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모두 ‘어머니풀’이라 부른 약초의 모든 것
동서양 모두 ‘어머니풀’이라 부른 약초의 모든 것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7.10.3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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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87. 익모초
약모초          사진출처=한국식물생태보감
약모초                                                        사진출처=한국식물생태보감

옛날 옛적에 마음씨 착한 한 소녀가 산골 오지마을에 살고 있었다. 소녀는 옆 마을 총각과 결혼을 했고, 그 이듬해에 아기를 갖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루 한 마리가 마당에 들어왔는데 다리를 다쳐 잘 걷지를 못했다. 신부는 정성껏 치료해주어 노루를 다시 산으로 돌아가게 해줬다. 몇 달 뒤 예쁜 아기를 낳은 산모는 심한 출혈로 생명이 위독했다. 이때 예전에 치료해주었던 노루가 쑥처럼 생긴 풀을 한 묶음 마당에 놓고 사라졌다. 남편은 그 풀을 부인에게 달여 먹였고, 산모는 갈수록 몸이 회복되어 건강을 되찾았다. 勸善懲惡이라, 예나 지금이나 착한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사람에겐 벌을 준다. 

앞에서 쑥 닮은 풀이 바로 익모초였던 것. 益母草(Leonurus japonicus)는 꿀풀과에 속하는 두해살이풀로 ‘어머니(母)에게 이로운(益) 풀(草)’이라 여자들에게 뿌리 빼고는 모두 약재로 쓴다. 익모초를 흔히 육모초로 부르기도 하고, 익모초를 서양에서는‘chinese motherwort’라 부르니 motherwort의 wort란 풀(plant/herb)이란 뜻이므로 익모초의 서양말 또한‘어머니 풀’이다. 이는 아마도 중국말인 益母草를 옮긴 것이 아닌가싶다.

밭가·묵정밭·길가·하천변·산비탈언저리에 자생하고, 아시아원산으로 한국·일본·중국·캄보디아에 나며, 남북미대륙·유럽 등지로 세차게 퍼져나갔다. 내 밭가에 난 녀석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꽃에 꿀이 많아서 꽃나비들이 자주 들린다. 그래서 꿀벌이 꽃물(꿀)을 빠는 蜜源식물이다.

익모초는 늦가을에 발아하고(내 밭의 것들도 호랑나비보다 더 큼), 땅에 붙은 진녹색의 잎들이 사방으로 퍼져 식물체가 흡사 장미꽃 모양을 한다. 이렇게 뿌리 잎으로 겨울나기를 한 다음 이듬해에 본격적으로 자라서 여름에 꽃 피우고, 초가을에 열매를 맺고 나서 시든다.

익모초는 줄기가 삼대처럼 가 나서 지가 잘 먹는다고 猪, 하지 이후에는 말라죽기 때문에 夏枯라 불린다. 익모초는 달려드는 천적벌레를 물리치기 위해 쓰디쓴 配糖體(glycoside)와 다른 식물화학물질(phytochemicals)을 만들지만 지독한 진딧물과 박쥐나방애벌레가 많이 낀다.

익모초줄기는 곧추서고, 키는 50~100cm 로 개중엔 1m 넘게 자라는 것도 있다. 줄기가 네모나고, 속은 희며, 흰 털이 촘촘히 난다. 뿌리에서 난 잎과 나중에 줄기에서 난 잎 모양이 전혀 다르고, 근생엽은 꽃 필 즈음에 고사하고 만다. 

꽃은 7~8월에 연한 홍자색으로 피고, 줄기를 둘러싸면서 층층이 매달리며, 암술과 수술이 한 꽃에 나는 양성화로 벌레들이 꽃가루를 옮기는 충매화이다. 익모초는 꽃이 피기 전인 7월 이전에 잎, 줄기를 낫으로 베어 그늘에 걸어 말려 탕으로 달이거나 환과 가루약으로 복용하고, 생것은 즙을 내어 마신다. 그리고 새까만 익모초 씨도 피를 잘 돌게 하고, 생리를 고르게 한다. 중국에서 수천 년 동안 월경불순·월경통·무월경·자궁수축·산후부종 같은 여성병 치료에 여러모로 썼다는데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다.

그렇다. 필자는 어릴 적에 여름만 되면 배탈로 심하게 설사를 해댔으니 그 또한 더위를 먹어 걸린 여름더위 병의 하나다. 정월대보름날 이른 아침부터 더위를 팔았으니, “더위 팔다”란 말은 정월보름날에 행해지는 더위팔기풍습에서 나온 말로 남의 이름을 불러 상대방이 대답하면 자신의 더위를 남에게 주어 한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암튼 만성대장염으로 지금 같았으면 약 몇 봉지나 주사 한 두 대면 너끈히 잡을 수 있었을 텐데도 밤마다 마당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설사를 해댔다.

해거름 때면 어머니는 쑥이나 익모초를 뜯어와 몽돌로 콩콩 찧어 삼베보자기로 꼭꼭 짠 짙푸른 즙을 마시라신다. 쓴 것이 약이 된다 하시며 한 사발 다 마시라고 닦달이시다. 익모초 물은 소태만큼 쓴 것이 쑥물은 저리가라다. 마시는 것이 비위에 거슬리고 거북해 처음엔 입을 앙 다물고 있지만 죽을힘을 다해 꾸역꾸역 마시고 나면 설탕 한 숟가락을 입에 넣어주시니 그 맛으로 즙물을 마신다. 그 시절은 설탕이 귀할뿐더러 약으로 쓰였다면 다들 케케묵은 소리한다하겠지만 사실이었다. 몸에 큰 탈이 나기나 하면 포도당주사 대신에 설탕을 먹였던 것. 그렇게 약으로 쓰였던 설탕이 지금은 불순물취급을 받다니….

여차하면 골로 갈 뻔했다는 말이 맞다. 어머니도 혹시 자식을 그르칠까봐 안절부절 하신 게 틀림없다. 먹는 거라곤 꽁보리밥에 보리죽이 모두인 터에 여름설사배탈에 눈은 퀭한 것이 겨릅대기처럼 비쩍 마른 땅꼬마 자식 때문에 어머니는 동분서주 헐레벌떡 쏘대신다. 고달픈 몸을 이끌고 새벽녘이면 크고 작은 박 바가지 두 개를 들고 논으로 달려가 나락잎사귀 끝자락의 이슬(실은 일액현상으로 벼 잎사귀 끝 기공에 맺힌 식물액즙임)을 쓸어 담는다. 벌레들을 다 들어내고(농약이 없는 시절임) 마셨으니 씁쓰레 한 그것이 알칼리성이라 알고 보면 위산을 중화시켰던 制酸劑역할을 했던 것. 요샌 쌔고 쌘 것이 제산제인데 말이지.

어쨌든 엄마가 해준 익모초와 쑥, 벼 이슬이 날 살렸다. 오늘따라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립고, 절로 風樹之嘆에 젖게 되누나.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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