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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된 자율성
반려된 자율성
  • 서원명 경상대
  • 승인 2003.05.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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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서원명
경상대·농공학

지난 4월 16일 교육부가 경상대 총장임용후보자 추천공문을 반려함으로써 경상대 사태는 또 다른 혼란에 빠졌다. 짧게는 지난 3월에 총장선출관련 현안수습위원회(이하 수습위)를 구성한 시점부터, 길게는 지난해 10월 총장추천위원회(이하 총추위)가 구성된 후 6개월여 동안의 노력이 교육부의 해괴한 논리에 물거품이 된 셈이니, 자율과 다양성을 생명처럼 존중하는 교수들이 분통을 터트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대학 민주화의 행보에 끝없이 발을 걸어온 교육부가 이제는 대학 직원들에게 대리전을 시키는 듯한 전형적인  예가 경상대 사태다. ‘수습위’의 합의과정에서 직원들이 요구한 사항, 즉 ‘교육부장관의 판단을 존중하며, 장관의 판단 이후의 총장선출 관련 사항은 직원들과 협의한다’ 라고 하는 내용은 결과적으로 교육부의 공문반려가 이미 예견됐던 것 아닌가 하는 의혹마저 들게 한다. 

총장직선제는 교수(협의)회 및 평의원회 제도와 함께 87년 6월 민주항쟁을 계기로 학생과 교수가 투쟁에 의해 쟁취한 대학민주화 과정의 귀중한 성과다. 그러나 교육부의 법제화 거부로 지금까지도 여전히 제도적으로 안착하지 못해, 민주화를 가로막는 세력들이 공박하는 빌미가 되곤 했다. 특히 교육부는 그 동안 ‘국립대학발전계획’ 등을 통해 총장직선제를 폐지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여왔다. 

그 동안 교수직선으로 총장을 수차례 선출해왔고, 이를 당연히 임명해왔던 교육부에서, 직원들의 집단적 움직임 이외에는 아무런 상황 변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갑자기 ‘교수의 합의가 있으면 직원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는 해괴한 유권해석을, 그것도 장관의 결재도 없이 실무자의 전결로, 일선 대학에 내려보낸 것이 문제를 일으킨 사단이기 때문이다.  

교육관료들은 ‘대학개혁’이란 명분으로 대학간 경쟁체제를 유도하고 교수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몰아세우면서 각 대학에 대한 행·재정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을 보유하게 됐다. 최근 경북대의 학칙보고 소동과, 경상대를 비롯 영남대 등에 교수회 관련 학칙조항과 규정을 고치라고 지시한 것은 그들의 의도를 드러낸 단적인 예다.
지금 교육관료들에게 걸리는 유일한 장애가 직선 총장이다. 교수들의 총장 직선으로 교육부-대학총장-교수로 연결되는 통제시스템이 완성되지 못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대학의 고유업무인 연구와 강의를 올바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총장은 정치적 권력이나 어떤 외부적 압력도 막아내야 할 책무가 있다. 총장선출에 교수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직원을 비롯한 모든 주체가 총장선출과정 등에 참여하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다만, 총장선거라는 공통된 사안에 얽힌 갈등을 푸는 데는 분명한 원칙과 절차가 지켜져야 한다는 점과, 제도개선을 위한 충분한 논의 없이 힘에 굴복해 특정 현안에 야합하듯 문제를 풀려는 것은 대학의 민주화와 자율성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우려할 뿐이다.

그 동안 총장직선제에 대해 일부 교육관료들과 그에 영합한 교수들 이외에는 부정하거나 이의제기를 한 적이 없다. 총장선거가 대학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논리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런 논리라면 과거 총장임명제 때는 그 때문에 발전이 잘 됐던가. 총장직선제를 없애면 총장이 소신껏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그들이 말하는 ‘소신’은 교육관료들의 입맛에 따라 교수들을 각종 평가제도에 묶어서 연구와 교육마저 강력한 통제하에 두는 그런 종류의 ‘소신’일 따름이다.

교수들이 총장을 직선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대학이 고등교육기관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총장, 학·처장을 교수로 하는 대학의 구조는 바로 이러한 대학 조직의 특성이며 대학의 행정은 대학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다.

교육부가 총장추천공문의 반려 사유로 지적한 ‘선거과정의 적법성’, ‘교직원의 이의제기’, ‘타 대학에 미치는 영향’ 등은 변명일 뿐이며, 당장 유사한 사태에 직면해 있거나 앞으로 직면하게될 대학들을 대신해 경상대가 교육부와 투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학칙과 선거규정에 명시된 모든 유권자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합의한 선거결과를 무효라고 하는 교육부의 깊은 뜻은 과연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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