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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9년으로부터 전송된 시그널 … 원작 소설에 좀더 접근한 문제의식
2049년으로부터 전송된 시그널 … 원작 소설에 좀더 접근한 문제의식
  • 박명진 중앙대·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7.10.30 2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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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_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절망과 희망의 메시지
K가 고아원 시절의 기억이 깃든 ‘목각인형’ 하단에 새겨진 것과 똑같은 연도 표기를 발견하게 되는 고목나무 둥치. 이 나무와 흩날리는 눈송이의 백색 이미지가 황량한 브라운 이미지와 대조되는 것도 흥미롭다.
K가 고아원 시절의 기억이 깃든 ‘목각인형’ 하단에 새겨진 것과 똑같은 연도 표기를 발견하게 되는 고목나무 둥치. 이 나무와 흩날리는 눈송이의 백색 이미지가 황량한 브라운 이미지와 대조되는 것도 흥미롭다.

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는 개봉 당시 시대를 앞서간 실험으로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차가운 반응을 얻었다. 지나치게 난해한 주제의식과 상징 기법 때문에 이 영화는 이후 디스토피아적 SF영화의 典範으로 추앙받으면서도 쉽게 친해질 수 없는 거북한 타자로 인식됐다. ‘저주 받은 걸작’이라는 별명은 이 영화가 중요한 작품이지만 즐거운 감상의 대상은 아니라는 뜻을 내포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현대철학과 영화 담론에서 끊임없이 소환되며 재해석돼 온 기념비적 문제작임에는 틀림없다. 2019년의 LA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는 감독 특유의 독창적이고 감각적인 미장센과 진지한 주제의식을 통해 미래 사회의 디스토피아적 파국 정서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리고 2017년, 「블레이드 러너」가 발표되고 35년 후 드니 빌뢰브 감독에 의해 새로운 버전이 등장한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이후 「2049」로 표기)는 「블레이드 러너」의 디제시스 시간인 2019년의 30년 이후를 시대 배경으로 잡는다. 두 영화에서 설정한 미래 시간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없다. 1982년과 2017년에 두 감독이 ‘예측할 수 없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통해 인간의 본질에 대해 질문했다는 공통점이 중요하다.

1968년, 1982년 그리고 2017년: 소설과 영화

이 두 편의 영화를 논평하기 위해 원작 소설인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1968)를 꼭 읽을 필요까지는 없다. 영화가 원작 소설의 주요 모티브와 캐릭터와 주제의식을 참조하긴 했지만 결국은 서로 다른 텍스트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사실이야말로 소설과 영화 텍스트만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지점이다. 원작 소설과 각색된 영화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소설과 영화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온전하게 감상하고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 ‘인간/비인간’, ‘현실/비현실’의 두 가지 화두를 중심으로 복잡한 내면세계를 풀어나갔다면,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비인간’의 문제만을 선택하고 여기에 연애 서사를 포함시킴으로써 ‘데커드-레이첼-로이-타이렐’의 4각 관계를 중심으로 한 ‘인간성’의 문제를 짚어나간다. 「2049」는 「블레이드 러너」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에 ‘자아 찾기’와 ‘출생의 비밀’ 서사를 포함시키면서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 동안 「블레이드 러너」에 대한 논의들은 주로 ‘비인간적인 인간/인간적인 리플리컨트(Replicants: 복제인간)’, ‘기억과 인간 정체성’, ‘창조주와 피조물, 또는 아버지-아들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 바 있다. 이는 제어가 불가능할 정도로 발전하는 기계가 미래 사회를 파국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경고하는 ‘기술 혐오주의’적인 SF 영화들과 차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필립 K. 딕의 소설들을 영화화한 「토탈 리콜」, 「페이첵」, 「마이너리티 리포트」, 「임포스터」, 「컨트롤러」 등도 「블레이드 러너」와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성, 기억, 과학, 미래(의 시간성)’에 대한 키워드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영화 가운데 「블레이드 러너」가 가장 선명하게 각인되고 있다면, 그것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실험적인 영화 문법의 시도, 원작의 독창적인 재해석, 미래 사회 풍경의 탁월한 재현 방식 때문일 것이다.

