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시즌 그리고 이승우
노벨 문학상 시즌 그리고 이승우
  •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 승인 2017.11.0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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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해마다 10월 첫째 주가 되면 어김없이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를 두고 언론은 기대와 희망을 섞어 국내의 몇몇 작가들을 후보군으로 언급한다. 그들 중에 아직 수상자가 없는 것을 보면 예측 자체가 잘못됐거나 처음부터 예측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작가 모디아노나 르 클레지오는 시기는 몰라도 어느 정도 수상이 점쳐졌던 작가이지만 밥 딜런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고 올해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그의 대중적인 인지도가 오히려 예상을 어렵게 만들었던 작가다. 나도 개인적인 기준과 기대감을 뒤섞어 우리 작가들 중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예측해보면 소설가 ‘이승우’를 꼽고 싶다. 르 클레지오도 이승우를 최초의 한국인 수상자로 예측했다고 하니 단지 팬心의 발로만은 아닌 듯싶다.

이승우가 서구문학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는 일정한 근거가 있다. 그의 소설이 실제 프랑스에서 번역 소개돼 일반 독자는 물론 비평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고, 『식물들의 사생활』의 경우 갈리마르 출판사의 폴리오 문학 문고에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유럽에 번역 소개된 아시아 작가로 알려지는 정도를 뛰어넘어 그의 작품은 독자들이 접하는 일상의 문학이 된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승우 소설의 경우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논리적이고 정서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문학이 해외에 소개되기 위해서는 번역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장의 특성은 원문의 의미 전달에 있어 용이성을 담보한다고 하겠다. 뛰어난 작가적 상상력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이 식물로 태어나고 남천이라는 바닷가에 서있는 야자나무가 밤새 태평양을 건너 고향에 다녀온다는 ‘식물적 상상력’은 우리문학에서 흔히 찾아보기 어려운 발상이다.

지난 여름 끝 무렵에 출간된 신작 소설집 『모르는 사람』(문학동네 刊)은 이승우 소설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들로 이뤄져 있다. 집요하게 의미를 탐색하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문장, 익명의 등장인물과 가상의 도시, 일상적이지 않은 가족 관계 등은 매번 반복된다는 점에서 식상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작품의 특징을 담보하는 일종의 장치들이다. 독자들은 그의 작품에서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존재 방식에 주목하게 된다. 이승우의 소설에서 아버지는 대개 이미 죽었거나 다른 곳에 있고 혹은 존재하면서 부재하는 인물로 나타난다. 그야말로 아버지는 ‘모르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존재가 드러나거나 폭로되는 방식은 독자들을 더욱 당황스럽게 만든다. 여배우와 ‘연애질’을 하러 해외에 함께 떠났다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던 아버지가 실은 아프리카 선교 중에 순교했다는 전언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어머니 혹은 삼촌이 어느 날 등장인물을 모르는 사람의 무덤에 데려가더니, “인사드려라. 이곳에 계신 분이 네 아버지시다. 네 아버지는 정보기관의 요원이셨다”라고 하는 대목에 이르러서 독자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소설의 개연성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회의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승우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더 한 말도 지어내고 비현실적인 상황도 주저하지 않고 끌어낸다. 소설은 개연성 있는 허구라고 믿는 독자들의 믿음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지갑에 손을 댄 잘못을 들킬까 두려워하여 차라리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기대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실현된 것과(『오래된 일기』), 어머니가 고급식당의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정보기관 요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연이(『식물들의 사생활』) 도대체 현실에서 있을법한 이야기인가? 하기야 사르트르의 「벽」에서도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사형수가 던진 ‘아무 말’에 가까운 거짓말이 실제가 되고, 투르니에의 『마왕』에서도 주인공 티포주가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 큰일이 일어나기를 바랐더니 전쟁이 일어나는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말하자면 소설에서의 개연성은 의도적으로도 얼마든지 위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아르마 건양대 교수
박아르마 건양대 교수

중요한 것은 이승우는 무엇을 위해서 허구의 한계를 뛰어넘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느냐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에서 실종된 아버지가 아프리카 선교 중에 순교했다고 말한 것은 아버지가 원치 않았던 일에서 벗어나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사실을, 『식물들의 사생활』에서 어머니가 요원의 아이를 가졌다고 말한 것은 아버지가 그런 여자를 아내로 받아들이고 사랑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현실의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 바로 이승우의 힘이다.

우리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결과적으로 이승우의 소설을 높게만 평가하는 글이 되고 말았다. 중요한 것은 작가는 끊임없이 글을 써야 하고 우리사회는 ‘읽을거리’가 아닌 ‘문학’을 소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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