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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疾病’에 관한 정보 독점과 은폐
‘疾病’에 관한 정보 독점과 은폐
  • 안성우 객원기자
  • 승인 2003.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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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 쟁점 : 중국발 SARS, 무엇이 문제인가

과거 천연두, 콜레라, 페스트, 티푸스 등의 전염병은 한 번 발생하면 급속도로 번져나가 엄청난 인명피해를 남기고서야 수그러들곤 했다. 거대한 자연재해처럼 인류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이들 전염병은, 그러나 의학이 발전하면서 효과적으로 통제되고 있는 듯 보인다. 페스트와 콜레라, 장티푸스 등은 여전히 무서운 급성 전염병이긴 하지만 과거와 같이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을 만큼의 연구가 됐고, 치사율 30%로 20세기 중반 이후로도 수백만의 사망자를 낳은 천연두 바이러스는 이제 실험실 외부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한편 과거 전염병을 일으키던 병원균이 항생제에 적응하면서 다시 그 위력을 떨치고 있어, 그동안 인류가 치러온 전염병과의 전쟁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

전염병의 확산과 국가집중통제

게다가 사람 및 물류의 국가간 이동이 여러모로 활발해지고, 생활패턴이 바뀌면서 이전과는 또다른 전염병의 발생 및 확산이 가능하게 됐다. 1차 대전 당시 인플루엔자(소위 스페인 독감)는 참전 군인들을 따라 전세계로 퍼져나가 무려 2천 5백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1968년 70여만 명의 사망자를 낸 후 심심찮게 언론을 장식하는 홍콩 독감, 모기가 옮기는 바이러스에 의한 일본 뇌염 등은 물론 에이즈의 경우도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병원체의 활동과 함께 병원체의 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 사회적인 변동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큰 파괴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아프리카의 경우는 특히 끊이지 않는 내란이나 전쟁 등의 변수가 치명적인 전염병의 확산과 관련돼 있다. 1967년 독일 마르부르크에서 원숭이 실험 도중 제약회사 직원이 괴질에 감염됐는데 이 전염병은 1999년 콩고 내전 와중에 다시 등장했다. 1976년 아프리카 자이르에서 발견된 에볼라 바이러스가 감염 2주만에 환자를 사망시켰다면, 에볼라 바이러스와 모양이 비슷한 이 마르부르크 바이러스는, 단 48시간 이내에 감염자중 90% 이상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바이러스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이 바이러스의 숙주가 된 사람이 너무나 빨리 사망하는 바람에 전염이 급속히 확산되지 않았다. 

이러한 전염병들에 비해 최근 전세계를 전염병의 공포로 떨게하고 있는 중증 급성호흡기 증후군(SARS, 이하 사스)의 경우는, 이 병에 걸렸다고 판명된 환자들의 94% 정도가 건강을 회복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가벼운 전염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다른 전염병들에서처럼 우리가 이 전염병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사스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한 상황이다. WHO는 호흡기 관련 질환을 일으키는 클리미디아 또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유력한 원인 병원체로 지목했고, 미국 질병통제센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사스 환자의 신체에서 분리, 배양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해서 사스 환자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변형 코로나 바이러스를 검출하는 방법의 정확성이 의심을 받고 있기도 하거니와 병인 자체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험지역’을 여행했거나 그 지역으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과 접촉이 있었고, 38도 이상의 발열 및 기침이나 빈호흡, 호흡곤란, 저산소증 등 호흡기 질환의 증상을 보이며 방사선 검사상 폐렴 소견이 있는 경우면 사스 추정 환자, 즉 사실상 사스 환자로 판정을 하고 있다.

사스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다. 베트남, 캐나다 등에서는 사스의 확산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진 반면 초기 사스의 발원지로 알려진 중국은 여전히 사스 환자 및 이로 인한 사망자가 증가추세에 있다. 의료구조의 취약성이나 열악한 위생환경이 중국에서 사스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이유지만 중국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도 이러한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중국과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한 한국의 경우도 최근 사스 환자가 발생하는 등 안전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피해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염병이 창궐할 때는 무엇보다 이 질병을 퇴치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기 때문에 당장 의심환자를 격리하는 등의 조치를 당연시하며, 이것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앙집중적 관리는 효율적이지만 그에 따르는 위험성 또한 내포돼 있다. 특히 전염병의 원인과 확산경로 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도 전염병의 존재 자체가 국가적인 손실을 입힌다고 판단할 경우 의심환자들의 인권 및 생명을 위협하는 등 필요이상으로 엄격한 대응을 하거나 정보를 독점관리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신뢰’가 과잉 대응보다 나은 이유 

인간 광우병 파동이 일어난 영국 사례에서 보듯, 정부가 질병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면서도 경제적인 파급효과 때문에 전염병 관련 정보를 정부가 독점, 최대한 은폐하려고 할 경우 문제는 더 커질 수 있다. 사스 발생 초기 중국 정부의 시도 또한 이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전염병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해 공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신뢰가 문제의 해결에 중요하다. 또한 동남아 출신 산업연수생의 입국을 거부하거나, 아시아계 유학생들에 대한 격리 요구 등 현재 여러 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필요이상의 과잉 대응이나 군중의 공포로 인한 위기의 심화는 이러한 신뢰 위에서 억제될 수 있다.

물론 많은 전염병들이 그러했듯 지금의 사스는 인류의 대응이 본격화되기 전에 다행스럽게도 모습을 감출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차 늘어가는 환경파괴가 지역 풍토병들을 전세계적인 무대로 불러올리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서 보듯 전염병에 대한 대책에는 의학 이상이 필요하다.   

안성우 과학객원기자 swah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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