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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 덕분에 ‘문화대혁명’ 禁書조치 비껴간 名著…여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 제시
모택동 덕분에 ‘문화대혁명’ 禁書조치 비껴간 名著…여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 제시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7.10.30 2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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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_ 제29강 최용철 고려대 교수의 「『홍루몽』과 변혁의 중국」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의 2017년 강연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이 강연 4섹션 ‘문학’ 영역으로 이동했다.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 강연은 34강에 걸쳐 새로운 시대로 도약을 가능케 한 역사적 인물 혹은 작품을 선정해 혁신적 사유를 조명해보는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의 네 번째 강연 시리즈다. 두 번째 ‘문학’ 강연을 맡은 최용철 고려대 교수(중어중문학과)의 제29강 「『홍루몽』과 변혁의 중국」 발표문 일부를 요약 발췌했다.

정리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 최용철 고려대 교수(중어중문학과). 사진제공=네이버 문화재단
▲ 최용철 고려대 교수(중어중문학과). 사진제공=네이버 문화재단

『홍루몽』은 어떤 책인가. 무엇을 노래하고 어떤 사람을 그려낸 책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여성을 그리고 노래하는 책이다. 그들의 사랑과 꿈을 노래했다. 『홍루몽』보다 앞서 나온 『수호전』이나 『금병매』에서는 여성을 비하하고 또한 결말을 더욱 비참하게 묘사했다. 등장하는 여성들은 하나같이 남성을 유혹해 대사를 그르치도록 하고 남성의 앞길을 막는 음란하고 악독한 여자로만 그려내고 있다. 반금련이 무송을 살인자로 만들고, 염파석이 송강을 살인자로 만들어 결국 양산박으로 입산하게 하는 동기를 제공했다. 서문경의 포악한 행동이나 재물을 후리는 모리배적인 성격도 물론 문제이지만 반금련과 이병아와 춘매는 모두 음란한 악녀의 대표들이었다.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처럼 전통 사상의 좁은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다. 역사상 등장하는 수많은 여자 중에는 나라를 망치고 남자를 패망에 이르게 한 인물이 많다. 달기와 포사는 은나라와 서주를 망하게 했고 우희는 力拔山氣蓋世의 초패왕을 허망하게 무너지게 했다고 기록했다. 나라가 망하고 영웅이 패한 것을 한 여성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다

미인박명의 여성관

그러나 『홍루몽』에서의 여성관은 달랐다. 여성은 거칠고 험악한 남성 사회에서 핍박받는 희생자라는 것이다. 미인은 박명이라는 입장에서 무한한 연민과 동정의 눈길로 아름답고 재주있는 여성을 노래하고 있다. 작자는 노골적으로 천명했다. 규중에서 진솔한 삶을 치열하게 살았던 수많은 여성들의 재주와 덕성을 밝혀내겠다는 것이었다. 조설근의 경험이 십분 발휘된 듯 하지만 기본으로 여성의 才德에 대한 최대한의 긍정과 칭송이었다.

『홍루몽』은 『갑술본』 범례에서 이 책의 이름이 많지만 ‘홍루몽’이 그 총체적인 이름이라고 했다. 사실이 그러하다. ‘홍루의 꿈’으로 번역되는 그 이름은 과연 이 소설의 방대한 내용을 아우르는 상징적인 제목으로 적절하다. 부귀영화를 누리는 고대광실의 집을 홍루라고 할 수 있고 또 귀족 여성들이 살고 있는 규중의 방을 홍루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부귀영화의 여성의 삶이 모두 허망한 꿈으로 스러지고 만다는 의미는 전체 작품의 표제로 내세울 만할 것이다. 『홍루몽』 제5회에 가보옥이 꿈꾸는 태허환경 속에서 경환선녀는 가보옥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선녀들로 하여금 ‘홍루몽십이곡’을 연주해 들려준다. 바로 이 대목이 『홍루몽』의 제목을 유추하는 결정적인 대목이 될 것이다. 영어 제목으로 서양에서는 주로 ‘The Dream of the Red Chamber’라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홍루의 실질적 의미가 작은 누각이 아니라 거대한 저택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A Dream of Red Mansions’라고 번역하고 있다.

20세기 현대사에서 『홍루몽』은 중국 문화의 상징으로 주목받았다. 신문학 운동의 기수인 호적의 『홍루몽고증』이 기폭제가 됐다. 그러나 신중국에서 『홍루몽』은 정치 운동의 수단으로 변질됐다. 신중국 성립 직전에 북경대 총장으로 있던 호적이 대륙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을 하자 대륙에서는 호적 비판 운동이 전개됐다. 당시 모택동의 신중국이 성립됐지만 지식인 계층에는 여전히 호적으로부터 받은 자유주의 학술 사상의 영향이 지대한 상황이었다. 공산당 지도자들은 새로운 사회주의 신중국의 건설에 걸림돌이 되는 호적의 사상과 학술을 철저히 부정하고자 운동을 일으켰다.

