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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는 나쁜 이데올로기이자 나쁜 과학이다
‘인종주의’는 나쁜 이데올로기이자 나쁜 과학이다
  • 교수신문
  • 승인 2017.11.1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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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인종주의에 물든 과학』 조너선 마크스 지음, 고현석 옮김, 이음, 129쪽, 12,000원

2014년 4월 11일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도덕적인 아이로 키우기」라는 제목의 칼럼을 보자. 심리학자 존 필립 러슈턴(John Philippe Rushton)의 ‘고전적인 실험’을 아무 생각 없이 인용하고 있다. 그럴 수도 있다. 인용하지 못할 것도 없다. 러슈턴은 실제로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학교의 존경받는 심리학자였다. 지능지수(IQ)는 주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며, 한 사람의 지적인 운명을 설정하고, 미국인의 인구통계학적 분포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악명 높은 주장을 담은 리처드 헌스타인(Richard Herrnstein)과 찰스 머리(Charles Murray)의 저서 『종형 곡선(The Bell Curve)』(1994)은 러슈턴의 논문을 스무 편 이상 인용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이 책은 부록에서까지 러슈턴의 주장을 선제적으로 방어해주었다. 이 책은 그의 연구를 “괴짜나 고집쟁이의 연구가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러니 당연히 의문이 생긴다. 다른 학자들도 그를 그렇게 평가할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연구가 도대체 무엇을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할까?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대답은 몇 년 후에 발표됐다. 당시 러슈턴은 자신의 책 요약본을 몇몇 여러 전문 사회의 구성원에게 메일로 전송했다. 원문은 『동물 행동(Animal Behaviour)』에서 단호한 어조로 인상적인 비평을 받았다. 비평가는 이렇게 썼다. “러슈턴의 과학적인 결함과 노골적인 인종주의 중 어떤 것이 더 나쁜지 모르겠다.” 이어서 비평가는 러슈턴은 방법론적으로 내용이 매우 의심스러운 데이터만을 뽑아 사이비 과학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으며, 그 결과 “다양하게 오염된 수많은 데이터를 조합함으로써 가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신성한 믿음에 이르게 됐지만, 사실 그 결과는 보통의 쓰레기 더미보다 약간 큰 쓰레기일 뿐”이라고 평했다.

러슈턴은 자신의 데이터가 구세계 대륙들과 세 종류의 사람들이 연관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확고하게 믿었다. 그것은 현대 생물학보다는 성경 속 인물인 노아의 후손들을 더 믿는 생물지리학적 시나리오다. 그가 성적 욕구, 범죄율, 성기의 크기, 뇌의 크기 등으로 대표되는 대용변수(surrogate variables)를 통해 측정한 바에 따르면, 아프리카 사람들은 오랜 자연선택 과정을 거쳐 번식률은 높아지고 지능은 낮아졌다. 아시아 사람들은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성욕은 적어지고 지능은 높아졌다. 유럽 사람들은 적당한 중간을 이뤘다. 그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인의 IQ가 지적 장애가 있는 유럽인 수준이라고 믿었다. 분명히 그는 인종주의를 신봉하는 미치광이였다. 그의 어이없는 연구들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2012년 사망할 때까지 러슈턴은 10년 동안 파이어니어기금(The Pioneer Fund)의 이사장이었다. 파이어니어기금은 1930년대의 우생학자부터 1960년대의 인종차별주의자, 러슈턴 자신을 포함한 1980년대의 급진적 유전주의 심리학자들을 조심스레 선정해 지원해왔다. 그런 그가 냉철하고 치밀한 과학적 판단을 전혀 할 수 없었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는 박사학위가 있었지만, 일부 부유하고 권력 있는 인간혐오주의자들에게 존경받는 괴짜 몽상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어떤 경로를 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학의 특정 분야에서 권위 있는 지위에 올랐다. 실제로 <뉴욕타임스>는 2014년에 그의 논문 한 편을 인용했다. 물론 그 논문은 인종 자체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과학자로서 러슈턴이 신뢰받는지 그렇지 않은지 여부다.

오늘날의 모든 현장 과학자는 알고 있다. 데이터가 조작될 수 있다는 것과 과학자와 학계에는 신뢰라는 가치가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과학적 신뢰를 잃는 것은 곧 명예를 잃는 것과 같으며, 이는 두터운 신뢰와 정직성이 돌이킬 수 없이 몰락하는 것이다. 우리는 공정한 데이터에서 공정한 결론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러슈턴의 논문을 인용하는 것은 학자로서의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는 일이 된다. 그의 머릿속과 그의 모든 연구 결과에 어떤 생각이 깔려 있는지 인용하는 필자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 저자는 미국 노스캘로라이나대(샬럿) 인류학과 교수로 있다. 인류학과 유전학을 공부했고, 과학과 인문학에 폭넓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인류의 기원과 인간 종 다양성을 주제로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해왔다. 『98퍼센트 침팬지라는 의미』를 통해 과학의 사회적 역할, 인종주의, 동물의 권리, 유전자 복제 등 과학계의 논쟁적인 주제들에 대해 비평했다. 2017년 신작인 『인종주의에 물든 과학』에서 저자는 “‘인종’은 과학적인 개념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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