 느려진 민물이 하구에서 바닷물과 섞이면서 넓은 灣을 이루고, 그 만의 입구에서 만들어진 모래톱을 통해 짭조름한 물을 품은 汽水湖(blackish water lake)가 됐다. 고성에 7개, 남쪽 동해안에 18개나 된다는 크고 작은 석호들 중에서 화진포는 가장 크고(둘레 16km, 평균수심 1.92m, 면적 2.36㎢)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이처럼 석호는 고즈넉한 호수와 거친 바다가 접하고, 담수와 해수가 섞이고, 민물/바닷물에 사는 생물과 그 중간 정도의 염도에 적응한 기수 생물이 어울리는 곳이다. ‘노량진’처럼 큰 규모의 민물 나루를 의미하던 津과, ‘제물포’처럼 작은 규모의 바닷물 나루를 의미하던 浦라는 이름에 남은 흔적은 석호와 해수욕장을 모두 즐길 수 있는 화진포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또한 석호는 육지와 바다의 생태계를 연결하면서 이질적인 생명들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습지대를 이룬다. 더불어 그 풍성한 먹잇감을 찾아 멀리 북녘에서 철새들도 많이 날아든다. 호수 주변에 흩어져 있는 고인돌에서 보듯이 선사시대부터 이곳은 천혜의 조건을 갖춘 삶의 터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겨울 철새들의 평화로운 보금자리이다. 화진포는 생명들이 조화롭게 움트는 상생의 터전이고, 화합하되 서로 같지 않은 和而不同의 공간이다.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는 나루터

화진포의 옛 이름은 다양하게 변해왔는데 고려 말엔 ‘列山湖’라 불렸다, 열산호는 송림 우거진 주변 산들이 호수를 병풍처럼 감싸 안는 모양을 표현한 것이다. 1631년 澤堂 李植, 또 다른 설에는 방랑시인 김삿갓이 화진포의 풍경들을 사자성어에 담아 ‘화진8경’으로 표현했다. 그 중에서도 제6경 ‘平沙海棠’은 봄철 호수 주변에 진홍빛으로 만발하는 海棠花를 노래한다. 조개껍데기가 부서진 모래여서 밟으면 소리가 나는 鳴沙가 깔린 백사장 한 쪽엔 진분홍 빛 고운 자태로 해풍을 감내하는 해당화가 바람에 너울거린다. 개미도 살지 못하는 척박한 소금기 모래톱에 뿌리를 내린 화진포의 해당화는 먼 바다를 바라보며 꽃을 피워낸다. 봄볕 좋은 날 윤기 나는 이파리를 펼치고 우아하게 흩날리는 해당화 향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물론 단체 관광객들은 남북 초대 정치지도자들(이승만, 이기붕, 김일성)의 자취가 남은 별장들이나 전시물 수준의 편차가 심한 박물관들(생태, 해양, 역사)과 역사안보전시관을 훑어본 후 바삐 떠나곤 한다. 하지만 시간을 내어 돌아보면 화진포의 역사성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북진통일’을 쓴 이승만의 친필은 새삼스레 한반도 분단이 남긴 역사적·정서적 상처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자유당 정권의 2인자였던 이기붕의 최후를 상기하며 한국사회가 겪은 민주화의 역사를 떠올려 본다. 어린 김정일이 사진을 찍었던 ‘화진포의 성’ 계단에 앉아 그와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고, 전망대로 올라가 동해의 장쾌한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화진포는 철 지난 권력자들의 별장 터나 전쟁을 통해 수복한 ‘전리품’이 아니라, 뭇 생명 모두의 것이다. 화진포는 서로 자유로이 교통하는 생명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흔히 화진포 앞에 ‘동해안 최북단 석호’라는 수식어를 붙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군사분계선 이남에 한정된 말이다. ‘통일전망대’에서 보이는 ‘외금강’과 ‘해금강’의 장관과 關東八景 중 하나인 ‘三日浦’도 분단 이전엔 고성군의 자랑거리였다. 그렇게 동해안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상공에서 동해안을 따라 북상한다면 드문드문 박힌 석호들이 반짝이는 푸른 보석들처럼 보일 것이다. 

한편 해수욕장과 접한 화진포 북쪽의 外湖는 평상시에는 막혀 있지만 장마철이나 폭풍이 일 때는 바닷물이 둑을 넘어 급격히 들어온다. 이 현상을 ‘갯터짐’이라 부르는데,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서 한 몸을 이루는 그 뒤섞임은 화진포의 생명들에게 긴장과 활력을 돌게 만든다. 그걸 보기 위해 일부러 날씨가 궂은 날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 갯터짐의 이미지는 기존 경계선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드나드는 유수가 경계 자체를 지워버린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인상에 남았다.

