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 이후 아우라의 귀환과 복원 … ‘비판적 감성학’은 숙제로 남아
몰락 이후 아우라의 귀환과 복원 … ‘비판적 감성학’은 숙제로 남아
  • 심혜련 전북대·과학과
  • 승인 2017.11.0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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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아우라의 진화: 현대 문화 예술에서 아우라의 지형도 그리기』, 심혜련 지음 | 이학사 | 326쪽 | 18,000원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나는 감성학(Aisthetik)이라는 도구를 가져왔다. 감성학적 관점에서 아우라를 감성적 지각(Aisthesis)’라고 규정하고, 아우라의 진화 과정을 살펴 본 것이다. 아우라는 대상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느낌 또는 분위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대상을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느낌이기도 하다. 수용자가 어떤 경우에 무엇에서 아우라를 느끼는가가 중요하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이 아우라(Aura)의 몰락을 선언한 이후, 역설적으로 아우라는 매우 아우라적인 개념이 됐다. 그가 몰락을 선언한 아우라는 여전히 그와 그의 철학을 감싸고 있다. 그는 기술 복제 시대의 새로운 예술을 특징을 아우라의 몰락으로 규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자신의 예술철학을 전개했다. 그 이후, 디지털 매체 시대를 거쳐 포스트 디지털 시대의 특징이 논의되고, 또 이 시대의 새로운 예술의 특징과 운명이 논의되는 지금, 아우라를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때로는 몰락이라는 이름으로, 또 때로는 잔존 그리고 또 때로는 귀환과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아우라에 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아우라의 현실성(Aktualität der Aura)’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연구하고자 했다.

본래 종교적 개념이었던 아우라는 벤야민에 의해서 학문·비평적 개념이 되면서 세속화됐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세속화된 아우라는 최근 대중화라는 또 다른 세속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벤야민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도 또 언제부터 아우라라는 개념이 일상적으로 사용됐는지 그리고 그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해도 아우라라는 개념을 사용해봤거나 또는 최소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학문적 또는 문화예술 비평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와 관련된 많은 글들과 프로그램 등에서 아우라라는 개념을 흔히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우라는 일종의 트렌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철학의 역사를 보았을 때, 추상적인 철학적 개념이 이렇게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현상 또한 아우라의 현실성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연구하고자 했다.

 

아우라를 중심으로 문화예술 읽기

아우라의 몰락 이후, 아우라를 둘러싼 문화예술적 상황은 매우 극적으로 변화했고, 또 여전히 변화하는 중에 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아우라는 벤야민이 말하고자 했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이해되기도 했고, 때로는 비판 또는 지지를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몰락했다고 하는 아우라를 의도적으로 복원하기도 하고, 이를 극대화시키기도 했다. 다양한 의도로 또 다양한 방법으로 아우라를 재아우라화하려는 시도들이 여전히 존재하며, 이와는 반대로 탈아우라를 지향하는 시도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나는 아우라를 둘러싼 이러한 문화예술적 상황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상황들 속에 숨겨진 의도들 또한 동시에 읽어야할 필요도 있었다. 여기서 문제는 단지 아우라만은 아니다. 그래서 아우라를 중심으로 해서 지금의 문화예술을 읽으려고 시도한 것이다.

이러한 아우라의 현실성이라는 상황에서 나는 굳이 본래적 의미의 아우라만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대중화라는 이름으로 세속화된 아우라를 억지로 탈세속화시키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철학적 개념을 굳이 다시 어렵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록 때로는 오해된 채 사용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렇게 사용되는 것 또한 아우라의 운명이며, 아우라의 변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또한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철학적 개념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본래 어떤 뜻이었는지는 밝혀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고, 또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현재 어떤 상황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도는 밝혀줄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나는 문화예술적 상황에서 사용되는 아우라가 어떤 맥락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세분화해서 살펴보고자 했던 것이다.

모든 문화예술적 상황을 다룰 수 없기에 몇몇 상황들을 선별했다. 그 기준은 특히 아우라의 몰락, 잔존 그리고 귀환과 복원을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들을 선별했다. 그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나는 감성학(Aisthetik)이라는 도구를 가져왔다. 감성학적 관점에서 아우라를 감성적 지각(Aisthesis)’라고 규정하고, 아우라의 진화 과정을 살펴 본 것이다. 아우라는 대상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느낌 또는 분위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대상을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느낌이기도 하다. 수용자가 어떤 경우에 무엇에서 아우라를 느끼는가가 중요하다. 감성, 느낌 그리고 지각 작용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기 위해서 감성학을 요청한 것이다.

 

감성학적 관점과 감성적 지각

감성학은 감성적 지각에 관한 학문이자 동시에 또 다른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미학으로서의 감성학은 무엇보다도 감성과 지각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이를 중심으로 아우라를 해석하고, 그 결과물을 가지고 현대 문화예술 읽기를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감성학을 단지 이런 이유 때문에 끌어들인 것은 아니다. 감성적 지각으로서의 아우라를 규정함과 동시에 감성학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한국사회가 감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꼭 학문적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단순히 감성에 대한 요청으로 받아들여도 상관없다. 감정의 과잉 또는 탈감정이라는 현상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고, 또 타인에 대한 무관심 또는 타인에 대한 비정상적인 관심이라는 현상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지금, 이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감성을 중심으로 타자에 대한 인정, 배려 그리고 공감이 무엇인지 성찰할 때인 것이다.

아쉽게도 이 책에서 나는 감성학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전개하지 못했다. 사실 감성학은 최근 매우 주목받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감성적 지각에 관한 연구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연구는 단일한 학문 영역이 아니라, 다양한 그리고 약간은 상이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분과들이 함께 연구를 해야 한다. 인간의 감성과 지각에 대한 모든 접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감성적 지각이라는 이름으로 연구할 수 있는 것도 많다. 물론 나도 이 책에서 아우라뿐만 아니라, 두려운 낯섦, 푼크툼 그리고 숭고 등도 감성적 지각이라는 틀 안에서 분석을 시도했지만, 이는 감성적 지각에 대한 아주 일부라고 생각한다. 이미지 수용과 관련해서도 스펙터클과 센세이션 등을 중심으로 감성적 지각에 대해 접근해야 하며, 감정을 둘러싼 극단적인 현상들에 대해서도 비판적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공감의 부재가 논의되는 지금, 이에 대해 반성하며 비판할 수 있는 출발점이 마련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통해 비판적 감성학이 형성될 수 있다고 보며, 또 그래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미처 이 작업을 하지 못했다. 이 부분은 또 다른 다음의 연구과제로 남겨두고 말았다. 다음에는 비판적 감성학을 연구하면서, 다양한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과 함께 이에 대해 논의하면서, 이를 발전시켰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 본다.

 

 

심혜련 전북대·과학과

필자는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에서 벤야민의 매체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20세기의 매체철학: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미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볼프강 벨슈의 미학의 경계를 넘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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