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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표 한자자전, 디지털 조판으로 새롭게 탄생
일제강점기 대표 한자자전, 디지털 조판으로 새롭게 탄생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10.30 2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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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한국역대한자자전총서’ 16책 출간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소장 하영삼)가 현대 이전(1945년)까지의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때 편찬된 대표 한자자전 12종 16책을 표점·교감을 거친 전자배판 ‘한국역대한자자전총서’(도서출판3)로 출판했다. 크라운판으로 총 1만4천500쪽 분량이다. 하영삼 소장은 이에 대해 “한국 최초로 이뤄진 업적”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현대 이전까지 한국의 주요 문자로 기능했던 한자, 그리고 이들의 독음과 의미를 찾도록 한 한자사전 즉 玉篇은 한자는 물론 우리 어휘와 국어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자료가 고서 형태로 흩어져 있고 전산화되지 못해 관련 연구에 충분히 활용되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한자연구소는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고 국어 연구의 기초자료를 제공하고자, 조선시대의 대표적 한자자전인 『전운옥편』을 비롯해 일제강점기에 편찬된 『국한문신옥편』, 『한선문신옥편』, 『증보자전대해』, 『자전석요』 등 대표적 자전 12종을 선별해 校勘과 標點을 거친 전자 배판본을 시도했다(표 참조). 특히 독음색인과 총획색인 및 한어병음색인 등 3종의 색인을 탑재해 한국 독자뿐만 아니라 중국어권 독자들까지 염두에 뒀다.

이번 출간된 방대한 양의 ‘한국역대자전총서’는 한국 한자의 변천과 고유성 연구는 물론 한자어의 의미변천과 생성 소멸 과정, 국어 표기법의 변천, 한자 독음 변천 양상, 근대기의 신조어, 의학 관련 전문용어 등의 연구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는 이들 자료의 통합검색 시스템을 구축 중이며 곧 서비스할 예정인데, 그렇게 되면 국어와 한자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이번 작업은 한국연구재단과 한국학진흥사업단의 관련 기초토대연구 지원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두 국가기관의 지원에 힘입어 기초 연구가 가능했고,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이뤄졌다. 중국 측의 도움도 컸다. 중국 최초의 한자관련 국가중점연구소인 화동사범대학(ECNU) ‘중국문자연구와 응용센터’(소장 臧克和), 상해교통대학 ‘해외한자문화연구센터’(소장 王平) 등의 도움이 지렛대가 됐다. 하 소장은 “『설문해자』를 비롯한 중국 한자 자료의 전산화를 처음 시작했던 그들은 그간의 축적된 노하우와 관련 자료들을 조건 없이 제공해 줬다”고 고마워했다.

국어와 한자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 마련

字典의 전산화와 이들 자료의 인터넷 서비스를 겨냥해 시작한 이 작업에 소요된 시간은 6년이다. 하 소장은 “이화범 전임 소장, 왕평 교수, 나윤기, 김억섭, 김영경, 곽현숙, 나도원 등 전임연구원과 대학원과 학부의 연구보조원들은 이 작업에 직접 참여하면서 인고의 날들을 보냈다”며 이들에게 공을 돌렸다.

물론 걸림돌도 많았다. 첫째, 대상 자료들이 이미 ‘고서’라 판본 확보가 쉽지 않았다. 하 소장은 “특히 일제 강점기의 자전은 상상 이상이었다. 웬만한 집이면 구비해 가장 흔했을 듯한 ‘옥편’들이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았는데, 국립중앙도서관에서조차 제대로 구비되지 않았음은 물론, 목록조차 정리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한다. 둘째, 한자의 전산화 작업이라 어떤 다른 작업보다 그 자체가 ‘막노동’에 가까웠다. 각종 글자체의 차이, 異體字, 僻字, 일본어까지 섞여 있고, 활판 인쇄가 막 시작된 때의 근대시기 자전은 오탈자도 수두룩하다. “한자학을 전공한 박사급 이상의 정예 연구자가 직접 몸으로 뛰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 한계의 실험장이었다”라고 하 소장은 털어놨다. 

그러나 역시 가장 힘든 건 학계의 시선이었다. 하 소장은 “이런 작업을 정말로 ‘막노동’으로만 봐 주는 학계와 사회의 현실”을 가장 큰 걸림돌로 꼽았다. 교감을 거친 사전의 전산화와 출판은 책 한 권만 해도 몇 년이 걸리는데, 학계에서는 자신 이외는 한 번도 인용되지 않는 논문 한 편보다 실적 인정을 받지 못한다. 몇 분이면 찾는 자료를 모아 잘 얽은 글 한 편의 대접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뼈저리게 재확인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사전의 색인만 잘 만들어도 학술 저작 이상의 대접을 받는다. 중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풍토니 출판도 쉽지 않다. 학계는 물론 도서관조차도 푸대접 할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 소장은 이번 작업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이들 자료를 중국과 일본 및 베트남 등지의 한자자전과 연계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한자 문화권 속에서 한자의 파생과 변천 및 창조 등의 맥락을 거시적으로, 통시적으로 살필 수 있게 되어 한자문화권의 공통 문화 기초 연구와 논의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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