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변화와 지식인의 처지
시대 변화와 지식인의 처지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7.10.3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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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편집기획위원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최근에 작가 박완서의 작품들을 읽고 있다. 1992년에 나온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1978년에 완성을 본 『목마른 계절』 같은 것들이다. 1931년생으로 마흔 살이 되던 1970년에 ‘돌연’ 『나목』이라는 장편소설로 문단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 후 쉼 없이 쓰다 가신지, 그게 2011년 1월이었으니, 벌써 6년이 넘었다.
 
금방 열거한 작품들은 6·28부터 9·28까지의 ‘적치’ 90일의 기록을 담고 있다. 그때 피난가지 못했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다시피 한 1·4 후퇴 이후의 서울을 그리고도 있다. 이 점에서 이 작품들은 역사를 ‘증언’하는 역할을 한다.

이 무렵에 관한 박완서의 이야기들은 깊은 인상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들은 작가의 젊은 날, 갓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에 입학하던 무렵의 박완서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학제가 바뀌느라 그해만은 고등학생들이 5월에 졸업하고 6월에 대학에 들어갔다.  박완서는 대학 입학한 지 한 달도 못되어 6·25 전쟁을 맞이해야 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따르면 그녀는 6·25의 포성이 들려오는 중에 능곡의 교사로 가 있던 오빠와 둘째아이를 임신해 있던 올케로 인해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다. 

한편으로 젊은 날의 그녀는 좌익 사상에 은연중 기울어 있기도 했다. 인민군의 서울 입성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기도 한다. ‘민청’이 주도하는 대학교에도 나가고 거기서 지시하는 일들을 하기도 한다. 오빠가 그만 의용군으로 끌려간 후 서울이 수복된다. 

이 뒤바뀜은 박완서의 가족을 또 다른 시련에 빠뜨린다. 인민군 쪽에 ‘부역’했다는 죄로 젊은 박완서는 조리돌림을 당하다시피 한다. 그러는 가운데 또 전세가 역전된다. 겨울날 서울을 다시 한 번 비워 주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러나 전장에서 도망쳐 나온 오빠가 불의의 총상을 입는 바람에 그녀의 가족들은 다시 한 번 서울에 남게 된다. 박완서는 6·28과 1·4 모두 서울에 남아 있어야 했다. 적 치하의 서울, 텅 빈 서울을 목도하며 그녀는 자신이 언젠가는 글을 쓰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대학생 박완서의 젊은 날의 ‘기록’은 김성칠 같은 역사학자, 이병기 같은 국문학자의 일기와 짝을 맞춰 읽어보면 더욱 흥미롭다. 그때 김성칠과 이병기는 세대는 다르지만 모두 서울대 문리대의 교수들이었다. 그들 또한 학생 박완서처럼 피난을 가지 못했다. 특히 국문과 교수였던 이병기는 이명선이나 김삼불 같은 제자들이 좌익의 지도적 인물로 캠퍼스에 나타는 바람에 나중에 큰 곤욕을 치르게 된다. 

서울이 수복되자 서울대 캠퍼스를 회복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국어학자 방종현이었다. 자신도 문리대 국문과 교수였던 그는 국군 계급장을 달고 서울로 돌아왔으며 이병기 같은 선배 교수를 ‘심문’하는 역할을 떠맡았다. 김성칠이 방종현을 향해 이희승만은 구해야 한다고 요청하는 가운데 ‘잔류파’ 교수로 지목된 이희승은 6개월 정직을, 이병기는 파면을 당하는 것으로 사태가 일단락된다. 

이 역사를 돌이켜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 같이 변화무쌍한 사회에서 판도는 엎치락뒤치락하게 마련 아닐까. 놀이기구 바이킹은 금방이라도 곤두박질 칠 것 같지만 안전판이 보호해 준다. 시대와 정세는 그렇지 않다. 서로를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어두운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앎을 추구한다는 사람들에게는 지혜, 슬기가 절실히 요청된다. 원리, 원칙, 규정도 좋지만 우선 공생이야말로 최상의 원리임을 깨달아야 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물음을 던질 때가 아니다. 먼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원리를 찾아내고 몸에 배도록 익혀야 한다.
 
세상이 바뀐 것을 매일 실감한다. 좋다. 그러면서도 걱정한다. 이렇게 새로운 바람이 불 때 더 새로운 풍토를 만들어 갈 수도 있다. 물을 것은 묻고 따질 것은 따지되 타자를, 상대방을, 인정할 수 없는 입장을 인정하는, 그런 지혜로운 풍토를 말이다.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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