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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민족 먼저 챙기던 ‘큰 스승’이시여, 편히 잠드소서!
국가·민족 먼저 챙기던 ‘큰 스승’이시여, 편히 잠드소서!
  • 이덕환 서강대·화학
  • 승인 2017.11.10 10: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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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사_ 故 김시중 선생님을 떠나보내며
故 김시중 선생님.

“원자력은 어떻게 되고 있나?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되는 건데.” 지난달 29일, 85세를 일기로 영면하신 溪丁 김시중 고려대 명예교수께서 필자에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었다. 우리 과학기술계의 중심축으로 세계 최고수준에 우뚝 올라선 원자력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고 믿었던 선생님께, 탈원전 공약은 끝내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원자력에 대한 소신과 애정은 괜한 허세가 아니었다. 문민정부의 초대과학기술처장관으로 봉직하며 직접 경험하신 현실에서 비롯된 확고한 신념이었다. 1978년 고리 1호기로 시작된 원전시대가 화려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고리·월성·영광·울진에 9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었지만 원전폐기물 처분장의 부지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보 상황과 국제 정세도 복잡했다. 핵 개발의 야욕을 드러내는 북한과 대치해야 하는 상황에서 1991년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무작정 고집하기도 어려웠다. 한국형 원전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여전히 ‘먼 나라’일 수밖에 없었던 중국을 상대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선생님은 원전 폐기물 처분장의 안전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장관실 앞에 중·저준위 폐기물이 담긴 드럼통을 비치해두는 파격을 선택하기도 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통해 북한에 ‘한국형경수로’를 제공하게 된 것도 러시아가 고집하던 흑연 감속로의 안전성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했던 선생님의 무모한 투지덕분이었다.  결국 한국형 경수로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쌓은 국제적 실무경험이 UAE 원전 수출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핵화 선언에 대한 과학자로서의 소신을 당당하게 밝히는 용기도 있으셨다.

선생님의 관심이 원자력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국토 최남단 마라도의 남서쪽 149킬로미터 거친 바다 밑에 있는 전설 속의 수중 암초 ‘이어도’에 종합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하겠다는 황당할 정도로 창조적인 발상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허황된 영토 걱정은 접어두고 과학기술 행정이나 잘 챙기라’는 경제 부총리의 핀잔도 선생님의 발목을 잡지는 못했다. 장관직에서 물러나신 후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선생님의 놀라운 발상의 전환과 끈질긴 집념 덕분에 2003년에 완공된 이어도 종합해양기지는 오늘날 중국·일본과의 방공식별구역과 배타적경제수역(EEZ) 논란에서 우리의 해양관할권을 주장하는 가장 확실한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이어도 개발을 관철시킨 선생님은 현대사에서 영토 확장에 기여한 유일한 과학자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우리가 세계 최초로 개발에 성공한 중소형 다목적 스마트(SMART) 원자로도 선생님의 별난 逆發想에서 시작된 쾌거였다.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원전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원전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실제로 1994년에 가동을 시작한 한빛3호기는 1978년의 고리1호기보다70%나 더 큰 1GW 규모였다. 그런데 중국 내륙에 분산돼 있는 중소도시의 입장에서 대규모원전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원전의 규모가 너무 크다는 중국 고위 관료의 푸념이 선생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핵 잠수함용 소형 원자로를 떠올리셨던 것이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실시 설계를 진행하고 있는 스마트 원자로는 그렇게 탄생하게 됐다.

충남 논산의 광산 김 씨 명문가에서 출생하신 선생님은 대전중학교에서 국가 발전에는 ‘정유공장’이 꼭 필요하다는 화학 선생님의 말씀에 서울대 화학과로 진학하셨다. 약관 23세에 조교로 시작해 장장 42년 6개월 동안 오로지 고려대 화학과에서만 교수로 재직하셨던 선생님은 순수 토종 무기화학자이셨다. 서울대 대학원의 석사과정에 입학한 직후 지도교수이셨던 장세헌 교수님의 강권으로 1954년에 개설된 화학과의 실질적인 창설멤버가 되신 것이었다. 수도·전기가 없는 40평의 실험실을 화학·물리·생물학과가 함께 사용해야 했고, 시약은 정종병에 넣어서 보관하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학장·체육부장·부총장을 역임하신 고려대에는 아직도 선생님께서 남기신 흔적들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천성적으로 부지런하고 열정이 넘치시던 선생님은, 화학계를 비롯한 과학기술계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궂은일이라도 마다하시는 법이 없었다. 과학기술계의 주요 행사에는 빠짐없이 참석해서 국가 발전을 위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던 선생님은 이 시대에 찾아보기 어려운 과학기술계의 진정한 ‘원로’였고 ‘어른’이셨다. 장관 퇴임 후에는 과학기술계·정계·재계·교육계의 인사 100명으로 국내 최초의 ‘포럼’을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 골몰하셨다. 과학기술포럼은 앞으로도 ‘과학과 더불어’ 키우시던 선생님의 꿈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대한화학회가 설립한 탄소문화원에서 선생님과 함께 활동했던 엄정식 전 한국철학회회장은 선생님에게서는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큰 스승’의 체취가 풍긴다고 기억하고 있다. ‘과학’과 ‘인문학’이 서로가 상대의 가치를 인정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동반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마지막 가르침이다. 이제 멀리 계룡산이 건너다보이는 황산벌 끝자락의 선영에 고이 잠드신 선생님은 ‘나’보다 ‘국가’와 ‘민족’을 먼저 챙기시던 큰 별로 후배 과학기술인 모두에게 길이 기억될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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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2017-11-10 16:39:38
토네이도의 중심은 준 무중력 상태인데 기존의 중력 이론으로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토네이도의 중심이 설혹 완전히 진공이 된다고 하더라도 물기둥을 10미터 이상은 만들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직경이 거대한 물기둥이 수백 미터의 높이로 형성될 수 있는가? 중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융합한 통일장이론으로 우주와 생명을 새롭게 설명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노벨 물리학상 후보에 오른 과학자들(김정욱, 김진의, 임지순, 김필립)도 반론을 못한다. 반론을 못하는 이유가 궁금하면 그들에게 물어보거나 이 책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