화진포의 석양 무렵
화진포의 석양 무렵

민초들의 소망 담긴 철새들의 안식처, ‘松池湖’

화진포에서 남쪽으로 거진항과 가진항을 지나 죽왕면에 들어서면 송지호가 보인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이 석호는 호젓이 걷기 좋은 둘레길(6.5km)로 유명하며 전통민속마을인 ‘왕곡마을’ 아래에 있다. 화진포가 ‘교향곡’이라면 송지호는 ‘실내악’이라고 할까. 아담하고 소박한 송지호의 물은 맑고 고요하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아침에 둘레길을 걸으면 적막감 속에서 땅에 닿는 자기 발걸음 소리마저 조심스러워진다.

그 지리적 특성상 송지호는 한 때 간첩들의 대남 침투로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제 그런 이야기는 까마득한 ‘냉전’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냐고 웃어넘기고 싶지만, 이쪽 접경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직도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을 생생히 기억한다. 이젠 DMZ 접경지역이 분단으로 인한 역사적 수난과 긴장감을 재생산하는 공간이 아니라, 평화와 상생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곳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는 없을까 되뇌며 호숫가를 돌았다.
 


‘花津八景’

화진포의 8경은 口碑傳承돼 왔는데, 전하는 바에 따르면 1631년 당시 간성현감으로 재직하던 당대의 이름난 학자인 澤堂 李植(1584~1647)이 지어 널리 알렸다고 한다. 다른 설에 따르면 방랑시인 김삿갓 金炳淵이 화진포를 돌아보며 넓은 호수의 다양한 특색을 읊었다고도 전한다.



그런데 이 석호는 수렵과 채취로만 살아가던 시대를 지나, 농사를 지어 살아남아야 했던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그리 매력적이지 못한 곳이었다. 짭조름한 물은 농업용수나 생활용수로 사용할 수 없는 ‘쓸모없이 예쁜 풍경’이기 때문이다. 농업공동체를 이룬 사람들이 바라보는 석호에 대한 이런 이중적인 시각은 화진포와 송지호의 유래에 대한 ‘설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고성의 대사찰이었던 ‘乾鳳寺’에서 시주를 받으러 온 스님들에게 골탕만 먹이던 부자 ‘이화진’의 마을은 통째로 물속에 잠겨 버렸다. 그리고 시주를 했던 그의 며느리는 혼자 살아남았지만 물가에서 자결하고 말았다. 여기서 호숫물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을 일시에 뒤덮어버린 하늘의 ‘저주’처럼 읽힌다. 가뭄이 들어 걱정이 태산인데 민물도 바닷물도 아닌 애물단지 호수가 농민들에겐 얼마나 야속해 보였을까. 그럴 때는 이 호수의 절경이 차라리 저주스럽지 않았을까 싶은, 옛 민초들의 마음을 혼자 헤아려봤다.

송지호의 설화에는 가난한 농민들의 욕망이 더 강하게 담겨 있다. 원래 이 지역은 어느 구두쇠 영감의 문전옥답이었는데, 어느 날 늙은 스님이 시주를 매몰차게 거부하는 영감에게 화가 나서 쇠로 된 절구를 던지고 사라졌고, 그 절구에서 물이 솟아 호수가 됐다는 이야기다. 여기선 기득권층의 수탈과 착취에 대한 분노와 현실 극복의 의지가 老僧의 신령스러운 힘에 깃들어 있진 않을까. 먹을 수 없지만 결코 마르지 않는 호수를 보며, 그 호수 물처럼 절구에서 곡식도 펑펑 솟아나면 좋겠다는 괜한 상상마저 해봤을 배고픈 동해안 백성들의 마음에 어찌 다가갈까. 송지호 바닥엔 이곳에 뿌리 내린 변방 사람들의 희망과 안식을 찾아 쉼 없이 날아 온 철새들의 날갯짓이 아스라이 잠겨 있다.

바닷가 사람들의 서낭당, ‘서낭바위’와 소나무 한 그루

송지호 옆 도로를 건너면 ‘송지호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다. 고운 백사장이 죽왕면 공현진리에서 송암리까지 약 4㎞로 이어진다. 인근 바다에는 울창한 대나무 숲이 자라는 竹島라는 섬이 보인다. 얕고 넓은 해수욕장과 거친 바위들, 그리고 대나무 숲이라니. 동해안에선 이질적인 소재들도 무심하게 어우러져 하나의 그림이 된다.

서낭바위
서낭바위

해수욕장 입구 옆으로 난 산책길로 들어가면 납작한 부채가 서 있는 듯 기이한 위용의 바위가 보인다. ‘부채바위’로도 불리는 ‘서낭바위’ 주위로는 온갖 기암괴석들이 어울려 群舞를 추며 방문자들을 환영한다. 역삼각형 부채가 바다를 응시하는 듯한 서낭바위 위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바짝 허리를 굽히고 위태롭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시인 백석의 어느 시구처럼 그 소나무는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시 「흰 바람벽이 있어」 中) 바닷바람을 등으로 맞으며 서 있었다.

