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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부터 새롭게”…기존 환경운동 방식 비판
“디자인부터 새롭게”…기존 환경운동 방식 비판
  • 박남정 / 출판칼럼니스트
  • 승인 2003.04.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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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읽기 : 『21세기의 파이』(레스터 브라운 외 지음/이상훈 외 옮김, ㄸ·님 刊) 『요람에서 요람으로?

최근 출간된 ‘21세기의 파이’와 ‘요람에서 요람으로’는 모두 지구가 처한 위기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앞의 책이 위기 상황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진단해가며 실태를 알리는 데 주력한다면, 뒤의 책은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지구환경의 고갈과 파괴를 막아낼 해법에 있어서는 두 책의 주장에 미묘한 차이가 없진 않지만 두 책 모두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돕는 한편 고민의 깊이를 더해준다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 한다.

월드워치 연구소에서 펴낸 ‘21세기의 파이’는 환경 파괴의 역사적인 추이와 함께 지구 곳곳의 사례들을 꼼꼼하게 살펴 그 정도와 원인을 밝힌 충실한 보고서다. 제목이 된 ‘21세기 파이’란, ‘전체적인 소비가 지구의 생산능력을 압도해버림으로써 더 이상 파이가 커지지 않게 된 21세기 지구의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나눠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쓴 10편의 보고서를 싣고 있는데 각 장의 제목만 봐도 위기감이 느껴진다. ‘강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나?’, ‘신음하는 해안’, ‘죽어가는 바다’, ‘생물의 침략’, ‘드러나는 위협’, ‘기후변화’ 등.

문제의식 같지만 대안은 달라

조사 대상은 각기 다르지만 이 책의 글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생태계 파괴의 주범은 ‘인간’이라는 것. 인간이 밀집해 살고 있는 곳의 자연이 더 심하게 파괴되고 오염된 것은 이를 방증한다. 한정된 자원, 늘어나는 인구, 나눠 쓰기보다는 경쟁적으로 더 많이 가지려하는 욕망은 자연을 고갈시킬 따름이다. 경제적 효과와 효율성이라는 미명하에 인간이 행하는 개발과 자연 통제가 엄청난 오염과 파괴로 이어지고 기후의 변동으로 갖가지 이변들이 속출한다. 그뿐인가. 극심해지는 빈부격차, 인종차별과 소외는 끊임없는 분쟁을 낳고 삶을 황폐화시킨다. 이처럼 생태계 파괴는 어느 한 지역, 특정한 대상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총체적이고 광범위하며 상호 연관돼 있다. 마치 도미노처럼, 툭 하고 하나만 건드려도 다 함께 쓰러진다는 것이 필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는가. 이 책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珦湄湧?제시하는 해결책들은 지나치게 원론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연의 한계를 인식하고 더 적게 소비하고 자연에게 더 적게 요구하라는 것. 좀더 구체적으로는 국가간, 지역간의 긴밀한 협력과 공동노력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문제 해결책의 측면에서 본다면 ‘요람에서 요람으로’는 앞의 책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신선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인 건축가 출신의 윌리엄 맥도너와 화학자인 미하엘 브라운가르트는 이 책에서 종래의 환경운동의 철학과 방법론을 비판하고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방법론을 펼쳐 보인다.

저자들은 우선 지금까지의 환경운동을 4R, 즉 감소(Reduce), 재생(Recycle), 재활용(Reuse), 규제(Regulate)로 정리하고, 이런 철학과 방법론들이 실제로 자연의 고갈이나 파괴를 완벽하게 막아낼 수는 없음을 조목조목 꼬집는다. 덜 쓰고 덜 만들고, 다시 쓰고, 적당히 쓰는 것이 고갈과 파괴의 시기를 조금 미루게 할 수는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자연은 디자인으로 인해 문제를 겪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늘 디자인으로 인해 문제를 겪는다”라고 말하는 저자들은 처음부터 아예 쓰레기가 안 나오게, 다시 쓸 수 있게 만든다면 사실상 규제도 필요 없지 않겠느냐며 ‘디자인부터 새롭게 하기’를 주장한다. ‘요람에서 무덤으로’가 아닌 ‘요람에서 요람으로’의 방식으로.

경험 뒷받침된 낙관론 설득력 높아

이 책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실제로 그런 제품이나 건물을 만들었던 저자들의 경험을 함께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 후 곧바로 퇴비로 활용할 수 있는 실내장식용 천, 공장 전체에 자연광이 비치고 지붕에 풀이 자라는 건물, 화학첨가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샤워 젤 등이 이들이 만든 대표적인 물건들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깊었던 것은 저자들이 지닌 인간에 대한 희망과 신뢰였다. ‘지구의 토착민’으로서 인간이 지닌 무한한 창의성과 문화, 생산성을 지구를 파괴하거나 파괴를 늦추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지구와 공존하는 법을 발견하는 데로 돌린다면 못할 것도 없다는 낙관적인 믿음이 용기를 준다고나 할까. 명쾌하고 간명한 문체,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대안 사례들은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눈길을 끄는 사실 하나. ‘21세기의 파이’는 재활용종이로, ‘요람에서 요람으로’는 플라스틱 수지와 무기 화합물을 결합해 만든 종이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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