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왕 대 知民
철인왕 대 知民
  • 김종영 편집기획위원/경희대 사회학과
  • 승인 2017.11.1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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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김종영 편집기획위원/경희대 사회학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공론화위원회는 현재 진행 중인 공사는 재개하되 미래에는 원전을 축소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위원회에 대한 법적 근거와 효력, 대표성, 전문성, 그리고 절차성을 두고 친원전 대 탈원전 전문가들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친원전 과학기술자들은 “공포가 과학을 이길 수 없다”며 시민들의 무지를 우려하며 공론화위원회 자체를 부정했다. 공론화위원회가 건설 재개를 손들어주자 “역시 똑똑한 시민”이라며 이런 논리는 자취를 감췄다. 숙의민주주의자를 자처하는 탈원전 전문가들은 공론화위원회가 성숙한 민주주의의 실험이라고 추켜세우다가 건설 재개 쪽 의견을 내놓자 적잖게 당황했다. 친원전 세력의 네트워크와 영향력이 워낙 강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민들이 경제 이데올로기에 속았다고 또는 속을 정도로 충분히 똑똑하지 못했다고 한탄한다. 친원전 전문가이든 탈원전 전문가이든 이들의 무의식에는 자신의 견해를 전적으로 따라주지 않는 시민들을 지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고 있다. 과학을 ‘충분히 안다면’ 공사 재개를, 원전의 위험을 ‘충분히 안다면’ 공사 중단을 선택할 것이다. 양측 전문가들이 ‘아직도 모르는 것’은 지식정치의 속성인데, 이는 지식과 정치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결합되어 경합된다는 사실이다. 지난 10여 년이 넘게 한국사회에서의 주요 갈등들은 지식정치를 동반했는데 그 주요한 사례들은 황우석 사태, 광우병 촛불운동, 4대강 사태, ‘삼성백혈병’ 사태 등이다. 원전도 예외일 수 없다.

지식정치에서 플라톤의 아이디어는 대단히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가 정치권력과 지식권력의 관계에 대한 아이디어의 원형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모두 알다시피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경멸했고 그 대안으로 정치권력과 지식권력을 일체화한 인민의 수호자, 철인왕을 제시했다. 플라톤처럼 얼마나 많은 지식인들이, 특히 한국 지식인들이, 지식권력과 정치권력을 동시에 획득하기를 무의식적으로 열망했던가.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언도받았기 때문에 그는 시민들은 무지하고 편견과 감정에 사로잡기 쉬우며 현자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시민들의 지적 능력을 무시한 사상가들은 의외로 많다. 자유주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지식이 출중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투표권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조지프 슘페터는 시민이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고 결정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대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사회는 지식사회이기 때문에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서 지식정치가 필연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내가 경계하는 것은 민주적 의사결정에서 한국 지식인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아직도 ‘철인왕’ 모델, 곧 정치권력과 지식권력을 일체화한 엘리트 모델에 집착한다는 점이다. 근대 정치체제는 이중의 위임, 곧 정치적 의사결정은 정치인에게, 기술적 의사결정은 전문가에게 위임을 바탕으로 한다. 주인-대리인 이론(principal-agent theory)에서처럼 정치인과 전문가에게 위임하는 것이 더 정당하고 효율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중의 간접민주주의’는 철인왕 정치의 변형된 형태로서 다양한 이유로 심대한 도전을 받았고, 참여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와 같은 직접민주주의 모델들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한국사회에서 정치인과 지식인을 못 믿을 이유는 도처에 깔려 있고 그 정점을 찍은 사건이 최순실-박근혜 사태였다. 촛불은 직접민주주의의 승리였고 공론화위원회와 같이 이를 좀 더 제도화된 차원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성숙을 위해서 의미 있는 일이다.

여기서 철인왕이라는 엘리트 모델 또는 이중의 간접민주주의 모델을 넘어서 숙의민주주의 시대에 지식인/시민의 경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주체가 요청되는데 나는 그 주체를 知民이라고 명명한다. 지민의 대표적인 예로 택시운전사로서 반올림운동을 이끌었던 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를 들 수 있다. 진보 진영의 전문가들조차 삼성을 상대로 이길 수 없다고 말했을 때도 그는 꿋꿋이 동료들과 함께 ‘삼성백혈병’의 원인을 찾아냈다. 지민은 공적 이슈와 사회문제에 대해 공부하고 참여하는 똑똑한 시민이다. 숙의민주주의는 지식민주주의를 전제하며 이는 정책의 입안, 결정, 집행을 전문가나 지식엘리트들에게 위임할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하고 주도하여 전문가들과 ‘함께’ 풀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촛불은 한국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에게 이피퍼니(Epiphany, 전환적 각성)를 주었고 우리는 아직도 그 심대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촛불시민은 촛불대통령을 낳았고 앞으로 올 촛불체제(민주적 다원체제)의 주체로서 우리 지식인들만큼 충분히 똑똑하다. 지민들의 촛불에 의지해 이제 지식인들이 동굴 밖으로 나와야 한다. 철인왕이 되고자 하는 환상을 버리고 지민의 한 사람으로서 같이 촛불을 밝히고 구체제를 빠져나와 신체제로 나아가야 한다.

 

 

   김종영 편집기획위원/경희대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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