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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산책 : 백거이의 『매여 있지 않은 배처럼』
책산책 : 백거이의 『매여 있지 않은 배처럼』
  • 안대회 영남대
  • 승인 2003.04.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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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완으로서의 漢詩 ‘諷諭’와 ‘感傷’ 물씬 풍겨

 

안대회 / 영남대·한문비평

몇 년 사이 독서계의 이슈 가운데 하나는 느림과 여유였다. 최근에 틱낫한 스님의 저서가 베스트셀러가 된 현상도 그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현상은 역으로 우리가 처한 사회환경이 느림과 여유를 용인하지 않음을 설명한다. 유치원생부터 대학생까지 여유를 부리는 학생은 곧 뒤로 처지고, 학교를 벗어나 사회인이 됐을 때 여유는 곧 도태다. 사회 역시 진행을 멈추거나 앞이 아닌 옆과 뒤를 돌아보는 것은 위험하다. 속도 드라이브의 현대에서 한가롭게 자연의 순환을 즐기고, 인생 자체를 음미하는 행위는 만용에 가까운 짓일 것이다. 이런 거스를 수 없는 삶의 환경에 대한 역반응이 이런 독서물의 출간을 재촉한다.

전통시대인의 삶의 가치와 덕목

그렇지만 조금 시선을 돌려 우리 옛사람의 삶과 의식으로 돌아가 보면, 현대인은 어쩌다 쟁취해볼까 다짐하는 느림과 여유가 삶의 매우 중요한 측면의 하나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한가로움은 그들이 살아서 누릴 행복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 점은 분명 우리 현대인과 처지가 다르다.

최근 출간된 白居易(772~846)의 시집 ‘매여 있지 않은 배처럼’을 읽고서 동아시아 옛 사람이 보여준 그 같은 삶을 확인할 수 있어 신선했다. 시집의 제목에서 방향성을 잃은 어느 시인의 인생행로가 느껴진다. 어느 한 곳에 닻을 내린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목적지를 가진 느낌은 전혀 주지 않는다. 게다가 이 시집의 부제가 ‘백거이 한적시선’이다. ‘閑適’의 閑은 여유나 한가로움, 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뜻이고, 適은 알맞음 또는 편안함을 뜻한다. 부제는 역자가 자의적으로 붙인 제목이 아니라 백거이 자신이 표방한 것을 따른 것이므로 한적한 삶을 향한 시인의 강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백거이는 新樂府 운동을 주도한 대표적인 풍자시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표방은 의아하기까지 하다. “문장은 시대를 위해서 짓고, 시가는 백성을 위해 지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 그는 사회를 풍자하고 현실을 비판한 참여적인 시를 쓴 시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시를 諷諭詩, 閑適詩, 感傷詩, 雜律詩 이렇게 네 개의 주제로 분류해 시집을 자기 스스로 편집했는데 그 가운데 풍유시와 감상시가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동시에 일상의 한적한 정취와 낙천적 인생철학을 지향한 시를 즐겨 지었다. 관료로서 현실에 비판적으로 참여한 삶이 그의 긴장이라면 한적함과 낙천성은 그의 이완이다. 그러고 보니 字를 樂天으로 한 이유가 있다.

바쁘게 살아가는 장년기에 시인 백거이는 출세와 명예가 인생의 반쪽이듯이 때로는 퇴행과 염세, 여유와 낙천의 퇴보도 인생의 또 다른 반쪽으로 즐겼고, 그것을 한적시로 표현했다. 국가와 백성을 위한 목표지향적 삶을 가는 한편으로 그는 그 반대방향이나 또는 무방향의 삶도 자기 삶의 일부로 즐긴 것이다.

그는 이렇게 읊었다. “명예를 추구하는 자들에게/내 거듭 일러두노니/그대들이 비웃는 바를/난 기꺼이 따르리라.”(‘관사 작은 정자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며’) 또한 “이제야 알겠거니/공무에 매인 몸은/병나지 않으면/쉴 수도 없음을.”(‘병가 중에 남쪽 정자에 앉아 유유히 먼 곳을 바라보며’)이라고도 읊어 출세와 명예의 길에서 비켜 서기를 꾀한다. “게으름이 병이 되어 자주 휴가를 내는”(‘졸시를 읊조리다가 느끼는 바가 있어서’) 그에게 괜한 너스레가 아니라 꽤나 절실한 소망이었다.

때로는 게으름을 예찬하기도 해 이런 시도 지었다. “벼슬이 있어도 나태하니 발탁되지 않고/밭이 있어도 농사짓기가 귀찮다./지붕이 새도 게을러서 이지 않고/옷이 찢어져도 꿰매기가 귀찮다.…식구가 쌀이 떨어졌다 하는데/끼니때가 되어도 벼를 찧기 싫다./친척과 친구들이 편지를 보내와도/읽고 싶은데 뜯기가 귀찮구나.”(‘게으름을 노래하다’)

백거이와 동년배인들의 교감 넘치는 번역

그의 시를 읽다보면 긴장과 쟁투 속에 바쁘게 살아가는 직업인의 솔직한 내면의 소망을 읽는 듯하다. 그는 고백을 속어투의 쉬운 내용으로 썼다. 시를 한편 쓰면 꼭 할머니에게 들려주고 “이해가 되나요?” 물어 “알겠어요”라고 답하면 그때야 시집에 넣었다고 하는 일화대로 들어서 이해 못할 내용이 없다.

이 시집은 성균관대에서 중문학과 한문학을 전공한 연구자들이 번역했다. 그 동안 풍유시인으로 알려진 백거이의 한적시인으로서의 면모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신라 때부터 李奎報를 비롯한 우리의 많은 시인들은 백거이 한적시의 애호가였다. 시집은 백거이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쓴 시가 중심이다. 번역자들도 대체로 시인의 나이와 비슷해서 그런지 시인의 시세계에 대한 교감이 깊은 점을 느낄 수 있고, 번역도 깔끔하고 주석도 충실하다.

한 가지 덧붙여 말한다면, 책 자체가 산뜻하다. 대학출판부에서 나온 책이 풍기는 인상이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런 선입견을 깨도록 장정이나 편집, 제본 등에서 품격을 잘 살려냈다. 대학출판부가 변신하는 모습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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