이 ‘바위들의 숲’이 주는 신비로움은 이곳이 왜 바닷가 사람들에게 ‘서낭당’의 역할을 했는지 이해하게 만든다. 바위들의 역동적인 형상에선 일제히 튀어 오르는 돌고래 무리가 떠오르고, 불그스름한 허리띠를 찬 듯한 무늬들은 샤머니즘적 효과를 강화한다. 석양 무렵 서낭바위를 올려다보면 바위와 나무의 교감과 공존이 만들어내는 기이한 경외감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으리라. 이렇듯 자연지리적 조건과 부단히 교감하고 땅과 바다가 나누어주는 것에 의지하며 살아갔던 사람들의 흔적을 함께 상상해보는 것이 인문지리적 탐방의 매력이리라.

돌멩이와 바위가 서로를 갈아내는 방법

서낭바위 주변을 더 거닐다가 물이 고인 바위 위 구멍들에 시선이 멈춘다. 평평한 바위 위에 세숫대야처럼 동그랗고 움푹 패인 구멍들은 ‘마린 포트 홀(marine port hole)’로 불린다. 바위의 작은 구멍에 들어간 돌맹이가 빠지지 않고 파도가 휩쓸릴 때마다 바위 속을 조금씩 갈아내서 형성된다. 계곡에서는 비교적 흔하지만 물살이 사나운 바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구멍들은 하나같이 동그란 모양일 수밖에 없다. 구멍이 돌멩이를 튕겨내지 않고, 돌멩이는 구멍에서 빠지지 않고 서로를 갈아내며 하나의 圓을 만들었다. 서로 다른 두 사물이 하나의 흔적으로 소멸하는 그 과정은 결코 각진 모양으로 귀결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하나가 다른 하나를 절멸시키는 과정이었다면, 그 안엔 탐욕만 가득 찼을 뿐 한 방울의 물도 담을 수 없었을 것이다.

파도와 바위가 부딪히는 시간

다시 7번 국도를 타고 내려오면 문암해변 인근에서 ‘凌波臺’를 볼 수 있다. 큰 결정으로 이루어진 화강암 바위 표면엔 평평한 곳이 거의 없다. 지질학 용어로 ‘타포니(tafoni)’라 불리는 크고 작은 구멍들은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타포니는 바닷물을 머금은 바위 틈의 소금 결정이 점점 커지면서 바위를 깨뜨린다. 작은 구멍들은 옆의 구멍들과 합쳐져서 더 큰 홈을 만들고, 아예 바위의 한 부분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천연두(天然痘)를 앓고 얼굴이 얽은 사람들이 흔했던 시대에 이 바위들은 ‘곰보바위’로 불렸다. 소금기에 의한 鹽風化(salt weathering) 작용, 즉 바위에 사정없이 내리치는 파도와 조금씩 그 세를 불려나가는 소금 덩어리에 의해 박리되어 만들어진 능파대는 흡사 어린 아이들이 마구 주무른 찰흙 덩어리처럼 보인다. 그리고 더 둘러보자면 기괴하고 비정형적인 바위들의 연속체는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축소시킨 것 같기도 하다. 마치 불멸의 조각가가 된 것처럼 소금 결정과 파도는 바위 모양을 계속 변형시키고 있다. 이 ‘영속적인 부딪힘’의 과정을 통해 파괴를 통한 창조의 계기가 마련되고, 비생물이 유기체적 순환을 거듭한다. 파도와 바위의 끊임없는 교섭이 만드는 이러한 충돌엔 경계가 없으며, 망설임이나 거리낌도 없다.

소금이 바위틈을 벌려 만드는 공간

꼬리를 무는 상념을 접고 다시 발걸음을 남쪽으로 돌리자, 해가 뉘엿뉘엿해졌다. 동해안에 늘어선 지리명소들이 아직 숱하지만 일출 경관이 장엄하게 보인다는 ‘청간정(淸澗亭)’에서 길을 갈무리한다.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중층 팔작지붕의 정자에서는 만경창파(萬頃蒼波)와 더불어 소나무 숲 뒤의 좁고 긴 농경지가 굽어보인다. 백두대간의 우람한 근육질 지형은 동해의 깊고 푸른 물을 만들었고 생명을 품어 안는다. 그 곁에 사는 사람들의 불빛이 하나 둘 켜진다.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통일인문학연구단
DMZ연구팀은?

2015년 상반기에 결성돼 DMZ접경지역에 대한 융복합적 연구를 수행 중에 있다. 그히 'DMZ의 인문스토리텔링', '인문체험형 DMZ 투어 애플리케이션 개발', 'DMZ 로컬리티 기반 통일인문학', 'DMZ접경지역의 인문학과 문화콘텐츠 발굴' 등의 주제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관련 연구주제로 한국연구재단의 프로젝트 지원사업 2건(2016, 2017년)에 선정됐으며, 2017년 10월 현재 12명의 연구진이 참여하고 있다. 그간 『IHU REPORT:DMZ 재상징화 전략과 방안』(2015), 『생명·평화·치유의 DMZ 디지털 스토리텔링』(2016) 등의 단행본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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