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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虛와 최인훈
尙虛와 최인훈
  • 김호기 / 서평위원·연세대
  • 승인 2001.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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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수상]

얼마 전 사회학을 공부하는 한 친구와 성북동에 갔다가 상허 이태준이 살았던 집에 들러 차를 마신 적이 있다. 그가 남긴 소설과 수필에서 이 집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는 터라 무척 반가웠다. 아담한 한옥에 그가 직접 걸었다는 현판들, 그리고 마루에 세워 둔 빛바랜 가족 사진을 보며 그의 복잡다단한 생애를 떠올려 보니 이런 저런 상념들이 휩쓸고 지나갔다.

지난 80년대 후반 월북 작가들의 책이 해금된 후 비로소 읽어보게 된 상허의 소설들은 작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 왔다. 이 성북동 집을 무대로 쓴 단편 ‘달밤‘도 인상적이었지만, 상허의 백미는 단연 ‘해방전후’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해방전후’에 나오는 김직원이란 처사에 관심을 둔 적이 있었는데, 특히 소설 마지막을 장식하는 김직원과 상허 자신이라 할 수 있는 현과의 대화는 그 어떤 사회학 논문보다 우리 역사에서 전통과 근대의 교차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상허 자신은 ‘김직원의 표표한 뒷모습’에서 전통의 ‘애뜻한 최후’를 연상하고 있으나, 후발 산업화 국가에서 전통과 근대의 문제는 사실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서구 사회에서 전통과 근대는 단순히 야만과 문명의 이분법으로 등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구와 비서구, 중심과 주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등 다양한 담론들이 교차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쉽게 해답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이 집은 최인훈의 장편 ‘화두’에도 등장한다. ‘화두’의 2부에는 주인공이 이 집을 찾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 작가는 비극의 소설가 상허와 그의 작품들을 애뜻하게 추억하고 있다. 사람마다 ‘화두’를 읽는 방식이 여러 가지 있겠으나, 사회학적 관점에서 ‘화두’는 우리의 현대성에 대한 빼어난 성찰의 하나로 지목할 수 있다. 이 책을 나는 연구차 미국에 나갔던 재작년에야 읽게 되었는데, 장수아기 설화의 의미를 놓고 문학을 공부하는 아내와 밤새 열띠게 토론했던 기억이 새롭다.

‘화두’에서 내게 話頭로 다가 왔던 것은, 평론가들에게 더러 인용되곤 하는 “사람은 관념의 세계 시민은 될 수 있어도 현실의 세계시민은 될 수 없다”는 진술이다. 관념과 현실의 이중성 문제는 서양학문인 사회학을 공부하던 나 또한 끊임없이 직면한 문제였으며,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비서구사회이자 분단체제에서 살고 있는 내가 과연 언제쯤이나 이 화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일까.

김호기 / 서평위원·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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