정치 사건으로 변질된 홍학 연구

1954년의 『홍루몽연구』 사건은 홍학사에서는 물론 중국 인문학 사상 정치의 학술 간섭과 학술 연구의 정치경향화를 더욱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모택동의 의도는 분명했다. 5·4 운동은 전통적인 고전 문화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 운동이었지만 보수적 권위를 말살하고 새로운 세대의 자유주의를 적극 옹호하는 문화 운동이었다. 호적과 노신이 바로 그 기수였다. 그중에서 호적은 미국의 정치 체제와 민주 제도를 신봉하면서 중국의 학술과 문화의 새로운 혁신에 30여 년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제 모택동은 사회주의 신중국의 건설에 있어서 호적의 사상을 가장 큰 장애물로 여겼다. 그는 청년 학자의 연구 논문을 이용해 호적의 학술사항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는 유평백을 비판하게 했으며 이어서 본격적으로 호적의 사상과 문화의 흔적을 지우려는 목표를 실천에 옮기고자 했다. 『홍루몽』은 바로 가장 상징적인 고전문학 작품이었다.

1966년 문화대혁명을 발동한 중국은 대대적인 고전 비판 운동을 시작했다. 예를 들면 사대명저에 대해 각각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해 『삼국지연의』에 나타나는 권모술수와 사기성 농후한 전술에 대한 비판, 『수호전』에 나타나는 불법과 부정을 자행하는 인물들에 대한 비판투항주의에 대한 비판, 『서유기』의 불교나 도교의 황당한 신들에 대한 비판, 『홍루몽』에서 나오는 가족 간의 불륜과 음행에 대한 비판 등을 들 수 있다. 본래 사대기서의 하나인 『금병매』는 제외되고 『홍루몽』을 넣어 사대명저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말하면 당시 대부분의 고전 명저들이 금서가 된 마당에 모택동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홍루몽』만은 액운을 면하고 널리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됐다. 모택동은 가보옥이나 임대옥과 같은 인물을 좋은 인물 계열로 보고 가모와 가정, 왕희봉과 같은 인물을 나쁜 인물의 계파를 보면서 가보옥을 중국 역사상 제일의 혁명가라고까지 칭송했다.

모택동이 『홍루몽』을 다섯 번은 읽어야 한다는 말은 후에 許世友와의 대화에서도 나온다. 이러한 에피소드는 중국인들은 물론 외국에도 널리 알려져 『홍루몽』의 성가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소설을 보는 관점은 정치적 왜곡을 거쳐 순수문학과 학술에 대한 정치적 간섭의 나쁜 선례를 남겨 오랜 악영향을 끼치게 됐다.

상술에 짓밟히는 순정한 감성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의 시기가 도래하자 마침내 그동안 엄두를 내지 못하던 학술계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돼 연구소가 설립되고 학회가 결성됐다. 특히 중국예술연구원에 조설근과 『홍루몽』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홍루몽연구소’가 설립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1979년 설립된 본 연구소는 본래 문화부 산하 ‘홍루몽 校注 小組’였다. 본래 맡아왔던 『홍루몽』의 교주 작업은 『경진본(庚辰本)』을 저본으로 해 신교주본으로 완성돼 1982년 인민문학출판사에서 간행됐다. 일찍이 1927년 호적의 추천으로 시작된 『정을본』 저본의 교감본 시대를 50여 년 만에 마감하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소에서는 또 수많은 전문가를 동원해 『홍루몽대사전』을 편찬했다. 기존에 일부 사전류 편찬이 있었지만 종합적이고 가장 방대한 전문 사전으로 자리매김했다. 본 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사업의 하나는 전문 학술지 『홍루몽학간』을 정기 발행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계간으로, 근년에는 격월간으로 나오는데 중국 최고의 홍학 연구의 권위를 갖고 있으며 오늘날 여전히 홍학 연구의 붐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에서는 중국 문화의 재현 붐에 힘입어 『홍루몽』을 이용한 다양한 돈벌이가 한창이다. 우리가 생각하면 너무나 놀라울 만큼의 아이디어를 총동원해 문화의 이름 아래 돈을 향한 현대인들의 저속한 집념이 뜻있는 많은 사람들을 질리게 한다.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고 고전 문화를 활성화시킨다는 미명을 버젓이 내세우는 문화 상인들의 상술에 가보옥과 임대옥의 순정한 감성이 여지없이 짓밟히는 듯싶어서 안타까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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