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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面敎師’의 고백
‘反面敎師’의 고백
  • 심성보 부산교대
  • 승인 2003.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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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요즘 교육대학교에는 특별한 학생이 많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대학에 입학한 학생과 달리 다른 대학을 다니다가 편입한 학생들이 아주 많아졌다. 종합대학에서 교직과목을 이수한 늙은(?) 학생들이 중등교사가 되지 못하고 이런 저런 세상 경험을 하고 난 후 교대에 들어온 편입생이 전체 학생의 20% 내지 25%가 된다. 석사학위를 마친 학생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대학의 조교를 하다가 온 학생도 있고, 이미 애가 있는 아줌마 학생들도 있으며, 아예 애를 데리고 학교에 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편입을 통해 교대에 들어오는 학생뿐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신입생으로 들어오는 학생들도 많아졌다. 이들은 일반대학에 입학을 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학업을 도중에 포기한 학생이거나 직장생활을 하다가 체질에 맞지 않아 다시 대학생활을 하는 학생들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방 방송국 기자를 하다가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나 한심해 교대에 들어온 학생, 간호학과를 다니다가 온 학생, 의대나 한의대에 도전하다가 실패해 찾아온 학생들, 일반대학의 진로가 불투명해 들어온 학생들, 별별 학생들이 다 있다. 이들을 보노라면 인간시장을 보는 것 같다. 이런 인간시장의 양산은 잘못된 교육정책, 부모의 비뚤어진 교육관 등 우리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런데 이렇게 잡다한 경력을 가진 학생들은 순수 교대생들의 교직임용수를 줄어들게 해 재학생들로부터 원성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교대의 새로운 수업풍경을 만들어 내면서 교대교육을 한 차원 높여주고 있다. 이들 대부분의 학생들은 순수하게 교대에 바로 들어온 일반학생들과는 달리 인생의 쓰디쓴 경험을 한 산 증인들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의미없이 거의 100% 취직이 된다는 사실 때문에 교대에 들어온 순진무구한(?) 순수파 학생들에게는 다양한 직업경험을 가진 이들 선배들은 살아있는 인생교육의 모델이 아닐 수 없다. 선배들 또한 깨끗한 후배로부터 새내기 학생이 된 신선한 경험을 하면서 다시 태어나는 존재의 변화를 경험한다. 신입생 환영회가 열려 술 한 잔 하게 되면 단연 인생선배들로부터 그동안 살아온 경험을 듣느라 시간가는 줄 몰라 한다. 

이렇게 일반대학을 다니다가 들어온 학생들이 늘어남에 따라 고참선배와 신참후배의 새로운 만남을 통해 살아있는 인생교육이 이뤄짐으로써 예비교사로서의 직업교육이나 인생교육의 과정으로서 교대의 존재 의미를 다시 살려준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가르치는 신입생 선택과목인 ‘인생교육론’은 더욱 활기차다. 학년이 시작되는 3월에는 좀 늙어 보이는 학생을 찾아내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여간하지 않다. 얼굴에 이미 ‘인생계급장’이 박혀 있어 늙은 학생을 찾아내는 일 또한 재미있다. 이런 학생들로부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듣노라면 후배학생들은 귀를 쫑긋 세우며 숨을 죽인다. 

후배학생들에게 자신의 ‘찬밥’ 신세 타령을 전하는 인생선배들은 나의 귀중한 수업자료이며 교재가 된다. 세상의 쓰디쓴 부정의 경험을 한 학생들을 수업의 주체로 참여시켜 자신의 경험을 다시 되돌아 보게 하는 ‘반면교사’의 고백은 공부만 하다가 대학에 들어온 백지 상태의 일반 학생들에게 ‘간접인생수업’을 생생하게 살려낸다. 

수업이란 구성원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의사소통이 이뤄지고 의미를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소통의 과정에서 경험을 되새기고 재해석하며, 의미를 공유하면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된다. 학생들의 인생경험을 들은 후 마지막으로 약간의 강평을 곁드린 나의 수업방식은 요즘 말로 ‘참여적 수업’, ‘대화적 수업’, ‘구성주의적 수업’이 아닌가 한다. 편입생으로부터 다양한 경험을 들을 때마다 학생들 모두는 진지해지며 삶과 학문이 분리되지 않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3학년 편입생을 따로 모아 수업하는 늙은 반만의 교실이 아니라 이들을 젊은 반에 모두 산재시켜 수업하는 신구혼합의 ‘짬봉’ 방식으로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심성보 부산교대·교육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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