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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문학의 眞髓
아랍문학의 眞髓
  • 김정아 한국외대 아랍어과
  • 승인 2017.10.3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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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 한국외대 아랍어과
김정아 한국외대 아랍어과

“아랍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신입생 수업이면 어김없이 하는 질문이다. 세월 따라 답도 다르다. 90년대 학생들은, ‘사막’, ‘석유’, ‘일부다처’, ‘중동건설’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은 ‘아랍어’, ‘이슬람문화’, ‘여성인권’, ‘일부다처’, ‘사막’, ‘석유’, ‘IS’를 답한다. 90년대 학생들의 4개 답 중 3개가 경제적 접근이었다면, 요즘 학생들의 답은 언어와 문화(4개), 경제(2개), 정치적 이슈(1개) 순으로 경제 일변도의 접근에서 문화적 접근으로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일조한 것이 방송매체이다. 다양한 해외탐방 프로그램은 아랍에미리트의 매 사냥부터 신밧드의 모험의 배경이었던 오만의 항구, 이집트의 한국어 열기, 요르단 시내를 누비는 국산 중고차, 모로코와 튀니지로 대변되는 북아프리카 무슬림사회의 한류 열기까지 고스란히 전달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한국의료기관에 치료차 방문하는 아랍인 환자가 늘고, 경복궁이나 시내 백화점에서 히잡을 한 아랍여성들을 더 자주 보게 되었다. 아랍어에 대한 관심은 2002년 아랍어가 제2외국어 교과에 포함되면서부터 급속히 발전했다. 2018학년도 수능 제2외국어 응시자 10만 명 중 아랍어Ⅰ과목 응시자가 약 7만 명으로 예상된다. 이렇듯 한국사회는 아랍과 이슬람에 대한 관심을 늘리는 중이다.

고등학교 때 글 좀 읽는다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있던 책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였다. 신비적 삽화와 짧은 글로 ‘지혜문학’의 정수였던 『예언자』는 함석헌의 번역본과 정은교의 번역본이 있었다. 이 책은 『아라비안나이트』가 지닌 아랍세계의 신비함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내게 강렬히 다가왔고, 아랍어과에 입학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훗날 아랍문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칼릴 지브란은 미국으로 이주한 기독교인 아랍작가라는 것을. 『아라비안나이트』말고도 아랍인들이 자긍심을 지니는 아랍문학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한국에는 왜 아랍문학의 진수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이나 서구를 통해 아랍문학을 접했기 때문이다. 일예로 『아라비안나이트』는 개화기에 『유옥역전』으로 번역 소개되었지만, 중역의 한계를 넘을 수 없는 문제가 다수 발견된다. 국내에서 아랍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이집트의 작가 나집 마흐푸즈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부터이다. 하지만 국내 세계문학전집에 아랍문학작품이 실리기까지는 그 후로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해 마다 노벨문학상에 거론되는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를 비롯 아랍 22개 국가의 수많은 문인들이 이슬람 문명과 현대사의 질곡을 문학으로 기록하고 있다. 아랍문학은 5세기부터 아라비아반도에 존재했으니, 7세기 이슬람의 발흥보다 앞선다.

아랍문학의 근간이 바로 당시의 아랍詩다. 유목생활을 하던 아랍인들은 운율을 즐겨 사용했고, 운을 넣어 읊조리는 문학 행위를 즐겼다. 이런 경향은 훗날 아랍 산문문학에도 영향을 주었고, 12세기에 운이 포함된 산문이 탄생했다. 이 독특한 문학 장르인 『마까마』는 詩나 韻이 있는 글이 포함된다. 『마까마』에서는 허구의 주인공과 화자가 여러 편의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 점이 소설의 등장보다 앞선다는 것에 주목받고 연구되고 있다. 아랍인은 기록과 전달을 즐겨 한다.

물론 기록 이전에 암송이 있었다. 아랍인은 코란 다음으로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록『하디스』를 제2法源으로 삼는데, 『하디스』에는 ‘전달’하는 자의 이름이 순서대로 기록돼있다. 아랍인은 이처럼 기록과 전달을 중요시한다. 아랍 베두인은 더위가 물러간 밤 달빛 아래 말과 낙타를 천막 옆에 두고 차를 마시며 사랑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생산해 왔다. 이런 행위가 아랍인의 문학이 되었고 삶이 되었다. 국내에 아랍문학을 소개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가 설립되고, 동 대학의 대학원에 아랍문학전공 박사과정이 개설된 후로 볼 수 있다. 국내 아랍문학 연구자들은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아랍문학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아랍문학에 관한 다양한 연구는 한국중동학회, 한국이슬람학회, 한국아랍어문학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 학회들은 매년 두 차례 정기학술대회와 KCI급 학회지를 년 4회 발간한다.

최근 아랍문학을 전공하는 석·박사 과정 학생들은 아랍소설을 마술적 사실주의로 분석하거나 팔레스타인 아동문학을 조명하는 등의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비교문학의 하위 장르로 분류 되는 통·번역분야의 학위 논문도 다수 준비 중이다. 통·번역 연구는 아랍어에서 한국어로 번역과 그 반대의 경우를 모두 다루고 있다. 지난 9월 개최된 아랍어문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아랍어 번역본에 4장이 누락된 것과 ‘홍어’를 ‘스케이트’로 번역한 오류에 대해 진지한 토론이 있었다. 홍어가 스케이트로 둔갑한 이유는 영어 중역이 초래한 일이라 한국어에서 아랍어로 직접 번역의 절실함을 재차 확인하는 기회였다. 아랍문학을 주제로 한 이런 일련의 학문적 노력과 활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아랍어뿐 아니라 이슬람 문화에 대한 정통한 지식이 우선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김정아 한국외대·아랍어과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와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동대학 대학원에서 「자히즈의 『수전노』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이다. 연구 관심은 중세아랍산문에 있다. 역서로는 중세 역사학자 이븐 칼둔의 『무깟디마1』, 『무깟디마2』(소명출판), 자히즈의 『수전노』(문학과 지성), 알리 바드르의 『한 밤의 지도』(실천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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