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건강과 扁鵲의 충고
노인 건강과 扁鵲의 충고
  •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한국정치사
  • 승인 2017.11.13 09: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로칼럼]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한국정치사

稀壽를 지나고 다시 喜壽를 지나 이제 望八에 이르고 보니 친구들이랑 앉으면 하는 얘기가 건강이 제일이란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식들을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건강해야 하니 그런 얘기하는 것을 수긍할 만하다.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막상 건강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를 들어보면, 대책 없이 건강만을 강조할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공부도 하지 않고 만년을 보내는 교수들이 보기 싫어 다른 나라에는 없는 정년퇴직이라는 것이 생겨 교수도 어쩔 수 없이 나이 차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내 생애의 황금기는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이 아니었던가 여겨진다. 눈 어둡고 허리 아프고 기억력이 떨어지고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인생의 의미를 알고 학문이 원숙해지는 것은 노년이었던 것 같다.

역사를 보면 요절한 천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인생 후반기에 명저를 남겼다. 그리고 그 명저를 남기기에는 적어도 10~20년은 필요했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을 쓰는데 10여년이 걸렸다. 그나마도 빠른 셈이다. 요즘처럼 짧은 시간에 연구 실적을 내도록 닦달하는 세태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시간이다. 뉴턴은 85세를 살았는데 늙어갈수록 초롱초롱했다. 조금 얘기가 다르지만 성군(聖君)도 대체로 장수했다. 공업(功業)이든 저술이든 그리 짧은 시간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노경의 건강을 지킬 수 있을까? 醫聖 扁鵲이 어느 날 제자들에게 건강에 대한 강의를 하는데 한 제자가 “선생님께서도 고치지 못하는 병이 있습니까?”라고 여쭈었더니 그가 대답하기를, “첫째로 교만한 사람, 둘째로 인색한 사람, 셋째로 아프면 무당부터 찾아가는 사람, 넷째로 태어날 때부터 허약하여 약도 먹을 수 없는 사람, 다섯째로 폭음·폭식하는 사람, 여섯째로 음양의 조화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의 병은 나도 고칠 수 없다”고 대답했다. 마지막 구절의 행간에는 “금슬 좋은 부부가 장수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편작의 권고에 조금 더 이야기를 더하자면 천주교에서는 여덟 가지 죄라는 것이 있는데, 교만·인색·탐욕·음행·분노·질투·무지·나태이다. 불신자에 대한 꾸지람은 없다. 그런데 이 여덟 가지 죄는 기이하리만큼 편작의 불치병과 일치됨을 볼 수 있다. 편작과 천주교 사이에 교감이 있을 턱이 없지만 두 견해가 같은 쪽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 기이하게만 보인다. 사람이 사는 이치는 동서양이나 고금에 다름이 없다는 뜻도 될 것이다.

결국 편작이 권하고자 하는 장수의 비결은 위의 여섯 가지 악습을 버리는 것인데, 요약하자면 마음으로 비우고(虛心), 욕심을 내려놓으라(下心)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그것이 말로는 쉽지 우리 같은 범부들에게는 이룰 수 없는 벽처럼 보인다. 인간의 욕망에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끝없는 탐구심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독점 의욕이 마음을 병들게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면 굳이 내 당대에 이루려는 욕심을 버리고 후학들에게 넘겨주고 길을 열어주는 것도 미덕일 것이다. 데카르트의 말을 빌리면, “학자는 언제인가 스승과 작별할 때가 온다”고 한다. 그들을 보내주는 것도 하심이다. 이제 나이 먹은 우리에게 남은 일은 후학들이 곁길로 가지 않도록 지켜보는 것이다.  

미국 서부 영화를 보면 인디언이 말을 타고 광야를 달리다가 문득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내 몸은 이토록 허둥대며 달려왔지만 내 영혼이 제대로 따라오는지 기다리느라고 말을 멈춘다고 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과 다툼이 아니라 여유로운 휴식과 되돌아보는 시간이 아닐까? 추풍령 휴게소에서 강물을 내려다보듯이…….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한국정치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