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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중심적인 신화가 낳는 유혹적인 권력
미디어 중심적인 신화가 낳는 유혹적인 권력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7.10.30 2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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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야기]_ 인터넷을 타고 몰려 온 소셜 미디어의 명암은?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해져버린 인터넷을 소환한 이들이 있다. 런던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의 세 교수(제임스 커런, 내털리 펜튼, 데스 프리드먼)는 공동 집필한 『인터넷, 신화를 넘어 공공성으로』(컬처룩, 2017.10)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인터넷이라는 신생 기술의 파도를 타고 몰려든 소셜 미디어들이 일반 시민의 활동 영역은 물론 미디어 환경의 변화까지 끌어내고 있다고 경고한다. 소셜 미디어가 지니는 명암을 지적한 대목을 발췌했다.

정리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디지털 미디어, 특히 인터넷은 우리의 정보 수집 및 소통 양식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창의적인 생산 활동을 통해서 이 두 실천 영역은 더욱 발전하고 있다. 정보 관점에서 보면 인터넷은 분명히 ‘보통’ 시민들이나 자원이 부족한 사회와 정치적 집단들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들에 관해 이용 가능한 정보를 광범하게 확보하고 있으므로 모든 인터넷 이용자들의 정보 획득 및 전문 능력에 영향을 미칠 잠재력을 지닌다. 소통의 관점에서 보면,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웨이보 같은 사이트들은 매우 짧은 기간에 주로 ‘입소문’을 통해, 혹은 적어도 온라인 접속으로 이뤄지는 수백만 개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수십억 명의 이용자들을 끌어 모았다. 이들은 타인과 연결하고 생각을 공유하고 사안에 대해 토론하며, 호혜적인 관심사와 활동을 나누면서 집단을 형성하고 힘을 연대한다.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는 전통적으로 구분됐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를 해체하고 이용자의 손에 권력을 안겨 준다. 그 결과 우리의 내밀한 사적 사안이 공적으로 조망되는 한편, 제도 정치 및 기관 부문을 포함하는 공적 영역을 사적 시민들이 훨씬 쉽게 감시할 수 있도록 한다. 이리하여 소셜 네트워크 활동은 공중을 위한 공중에 의한 소통의 도구를 창출했다고 평가된다. 이 입장의 이론가들은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나 개인 대 개인, 대중적 자아 커뮤니케이션이 기존의 사회적 연결망을 유지하고 공통의 관심 및 정치적 관점과 행동을 바탕으로 낯선 이들이 새롭게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식의 긍정적인 해석을 제시한다. 이렇게 본다면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는 새롭고 침투력이 강하며 유익한 행위자다.

반면에 현재 진행되는 커뮤니케이션의 형식과 속성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 존재한다. 이 시각에서 소셜 네트워크 활동은 공적인 사안을 개인화하고 탈정치화하며 온라인 마케팅, 비즈니스 홍보, 개인 정보 착취 등을 일삼는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데이터들을 제공함으로써 기존의 뿌리 깊은 불평등을 재강화하는 ‘데일리 미’(개인의 취향대로 선별된 뉴스를 자동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의 또 다른 형태에 불과하다고 간주한다. 이는 시민적 사유주의를 추구하는 반민주적 전환 양상의 일종에 불과하다고 설명된다. 이 입장은 정치경제학적인 관점을 강조하며, 인터넷은 지구적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지지하는 기업적 이해관계와 자본주의 및 신자유주의 담론에 대중을 매몰시키는 방식으로 자본주의에 깊이 개입한다고 주장한다.

2014년 페이스북의 연 매출액은 120억 4600만 달러였고 1사분기 광고 수익은 35억 9400만 달러(이는 미국 디지털 광고 시장의 7.6%에 해당한다)였다. 트위터의 연 매출액은 14억 300만 달러였고, 1사분기 광고 수익은 4억 3200만 달러였다. 이런 식으로 소셜 네트워크 활동은 매우 상업화되는 동시에 사회적 관계 증식에 기여하는 매개 형식을 더욱 촉진시키다고 평가된다. 한편 이러한 플랫폼에서 형성된 사회성은 기업들이 우리의 개인 정보에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고 이용자들이 자기 홍보를 내세우는 사회성을 추구하도록 부채질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달리 말해, 소셜 미디어가 개인화된 사회 정치적 맥락 안에 존재하고 항상적인 커뮤니케이션과 온라인 접속을 부추기는 발전된 기술 환경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서구 선진 민주 국가들에서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기보다는 그것을 확장한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논의는 줄곧 긍정주의자와 비관주의자가 대립하는 척박한 이분법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서로 분리된 두 갈래의 접근 방식은 모두(기술에 대한 관계에서든, 정치경제학적인 요인에 관련해서든) 환원주의적이며 막상 그들이 궁극적으로 논하고자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그 결과 각 접근 방식은 미디어의 성격과 그것이 현 사회 및 정치 지형에 미치는 효과를 오해하며, 미디어의 사회·정치적인 속성 및 그에 내재하는 권력의 복잡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이러한 오류는 부분적으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삶을 심층적이고 비판적으로 맥락화하기를 거부하는 미디어 중심주의에 기인한다. 쿨드리가 제안했듯이, (어느 형태이든) 미디어가 자기를 사회의 중심으로 내세우고 우리가 미디어를 기준으로 삼아 생활을 조직하고 일상의 일과 의례들을 행할수록 ‘미디어 중심주의라는 신화’에 빠질 위험이 있다. 미디어 의례는 미디어의 중요성을 강조할 뿐 아니라 ‘미디어 안에’ 있음의 중요성, 그리고 당신이 다른 사람과 메시지를 소통할 수 있음의 중요성(그 중요성이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성취의 그 어느 것이든 간에)을 시사한다. 당신이 권력과 영향력을 크게 지닐수록 메시지 유통에서도 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활동은 이러한 주장을 한 단계 더 상승시킨다.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를 이용하는 무수한 사람들은 무한한 창의적 잠재성을 보유한 매개 사회라는 신화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 안에서 사람들은 주류 미디어보다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에 더 큰 통제력을 가지며 이동적이고 상호 작용적인 삶을 산다고 믿게 된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편재성에 대한 주장은 항시적인 온라인 이용 및 접속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렇듯 미디어 중심적인 신화가 낳는 유혹적인 권력은 사회를 흘러 다니면서 신자유주의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가 재생산되는 현실을 모호하게 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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