「2049」는 영화가 종합예술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과시한 작품이다. 리들리 스콧의 기획, 드니 빌뇌브의 연출, 로저 디킨스의 촬영, 한스 짐머의 음악 등이 한 데 모인 대작이다. 게다가 영화 「라라랜드」로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은 라이언 고슬링과 「블레이드 러너」의 해리슨 포드 출연까지 더해 제작 이전부터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블레이드 러너」가 인간과 복제인간을 갈등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주제에 주목했다면, 「2049」는 블레이드 러너 ‘K’(라이언 고슬링 분)의 ‘자아 정체성 찾기’라는 내적 성찰과 성장 서사에 집중하고 있다. 미하일 바흐친 식으로 말한다면, 「블레이드 러너」가 ‘데커드-로이-레이첼’ 등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교차 편집한 ‘대화주의적’ 영화였다면, 「2049」는 ‘K’의 시점을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독백주의적’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2049」가 ‘K’를 이야기한 영화라는 점을 말해준다.

자아를 찾아 떠나는 내적 성찰과 성장 서사

「2049」는 오프닝신 자막을 통해 「블레이드 러너」 이후에 벌어진 사건들을 간략하게 소개하지만 이 영화를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한 설명은 아니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 개봉 전에 공개한 3편의 프리퀄(prequel) 영상들을 챙겨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Black Out 2022」, 「2036: Nexus Dawn」, 「2048: Nowhere to Run」 등의 프리퀄은 「2049」의 前史를 다룬다. 첫 영상은 복제인간들이 EMP를 LA 상공에서 폭발시켜 전 지구를 정전 상태로 빠뜨림으로써 지구상에 있는 리플리컨트 관련 자료들을 없애버리는 이야기다. 이 사건 때문에 리플리컨트들을 더 이상 생산하지 못하게 하는 법률이 제정된다. 두 번째 영상은 유전자 복제 식량 개발로 큰 성공을 거둔 사업가 니앤더 월레스(자레드 레토 분)가 정부 관료 앞에서 인간에게 절대 복종하는 신종 복제인간을 소개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마지막 영상은 「2049」의 직전 사건을 다룬다. 사막에 숨어들어 애벌레 농장을 하는 리플리컨드 새퍼(데이브 바티스타 분)가 물건을 팔러 시장에 왔다가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의 정보가 적힌 서류들을 길거리에 흘린 채 도망가는 이야기다. 이 세편 중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Black Out 2022」가 가장 「블레이드 러너」 미장센의 비주얼에 가깝다. 이들 세편의 프리퀄은 「2049」의 서사를 이해하는 프롤로그 역할을 함과 동시에, 리들리 스콧과는 다른 드니 빌뇌브만의 비주얼과 문제의식을 보여주겠다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브라운 톤의 사막, 그 불투명성이 K의 뒷모습과 겹쳐 깊이를 알 수 없는 황량함을 만들어낸다.
브라운 톤의 사막, 그 불투명성이 K의 뒷모습과 겹쳐 깊이를 알 수 없는 황량함을 만들어낸다.

「2049」는 브라운 톤의 사막과 하늘과 도시 풍경으로 프레임을 채움으로써 낙진이 쌓인 대지와 폐허의 도시를 제시한다. 가끔 비가 내리는 장면도 있지만 눈이 내리는 장면도 적지 않다. 따라서 「2049」는 「블레이드 러너」에 비해서 보다 건조하고 비인간적이며 황량한 이미지로 가득 차있다. ‘K’는 경찰용 ‘호버카(Hover Car)’로 공중 이동 중에도, 황폐한 공간에 홀로 서 있을 때에도 누런색의 방사능 미세 먼지 속에 갇혀 있다. ‘K’는 원작 소설에 묘사된 “방사능 미세먼지가 섞여 회색을 띤, 햇빛마저 흐리게 만드는 아침 공기”, “이전에도 늘 그랬던 것처럼 우중충한 갈색의 언덕, 우중충한 갈색의 하늘로 이루어진 풍경” 속에서 방황한다. 이러한 설정은 「2049」가 「블레이드 러너」보다 원작 소설에 좀 더 충실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2049」는 ‘K’의 정체성 찾기에 집중함으로써 ‘내면의 로드무비’ 문법을 전경화 한다. 이는 소설의 문제의식과 유사하다.

