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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바닥에 팽개쳐진 교권
땅바닥에 팽개쳐진 교권
  • 도지호 김천대학
  • 승인 2003.05.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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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련 연속기고(9)]발빠른 사학재단과 교수 퇴출 위기

어느 시골의 벽지 고등학교 진학지도 선생님이 말하기를, 고3학생 전체가 38명인데 경향각지의 4년제 2년제 대학에서 다녀가면서 명함을 두고 간 교수님들이 42명이나 된다. 엎드려 자는 학생들에게 이놈들아, 공부 좀 하자고 하면 우리는 공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졸업장이 필요하며 대학은 정원이 남기 때문에 아무 곳이나 원서만 쓰면 골라서 갈 수 있다며 다시 엎드려 잠을 청하고 있단다.

지난주 어느 전문대학 보직 교수회의에서 학장이 15%의 재정삭감을 단호하게 선언하면서 “전체 예산의 65%가 인건비이며 이 중에 10%는 삭감을 해야 한다. 교수들의 봉급을 10% 삭감하든지 교수들 10%를 사퇴시키든지 보직회의에서 결정해 올려라”고 말했다.
어느 대학에서는 1개 학과가 폐쇄된 상황에서 입시가 치러지고 3개 학과가 정원의 20% 밖에 모집하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두 학과를 통폐합하고 교수들을 타과로 재배치하고, 그중 몇몇 교수는 퇴직을 해야 한다는 소문이 돌아 서로가 눈치를 보며 극도로 긴장되고 불안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

또 다른 어느 대학에서는 전체 교수 28명 중 13명의 교수에게 구두로 권고사직을 권했다. 1차로 6명의 교수에게 압력을 넣었으며 그중 4명은 이미 사표를 쓰고 나갔다. 2명의 교수가 반발해 문제가 됐지만 수업을 박탈당한 채 학기를 보내고 있다. 교육부에서는 시끄러우면 좋을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설이 있고, 이후 학교당국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학마다 학풍이랄까 분위기 이런 것이 있지 않습니까? 왕따 하는 쪽도 문제가 있지만 당하는 쪽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재임용 탈락, 인사위원회, 공정하고 합법적이었습니다. 우리대학에서는 다른 길을 찾아 갈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고 있으며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그렇게 떠나갔고 불만이나 문제가 없었습니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사학재단 이사장 출신이 경합한 지역의 어느 후보는 사립학교법 개정을 묻는 질문에 사학의 자율성을 이야기했고 또 다른 후보는 시장원리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립학교법이 개정된다는 것에 100% 찬성합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나라에 사립학교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립이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그 학교를 세운 목적이 있는데 지금 대한민국에서의 사립학교는 사립의 역할을 전혀 할 수 없습니다. … 시장에 맡겨서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일반인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이러한 발언들은 대부분의 교수들이 느끼는 정서와는 판이하다. 한 번만 더 생각하면 그 이면에는 대학의 공공성을 위장한 지배구조 속에서 오로지 경영과 시장 논리로만 내세우면서 세금 없는 영리와 제재 없는 세습의 수단으로 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재단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곳에 교수나 학생, 학부모는 지금까지나 앞으로도 그들의 추악한 탐욕의 희생양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대기업이 설립한 대학은 학생 2천5백명에 교수 2백명이 넘는 대학도 있다. 그러한 반면 대부분의 2년제 대학은 학생 5천명 이상에 교수 1백명 이하가 일반적이다. 게다가 등록금도 대규모 대학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을 뿐더러, 교수 봉급은 4~5배 많기는커녕 오히려 평균에도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지금 전국의 지방 전문대학은 붕괴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재단은 자본과 권력을 등에 업고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여론을 장악하고 정치권과 교육부와 결탁해 퇴출과 M&A를 입법화하고 한편으로 변신을 내심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교수들은 어떤가. 해직과 생존의 위협에서 고통 받고 대학 붕괴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죄인처럼 취급받는 교수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자신만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순서를 세며 착각하는 교수들, 자포자기해 미리 다른 길을 찾아 도피하려는 교수들의 군상을 본다.

이 시점에서의 교권은 스스로 지키는 것이며 싸워서 얻는 것이며 힘을 합쳐 세우는 것이 아닐까. 교수협의회가 대안이며 전교협과 사교련 그리고 교수노조가 그들에게 희망이 될 것이다. 아직도 대학의 교수들은 자기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말은 땅바닥에 팽개쳐진 교권하나도 챙기지 못해 노동자조차 되지 못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알아서 처신하고 몰라서 쫓겨나고 스스로 돌아서서, 노동법으로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소리 말이다.

도지호(교수노조 조직실장, 김천대학.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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