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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적 차이를 親北으로…‘학술’에 덧씌운 이념굴레
정책적 차이를 親北으로…‘학술’에 덧씌운 이념굴레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3.05.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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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서동만 교수에 대한 정치권의 색깔 시비

 서동만 교수(상지대)의 국정원 기조실장 임명을 놓고 ‘친북좌파’ 논란이 불거졌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서 교수의 북한 연구가 ‘친북적’이어서 불안하다는 색깔론을 걸었다. 덩달아 언론 일각에서도 이성적 논의를 제기하기보다 ‘친북’이라는 꼬리표 몰아세우기에 급급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 논란은 학자들의 연구를 여전히 과거 냉전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정치권과 ‘친북’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더 이상 이성적 논의를 불가능하게 하는 일부 언론의 행태를 그대로 보여줬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서동만 교수에 대해 문제를 삼은 부분은 크게 세가지다. 통일방안으로 연방제를 수용해야 하며, 북핵을 대외 협상용으로, 서해교전을 우발적 실수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논문이나 토론에서 발표된 자료를 보면 이를 근거로 ‘친북좌파’로 규정한 이들의 판단 능력을 의심하게 한다.

먼저 서 교수는 ‘남북정상회담과 통일운동의 대응’이라는 논문에서 “통일 방안에서 논의의 접점을 찾았다는 것은 북한 통일 방안만의 일방적인 수정을 뜻하지 않는다. …남측도 통일 이전의 국가연합 단계를 넘어서 또 하나의 단계로서 연방제 통일 방안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여지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남북의 통일방안 접근과정에 대한 해석을 연방제를 남한이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몰아 붙인 셈이다.  

이미 ‘모든’ 언론이 북핵을 협상용이라고 해설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연구하고 대처방안을 제시하는 학자의 견해를 굳이 ‘친북적 논리’라고 끌어들인 것도 궁색하기 그지없다.

서 교수는 2002년 한 토론회에서 “군사적으로는 계획된 선제공격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우발성이 있는 즉 북한의 실수라고 보고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인사청문회에서는 이것이 북한에게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북에 유리한 해석’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이미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도 공식보고에서 최고 지휘부의 관여여부에 대해 판단을 유보한 상태였기 때문에 오히려 북측이 통치에 허점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한 ‘북에 불리한 해석’이다. 

‘친북’ 꼬리표 달기 위해 사실과 다른 음해성 발언도 되풀이 됐다. “북한에 최근에 갔다 온 적 있나? 북한사람과 똑같은 의견을 내고 있다.”(함승희 민주당 의원) “학위를 와타 하루키 동경대 교수 밑에서 했는데 그가 친북 학자임을 아는가. 그때 북한을 몇 번 다녀왔다고 하던데…”(이윤성 한나라당 의원)

문제는 이처럼 비논리적인 근거와 터무니없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친북’이라는 꼬리표가 사회적으로 ‘써먹힌다’는 점이다. 일단 ‘친북’이라는 꼬리표가 붙여진 이상 더 이상의 다양성은 인정되지 않는다. 오직 ‘反北’만 있을 뿐이지 ‘균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 언론은 스스로 서 교수에 대해 ‘균형잡인 시각’을 지녔다고 하면서도 정치권의 말을 받아 ‘친북좌파’로 몰아붙였다. 햇볕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실용주의적 노선을 견지한 포용주의자로 구분되는 서 교수조차 ‘친북’이라는 딱지를 붙여, 마치 한국사회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국기를 훼손하는 위험인물쯤으로 매도한 것이다.

학계에서는 일부 정치권·언론의 이러한 단편적 대북관이 한계에 달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지난달 29일 학단협, 민교협, 한국정치연구회 등은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의 성숙한 의식에도 불구하고 구시대적인 색깔론 논쟁을 부추기는 행태가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아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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