캘리포니아대 의식사학과 교수인 다나 해러웨이는 그녀의 도발적인 글 「사이보그들을 위한 선언문」에서 “우리의 시대이며, 신화적 시기인 20세기말에 위치한 우리들은 모두 기계와 유기체의 이론화되고 제작된 잡종인 키메라(chimera)다. 요컨대 우리들은 사이보그다. 사이보그는 우리의 존재론이다”라고 주장했다. 사이보그인 ‘K’는 자신의 기억을 통해 과거에 숨겨놓았던 목각 인형을 찾는다. 그러나 월레스에 고용돼 ‘기억 프로그램 디자이너’ 일을 하고 있는 아나 스테리네 박사(카를라 주리 분)를 만나고 난 후 그는 자신의 기억이 아나 스테리네의 기억으로 디자인된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 후반부에 그녀가 데커드와 레이첼의 딸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K’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기억이 아니라 그녀의 기억을 갖고 살아온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비밀을 깨닫게 된다. 그의 정체성은 이식된 것, 즉 인공적인 프로그램의 구성물이었다. 그는 라캉이 말한 끔찍한 ‘실재(real)’를 대면하고 죽음을 받아들이지만 데커드와 그들의 딸을 상봉시켜 줌으로써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한다. 이는 필립 K. 딕이 소설에서 말한 ‘적합 情動’과 ‘감정이입’을 ‘K’가 죽기 전에 성취함으로써 복제인간으로 죽지만 동시에 ‘인간’으로 재탄생하는, ‘목숨을 건 도약’의 기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랑과 희생, 그 오래된 희망

‘K’에게 월레스 회사의 홀로그램 기계에서 나오는 이미지 ‘조이’(아나 디 아르마스 분)는  유일한 가족이다. ‘K’를 너무나 사랑한 ‘조이’는 그를 위해 창녀 리플리컨트 마리에트(맥켄지 데이비스 분)를 부른다. ‘조이’는 자신의 홀로그램 이미지를 마리에트에게 투영한 채 ‘K’와 섹스를 한다. ‘K’는 홀로그램 이미지와 섹스를 한 것인가, 리플리컨트와 섹스를 한 것인가. 여기에서 가상과 현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선은 지워진다.
 
인간과 리플리컨트, 그리고 홀로그램 이미지. 즉 웰레스 회장과 ‘K’와 ‘조이’. 이들 중 누가 가장 인간적인가. 홀로그램 이미지인 ‘조이’는 ‘K’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라고 말하면서 ‘K‘의 제품명 대신 ‘조’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허상의 홀로그램 이미지가 복제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기적. 그럼으로써 인간이 만든 홀로그램 이미지가 가장 인간적이라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건넨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로이가 데커드를 구출해주고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2049」의 ‘K’는 부녀상봉을 위해 ‘주체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데커드가 인간인지 리플리컨트인지에 대한 논쟁은 무의미하다. 인간이 만든 가상 이미지 ‘조이’가 가장 사랑스러운 인간적 존재라면, ‘K’가 희생을 통해 인간다움의 윤리학을 실천한 존재라면, 「2049」는 사랑과 희생이야말로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박명진 중앙대·국어국문학과
중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영화평론이 당선돼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했다. 평론집으로 『욕망하는 영화기계」, 『한국영화의 존재방식과 광학적 무의식」 등이 있으며, 연구서로 『한국희곡의 근대성과 탈식민성」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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