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이르는 과정 없이 예술적 권위만 탐낼 때
진실에 이르는 과정 없이 예술적 권위만 탐낼 때
  • 이효숙 연세대 강사·불문학
  • 승인 2017.11.1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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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표절에 관하여』 엘렌 모렐-앵다르 지음 | 이효숙 옮김 | 봄날의책 | 464쪽 | 23,000원

“표절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것이 짜증나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는 『표절에 관하여』의 저자 엘렌 모렐-앵다르가 프랑스 일간지 <뤼마니테(L'Humanit)> 2013년 4월 19일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독창성을 추구하며. 뻔뻔한 표절자에 대한 조사』를 막 출간하던 터였다. 표절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발표하고(1996년) 이를 바탕으로 초판을 출간한(1999년) 이후에도 이에 관한 연구와 집필을 계속하고 아울러 투르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가 자신의 저서들에서는 학문적 객관성을 지키느라 표출하지 못하던 분노를 인터뷰에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표절에 관하여』 서두에서 밝히는 바처럼, 프랑스에서도 ‘표절’은 맘 편히 거론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고, 여전히 얼마간 그러하다. 표절이 종종 행해지고 때로는 관행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학계나 문단은 속성상 치밀한 관계망을 형성하는 장이고, 외적 내적 위계질서가 그 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런 저런 양상으로 지배하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일반 독자들에 의해 지적되고, 언론에서 다루게 공론화되기 전에는 그렇다는 얘기다. 다른 한편으로는 판단 근거가 될 만한 합의적 준거나 비판도구들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표절이 부도덕한 일이라는 점에는 다들 동의하지만 어느 정도의 차용이 표절인지에 대해서는 저마다 잣대가 다르고, 한 개인 차원에서도 상황에 따라 그 잣대가 변하기 일쑤다. 이러한 모호함을 모렐-앵다르는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시대에 따라 달라져온 표절의 개념과 실제 사례들을 풍부히 제공한 후에는 표절 현상 그 자체의 틀을 넘어, 글쓰기의 제반문제뿐만 아니라 글쓰기 이후의 물리적 실현(출판 기획 및 실행), 저작권침해에 대한 사법적 시각과 판례, 그 무엇보다 글 쓰는 이의 의식(양심)과 도의적 책임 등 여러 차원에 걸친 다각적 분석을 수행했다.

시대 변천에 따라 표절 개념도 변화

저자의 역사적 고찰에 따르면, 글쓰기 또는 창작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천하며, 이에 따라 표절의 개념 또한 바뀔 수밖에 없게 된다. 서책이 진실의 보관소로 여겨지며 제한된 이들만 접근할 수 있던 시대, 선배 지식인들의 저서를 필사하는 것 자체가 영예로운 지적활동이던 시대, 앞선 지성들의 사상과 지식을 읽고 아는 것만으로도 긍지를 가질 만했던 시대, 글쓰기란 개인이 아닌 지식공동체 전체의 공동작업으로 여겨지던 시대 등을 거쳐 마침내 개인의 ‘개성적’ 흔적을 지닌 결과물로 여기게 된 시대에 이르러서야 글에 대한 소유권 주장을 하기 시작하고, ‘비양심적’ 차용에 대한 비판의식이 무르익어간다. 즉, 중세에 이어 르네상스, 심지어 고전주의 때까지도 선배 지성들의 권위에 기대고 전통을 따라야 저자로서의 정당성을 확보하다가, 계몽기에 이르러 저작권을 주장하는 움직임이 서서히 시작된 것이다. 이어서 ‘나’의 발견과 부각이 본격화되는 낭만주의에 와서는 ‘독창성’ 개념과 더불어 저자 개념이 신성화되며, 이로써 ‘차용’은 그 방식에 따라 ‘표절’이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이 확산돼간다. 20세기에 와서는 언론매체가 표절에 관해 언급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문단이나 정치계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들이 스캔들에 얽혀 언론에 오르내리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저자는 이렇게 시대를 훑으며 고찰하는 가운데 표절을 둘러싼 유명 작가들에 얽힌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풍부하게 소개해 재미를 더한다.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또는 결코 흉내도 낼 수 없는 천재로 여겨지던 위대한 작가나 작품에 대한 뒷얘기가 그들의 신화에 금이 가게 할지도 모르고, 일반 독자에게 어쩌면 실망감을 줄 수도 있겠지만, 아울러 안도감도 느끼게 할지 모른다. 그 위대한 작가와 자신 사이에 놓여 있던 무한한 거리가 조금이나마 좁혀지는 것 같은 안도감…….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위대한 작가들은 모방과 차용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차용은 습작시대의 한 방편이었거나, 높이 날아오르기 위한 발판이었을 뿐이다. 또는 창의적 유희의 수단이었거나.

