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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스승
우리에게 필요한 스승
  • 도정일 논설위원
  • 승인 2003.05.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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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오늘날 한국의 대학에서 ‘스승’은 아주 시시한 화두의 하나다. 아무도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금지된 어휘의 하나이기도 하다. ‘스승’이 금기의 언어가 된 것은 우리에게 교육은 있고 스승이 없기 때문인가, 교육이 없기 때문인가. 그들은 되살려야 할 패러다임인가, 시대착오인가. 지금 대학을 채우고 있는 그 많은 교수들은 누구란 말인가.

지난 반세기 ‘스승’은 두 번의 결정적인 의미 변화를 겪는다. 첫 번째 변화는  30년에 걸친 군사정권 시절 ‘스승’에 발생한 심각한 의미론적 모순과 이미지의 추락이다. 학생 데모를 막는 데 동원되는 가련한 설득자, 학생 감시자, 권력의 부나비. 이것이 그 시절 대학을 다닌 사람들의 머리에 박혀있는 교수의 의미이자 이미지다.

그 ‘교수’는 잘못을 잘못이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못을 잘못이라 말하는 자가 되레 잘못이라고 말하는 자, 진실을 말하지 않는 자, 알량한 전문지식과 권위와 교권을 군화에 헌납하고, 그렇게 해서 얻은 떡고물로 한 세월 편하게 건너가고자 했던 자의 이름이다. 교육이 있는 곳에 ‘스승’이 있어야 한다면, 이 시절의 교수는 탐구, 토론, 강의의 자유 위에 성립하는 대학 교육의 실천적 스승이기보다는 ‘스승’의 조롱, 배반, 캐리커쳐에 더 가깝다. 

두 번째 주요 사건은 1990년대 이후, 그러니까 지난 10여 년 사이에 진행된 세계적, 국지적 환경 변화들과 함께 초래된 ‘스승’의 명예퇴장, 혹은 구조조정이다. 오늘날 한국 대학에는 ‘교육’이 있다기보다는 ‘훈련’만 있다. 교육은 없고 훈련만 있어야 하는 곳에 ‘스승’이란 이미 시대착오이고 퇴물이며 잘해야 잉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승’의 실종을 개탄하는 일보다는 우리에게 아직도 ‘스승’이 필요한가라는 질문과 정면으로 만나는 일이다.

대학 교육 자체가 바뀐 마당에 ‘스승’이 필요한가. 스승 같은 건 없어도 되는 곳에 스승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소리인가.
그렇다. 이 질문을 숙고하는 데서부터 스승의 상을 말하는 작업은 시작돼야 한다. 스승이란 누구인가.
세상에 대한 바른 관점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그런 노력의 중요함을 가르치는 자, 경험과 지식과 상상력을 부단히 결합하고 관용의 정신을 유지하면서도 진실 앞에 자신을 세우는 자, 좁은 이해관계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공정한 정신의 소유자, 인간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것에의 감각을 전달하는 자, 그가 지식행상 아닌 ‘스승’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교육이 있어야 하는 곳이라면 이런 스승은 필요하다. “우리가 위대한 인간 앞에 앉았을 때에만 교육은 발생한다.” 탈무드의 한 구절이다.  

도정일 / 논설위원·경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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