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꿈’과 가상현실
‘나비의 꿈’과 가상현실
  • 이연도 중앙대 교양대학·철학
  • 승인 2017.11.1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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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莊子』 「齊物論」엔 유명한 ‘나비의 꿈’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느 날 莊周는 나비가 된 꿈을 꿨다. 훨훨 자유롭게 나는 나비가 돼 유유자적 자연 속을 날아다녔는데,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문득 깨어보니 다시 장주가 됐다.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꿨는지, 나비가 장주가 되는 꿈을 꿨는지 알 수가 없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 무슨 구별이 있기는 할 것이다. 이를 物化라 한다.” 천지만물의 차별 없음을 비유한 이야기인데, 포스트휴먼의 시대에 다시 읽히는 우화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변화하는 사회 추세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장자는 나비의 꿈을 철학적 비유로 썼지만, 실제 현실에서 이를 체험할 날이 멀지 않았다. 가상현실, 인공지능, 사이보그 등의 단어는 더 이상 미래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사용된다. 하긴 최근 속편이 나온 ‘블레이드러너’의 원작(1982년)은 201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과학기술의 산물들은 충분히 예견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비해, 이에 대한 철학적 반성이나 분석은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현실과 가상이 중첩하는 세계에 대해 다룬 글이나 책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개 이들이 문제 삼은 것은 변화한 현실의 모습에 대한 분석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이는 텍스트 중심의 인문학에서 이미지에 기초한 새로운 인문학 유형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얘기하며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이미지인문학』, 진중권, 천년의 상상, 2014)

최근 출간된 『포스트휴먼이 온다』(이종관, 사월의 책, 2017)는 좀 다른 각도에서 과학기술시대에 철학이 무엇을 논의해야 하는지 얘기한다. 이 책은 기술적 미래주의에 대해 인간 존재론의 관점에서 반성적으로 성찰하고 있는데, 그 논의의 밀도가 꽤 탄탄하다. 가령 여기에서 저자는 가상현실의 위험성에 대해 후설의 현상학적 지각 이론에 근거해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가상현실의 가장 큰 위험은 우리 지각의 역사성이 위협받는다는 데 있다. 우리 의식의 작용은 과거의 의식 작용과 긴밀한 맥락을 형성하며 진행되는데, 가상현실은 이러한 자연스러운 지각 활동에 큰 문제를 일으킨다. 가상현실은 기본적으로 자연스럽게 경험될 수 없는 현실, 나의 현재 상황에선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현실을 실재보다 더 실재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기술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우선 현실의 내 경험과 과거와의 연계가 인위적으로 차단돼야 한다. 가상현실의 중요한 요소인 ‘몰입’은 사용자의 과거 경험에서 오는 영향으로부터 현재의 감각을 고립시키는 장치를 필요로 하며, 경험체계에서 오는 데이터와는 전혀 다른 데이터들을 상당한 강도와 밀도로 체험자를 향해 출력한다. 일종의 데이터 쇼크를 발생시켜 과거의 경험체계를 압도하는 것이다. 이처럼 지금까지의 경험체계를 일순간 정지시키는 것은 경험 영역에 순간적으로 상당한 방향 교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위험성은 가상현실 체험 후에 발생할 수 있는 증후군이다. 현실과 다른 가상현실을 경험한 후, 우리는 과연 현실로 온전히 복귀할 수 있을까. 가상현실의 가능성을 연구하는 이들은 이 문제에 대해선 거의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오직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세계를 산출함으로써 어떻게 더 실재적인 체험을 발생시킬 수 있을까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지각이론에는 ‘지각의 역사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가상현실 체험은 그것이 끝난 후에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에 침전되며, 지속적으로 현재의 경험에 반영된다. 이는 마치 ‘외상후 증후군’과 같은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제공한다. 가상현실은 현실과 가상의 세계, 이미지와 실제의 세계를 넘나드는 인류의 오랜 꿈을 실현시켜줄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 쾌락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우리가 포스트휴먼 시대의 과학기술에 대한 인문학적 반성을 뒤늦지 않게 수행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연도 중앙대 교양대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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