어떤 경우 표절 시비가 법정으로까지 가기도 한다. 이때는 ‘표절 논란’을 넘어 ‘저작권 침해’의 차원이 된 것이다. ‘표절’이 곧 ‘저작권 침해’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저작권 침해는 사법의 소관이다. 프랑스 독자들이 좋아하는 작가 레진 드포르주의 『파란 자전거』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표절한 혐의로 오랜 법정 공방의 대상이었다. 모렐-앵다르는 이 사건의 추이를 세세히 설명하고 분석하면서 표절과 저작권침해에 대한 사법의 시각이 어떤 것이며 어떤 맹점을 갖고 있는지 증명해 보인다. 특히 사안이 문학작품인 경우, 문학에 대한 사법의 피상적 이해와 준거 적용이 얼마나 부조리한 판단과 판결로 이어지는지 지적한다. 예를 들어 같은 단어나 표현들의 재사용이나 유사한 줄거리 등에 대한 계량적 분석과 확인 등을 통한 판결은 문학에 대한 이해 결여에서 비롯된 어이없는 결과임을 적시한다.

최근 들어 우리 대학들에서도 그 사용이 확산되고 있는 표절 탐지 프로그램들도 소개되는데, 이것들 또한 마찬가지의 맹점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된다. 두 텍스트에 공존하는 단어들이나 이음새 등을 탐지해내는 이런 프로그램들은 복사-붙이기를 탐지해낼 뿐이어서 ‘상표 떼기’나 변형 작업을 조금만 하면 더 이상 효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프로그램들은 바쁘거나 게을러서 다른 말로 바꾸기(pharaphrase)조차 하지 않은 표절자들이나 적발해낼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표절 유혹의 억제나 예방 같은 교육적 역할은 얼마간 할 수 있을 테지만, 문학에서는 별로 효용이 없음도 깨닫게 해준다. 문제는 교묘한 표절, 치밀한 표절자들이다.

표절의 경계선에 닿아 있는 글쓰기의 정당화

그리하여 모렐 앵다르는 표절에 관한 논의를 상호텍스트성과 ‘다시쓰기’ 장르에 대한 고찰로 확장시킨다. 패러디, 파스티슈, 패치워크, 속편 형식의 다시쓰기 등 앞선 작품의 유명세를 바탕으로 상호텍스트성을 이용해 독자를 끌어들이는 이런 문학형식이 어떤 점에서 표절과 구분될 수 있는지, 그 경계를 짓는 요인은 무엇인지 분석한다. 표절의 경계선에 가까이 닿아 있는 그런 글쓰기가 정당화되는 것은, 모델 작품의 영향에 대한 자발적 고백 때문이지만, 그렇다 해도 맹목적 차용인지 창조적 차용인지 구분해야 함은 명백하다. 이로써 ‘독창성’ 문제가 대두된다. 문학에서의 독창성은 문체, 형식화, 구성에서 비롯된다고 우선 규정하지만, 발자크처럼 문체는 덜 중시하지만 “계시적 통찰력으로 하나의 세계를 작품들 속에 품을” 수도 있다. 이 위대한 작가는 “시간을 초월한 진실의 가치를 현실에 부여하기 위해 현실을 승화시키는 허구의 힘”을 발휘해낸 것이다.

반면, 표절 유혹은, 끈기 있는 독서와 사유, 그리고 창의성과 통찰력 등을 통해 어떤 신념이나 진실에 이르는 과정이 생략된 채 그저 지성적 권위나 예술적 권위를 탐낼 때 빠지기 쉽다는 점을 모렐-앵다르는 일깨운다. 그런 ‘지성적 사기’를 통해 신분상승이나 어떤 지위에 도달하는 것이 용이해진다거나 그런 횡령이 만연할 때, 해당 공동체나 사회는 배반감을 느끼게 될 거라고 격분한다. 그러니 숙고할 시간이 없거나 창의력이 없으면 차라리 침묵하라고 일갈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시피,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산업계의 성과주의를 모방하고 있는 학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시간에 쫓기며 성급한 글쓰기를 하다가 부적절한 차용의 유혹을 느끼기 쉽다. 그런가 하면 다소간 성공한 작가들은 후속작을 재촉하는 출판사나 자신의 욕심 때문에 타인의 삶을 무단 복제하거나 자기 복제를 하기까지도 한다.

그러므로 겉보기에는 표절을 경계하고 비난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표절을 부추기고 있는 아이러니한 사회 분위기도 문제다. 연구자나 작가들로 하여금 ‘publish or perish’라는 강박관념에 쫓겨 글을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생략해버리게 만드니 말이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詩가 이렇게 쉽게 써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한 윤동주 시인이 떠오른다. 잊혔던 이런 부끄러움과 직업윤리를 일깨울 뿐만 아니라, 애매모호한 논의에서 벗어나 타당한 논거를 제시해주는 모렐-앵다르의 책은 요즘 들어 부쩍 표절시비가 많아진 우리에게 반가운 참고도서가 아닐 수 없다.

 

이효숙 연세대 강사·불문학
필자는 연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파리4대학에서 베르나노스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마담 드 장리스의 교육적 이야기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번역한 책으로는 『마음과 정신의 방황』(크레비용), 『랭제뉘』(볼테르), 『등대』(자크 아탈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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