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畵연구로 세계와 만나다
民畵연구로 세계와 만나다
  • 정병모 경주대·문화재학과
  • 승인 2017.11.0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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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정병모 경주대·문화재학과

한국미술사에 입문하여 첫 번째 내세운 나의 연구주제는 김홍도와 신윤복과 같은 조선후기 풍속화다. 우리 그림의 “통속성”이란 화두에 이끌려 시작한 연구는 석사와 박사학위 논문을 거쳐 2000년 『한국의 풍속화』란 책으로 첫 결실을 거뒀다. 그 책의 머리글에서 밝혔듯이, 통속성이란 측면에서 우리 그림을 봤을 때 풍속화, 민화, 판화의 세 장르가 나의 연구과제가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풍속화 다음으로 민화로 그 연구대상이 옮겨갔다.

그런데 정작 민화의 분야로 와보니, 민화는 단순히 풍속화의 다음 역이 아니었다. 민화는 풍속화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학문이었다. 풍속화가 박제된 생선이라면, 민화는 생물이었다. 민화는 풍속화처럼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학문이었다. 민화는 나를 연구실의 책상에서 벗어나 매우 실제적이고 역동적인 활동을 요구했다. 학문의 목표도 개인의 연구 실적에서 벗어나 “민화의 대중화와 세계화”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하게 되었다. 민화가 세계적으로도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을 널리 세상에 알려야한다는 사명감까지 갖게 됐다. 연구 활동과 더불어 뜨겁게 살아 있는 민화 현장과 소통도 중요한 일중의 하나가 됐다.  박물관에서 민화 전시회를 기획하고, 민화 전시회 평을 쓰고, 한국민화학회와 한국민화센터라는 학회 및 연구기관도 만들었다. 외국에서 활동도 늘어났다. 외국 대학이나 박물관에서 민화강의를 하고, 민화이벤트를 벌였고, 민화전시회를 열었다. 필자는 풍속화와 다른 ‘실학’을 나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민화의 연구를 시작하면서 첫 번째 벌인 행사는 2005년 9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반갑다 우리민화」전이었다. 일본에 있는 우리 민화 명품을 가져다 우리나라에 소개한 전시회였다. 일본에서는 일찍이 우리 민화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주목해 1975년과 1982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의 대표적인 출판사인 고댠샤에서 『이조의 민화』라는 명품도록을 발간한 바 있다. 필자가 민화가 뭔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시절, 일본에서는 고급도록을 만들 정도로 우리보다 앞서 갔으니, 그들의 앞선 안목에 놀라울 따름이다.

필자에게 찾아온 또 다른 전시회는 작년 예술의전당 서예미술관에서 열린 「문자도책거리전」이다. 이 전시회는 매스컴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책거리’란 주제로 미국 순회전으로 확대됐다. 작년 9월부터 올해 11월까지 뉴욕주립대 찰스왕센터, 캔자스대 스펜서미술관을 거쳐 클리브랜드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필자와 김성림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가 함께 기획한 미국 책거리전은 『한국의 채색화』 도록을 인연으로 후원을 받은 덕분에 실행 가능했다.

우리는 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명제를 추호의 의심도 없이 되뇐다.  이는 괴테가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한 말을 우리식으로 바꾼 것이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이 말대로 적용되지 않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장 한국적인 것은 호기심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것을 좋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책 그림은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16세기 유럽에 유행하고 17세기 예수회선교사들에 의해 중국에 전래된 것이 18세기 조선으로 건너온 것이다. ‘책의 실크로드’라고 부를 수 있는 국제적인 문화전래를 통해 들어와서 조선에서 200여 년간 왕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한 발전한 그림이 책거리다. 보편성과 특수성을 갖춘 우리 회화로는 책거리가 딱 적격이다. 

아울러 책거리는 그동안 서양에 그리 알려지지 않은 ‘뉴 브랜드’다. 기존에 알려진 한국회화와 전혀 다른 양상의 그림이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이 보이는 대체적인 반응은 한국에도 이런 책그림이 있었냐는 의문이자 놀라움이다. 한국화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스테레오 타입이 있다. 나지막한 산이 전개되고, 그 아래 물이 흐르고, 소나무 아래 선비가 노니는 그러한 그림이다. 그런데 책거리는 이런 우리의 통념을 통째로 뒤흔들어 놓았다. 서재가 있고 책이 쌓여 있으며 도자기, 청동기 등 진귀한 물건이 가득하다. 더욱이 서양화처럼 입체적이고 깊이 있게 표현된 그림도 있는 반면, 추상적이면서 미묘하게 한국적인 구성을 보여주는 그림도 있다. 일단 서양인들이 좋아하는 서재인데다 서양화법으로 그려져서 서양인들이 익숙한 데다 뭔가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물건들로 가득한 그림인 것이다.

올 4월에는 캔자스대 스펜서미술관에서 열린 책거리 전시회 때에는 캔자스대 미술사학과 주최로 책거리 국제세미나가 열렸다. 이 세미나에는 세계적인 서양미술사, 동양미술사, 한국미술사 학자 14인 참여해 뜨거운 논쟁을 펼쳤다. 세계화는 근본적으로 소통이란 사실을 경험한 이벤트였다. 책거리에 대해 여러 분야의 학자, 평론가, 큐레이터, 딜러 등의 반응을 들으며, 우리 민화의 세계화 가능성을 모색할 기회를 가졌다.  

미국의 유명한 미술평론가가 미국 책거리 전의 평을 클리블랜드 신문에 실었고,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는 이 전시회 평을 신문 전면에 다뤘으며, 아시아미술에 관한 세계적인 학술잡지인 <Orientations>에서는 전문가의 평문을 9페이지에 걸쳐 소개했다. 클리블랜드미술관 책거리전 오프닝 때 만났던 세계적인 딜러 한 분이 필자에게 다가와 이런 말을 건넸다.

“아니, 외국박물관의 큐레이터들이 책거리를 구해달라고 난리인데, 도대체 정 교수가 무슨 일을 한 거야?” 

 


정병모 경주대·문화재학과

동국대에서 미술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민화학회 회장, 한국민화센터 이사장,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풍속화』, 『민화, 가장 대중적인 그리고 한국적인』, 『무명화가들의 반란 민화』, 『한국의 채색화』, 『민화는민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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